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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구 Jul 08. 2020

미국식 계층과 정체성

OE 수첩 - 캐서린 멘스필드 <가든파티>  줌파 라히리 <질병통역사>





캐서린 멘스 필드의 <가든파티>와 줌파 라히리의 <질병 통역사>는 인물이나 시대 배경, 이야기, 서사 구조가 다른 양상을 띠는 작품이지만 ‘계층적 정체성’을 다루었다는 면에서 유사한 주제의식을 가진다. 작품을 통해 유추해보건대 <가든파티>는 20세기 초반, <질병 통역사>는 21세기인 현재의 서양인 가족의 삶을 그리는데 두 작품 모두 중상류층 가족의 일상사로 꾸며진다. <가든파티>가 유럽의 20세기 초반의 부르주아적 계급의식을 생각해보게 한다면 <질병 통역사>는 21세기 미국인의 정체성과 관련되었다고 볼 수 있는 이민자적 계층 의식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가든파티>는 <작은 아씨들>을 떠올리게 할 만큼 그 소설적 배경이 서정적이다. ‘가든파티’를 열기 전이라 낭만적인 분위기는 더욱 고조되어 있는 와중에 주인공 로라는 소설의 초반부터 라벤더 향을 맡는 인부의 행동만으로 감흥 되고 그들이 서로에게 “어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이 사소한 행동 양식에도 동요가 될 만큼 순수하고 감성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가든파티>에서 이러한 로라를 주인공으로 설정한 것은 그 사건에 대한 서사적 결정 요소를 증폭시킬 수 있는 장치이다. 셰리던 가족들은 고대하던 ‘가든파티’를 열려고 할 때 저택 부근의 빈민가에 살고 있는 이웃 청년 스콧의 사고 소식을 듣게 되는데 이것은 섬세한 감성을 가진 인물인 로라에게 큰 내면 갈등을 주고 종국에는 전에 없는 격정을 느끼게 해 줄 만큼 충격적인 사건으로 작용한다. 


영화 <작은 아씨들> 중


여기서 주목할 만한 소재로 ‘모자’가 있다. 로라가 스콧의 사고 소식을 듣고 어머니에게 ‘가든파티’를 멈춰야 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해 호소할 때 ‘모자’는 로라의 바깥으로의 세심한 관심과 배려를 차단하는 역할을 한다. 로라가 자매인 조스에 비해 신뢰하는 것으로 드러나는 형제 로리에게 그 사건에 대해 털어놓으려 할 때도 로리가 ‘모자’를 칭찬하는 바람에 기회는 사라진다. ‘모자’에 대한 파티 손님들로부터의 칭찬이나 시선, 스스로의 우쭐함 때문에 로라의 내면에는 스콧의 사건이 ‘비집고 들어갈 여지’조차 없다. 로라가 바구니를 들고 스콧을 방문하면서 ‘모자’에 대한 용서를 구한 것은 ‘모자’의 화려한 외양을 통해 드러나는 계급의식의 게으름과 허영심, 무지에 대한 반성과 부끄러움의 표시이다. 







미국을 흔히 ‘melting pot’이라고 부르는데 사회 구성원의 거의 대부분이 이민자이기 때문이다. 이민자들은 출신지에서의 삶에 비해 수준이 높고 풍요로운 생활을 영이하게 되었다. 특히 이민자 2세나 3세로 넘어갈수록 정착 초기 갈등을 몸소 해결해야 했던 1세대에 비해 본래 출신에 대한 정체적 고민이 덜한데 <질병 통역사>에서 다스 가족의 정착한 2-3세대 미국 이민자로서의 모습은 소설의 초반부의 인사 방식, 옷차림이나 자녀 훈육 방식을 통해 강하게 드러난다. 다스 가족은 인도 출신임에도 스스로 민족에 대한 자부심이나 같은 민족인 카파시에 대한 동질감을 전혀 드러내지 않고 있으며 그저 낯선 땅을 여행하는 미국인, 즉 카파시의 시선에서는 완전한 외국인으로 그려지고 있다. 


재미있는 부분은 카파시의 태도이다. 그는 한 때 번역에 대해 열의 깊은 꿈을 가지고 있었으나 지금은 가장으로서 현실의 삶에 충실하려고 애쓰는 평범한 인도의 중년 남성으로 그려지는데 처음에는 다스 가족을 호기심과 동경심 어린 태도로 관찰하는 듯하다. 다스 부인이 ‘질병 통역사’인 카파시를 ‘낭만적’이라고 평한 이후부터는 그의 태도가 바뀐다. 그는 갑자기 필요 이상으로 ‘도취’되어 이해할 수 없을 만큼 급속도로 다스 부인에 대해 애정을 느끼기 시작한다. 하지만 다스 부인에게 카파시는 단지 ‘한 순간의 위로의 수단’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결국 그는 ‘모욕’감을 느끼게 된다. ‘근엄한 표정’의 원숭이들과 함께 떠나는 다스 가족을 바라보는 카파시의 허무한 심정을 헤아려보건대 작가는 미국인의 민족성에 대한 무지와 원주민을 향한 오만한 태도를 꼬집고 있는 듯하다.





 줌파 라히리의 <질병 통역사>는 영어로 <Interpreter of Maladies>로 쓰였으므로 역자가 그대로 직역한 제목이다. 예전에 줌파 라히리의 같은 작품을 다른 번역 버전으로 읽었을 때 제목이 <병을 옮기는 남자>였던 것을 떠올리면서 그 작품은 역자의 의미 부여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싶었다. 이 소설에서는 ‘질병 통역사’로 등장하는 카파시가 ‘병을 옮기는 사람’으로 등장하지 않았고 ‘질병 통역사’라는 직업적 정체성과 관련한 고민을 서사 안에 투영했다고 보는 것이 옳은 해석의 방향에 가깝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카파시가 갑작스럽게 다스 부인에게 애정을 느끼다가 허탈하게 그들을 떠나보내는 장면이 비참하고 애절하게 느껴지는 것은 카파시 자신이 늘 갈망해왔던 자신의 진실하고 순수한 정체성을 이해받는 일이 허망하게 ‘짓뭉개’진 탓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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