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효구 Jul 09. 2020

침묵이 밀어 낸 말
1. 난장이의 언어로 만든 문학

조세희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읽기


이 글에서는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문학적으로 어떻게 읽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의 과정을 그린다. 먼저 작고 무능한 ‘난장이’를 주인 삼아 작가 조세희는 무엇을 말하려고 했으며 그것이 연작 소설로 만들어지면서 각각의 연작은 어떤 방식으로 각자의 문학 언어를 엮어가는지, 그 힘은 어떻게 독자에게 다가가는지를 고민한다. 그리고 작품의 쓰인 1970년대를 김승옥의 『무진기행』 속 배경인 ‘무진’과 비교하여 알아보면서 작품의 문학적 이해를 넓힌다. 마지막으로는 21세기 난장이들이라고 할 수 있는 오늘날의 노동자들은 1970년대로부터 얼마나 달라졌는가에 대해 생각해 본다. 아울러 그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에 대해 문학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문제 제기 한다. 






1. 난장이의 언어로 만든 문학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떠올리면 난장이네 집 앞 방죽이 생각난다. 뜨거운 해가 천천히 저무는 어쩐지 서글픈 낙조의 정경 아래에 난장이와 큰 아들이 작은 배를 저어 물 한 가운데로 나아가고 있다. 그리고 장면은 갑작스럽게 굴뚝 위에 난장이를 비추는 모습으로 바뀐다. 난장이는 한 손으로 굴뚝 벽면을 짚고 다른 한 손으로 종이 비행기를 날리고 있다. 눈부시게 환한 보름달을 향해 날려진 종이 비행기가 그림 속 한 장면처럼 멈춘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읽는다는 것은 소설을 읽는 것이기도 하지만 한 편의 시(詩)를 읽는 것이기도 하다. 어쩌면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읽는다는 것은 그림을 그리는 일 같기도 하다. 그것은 그림을 감상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작품을 음미하는 이상한 경험을 통해 독자는 어떤 날카롭고 아찔한 경계에 서본다. 그러나 독서 중인 독자로서는 아직 A와 B 어느 곳으로도 갈 수 없다. 작가는 그가 창조해낸 언어로 끊임없이 신호를 보낸다. 독자는 각기 다른 차원으로 여러 번 메아리 쳐 퍼지는 여러 단어와 문장의 의미를 되새긴다. 규칙 없이 반복되는 문장과 문장과 문장 사이 생략된 맥락들의 무의미함, 그 자체의 의미를 다각적으로 떠올려보는 과정 속에서 독자는 압축된 채 흩어진 이야기들이 통념적인 시간성에서 벗어나 파괴되는 것을 목격한다. 그리고 어느새 우주적 차원으로 그 폭을 넓혀 새롭게 탄생한 이야기의 덩어리가 자신의 무의식 저편에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힘을 안고 서성거리고 있음을 깨닫는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연작소설이다. 1975년 문학사상에 『칼날』을 시작으로 1976년 문학과지성에 『뫼비우스의 띠』, 『우주 여행』이 실렸고 그 후 1976년 겨울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발표했다. 이후 『육교 위에서』, 『궤도 회전』, 『기계 도시』, 『은강 노동 가족의 생계비』, 『잘못은 신에게도 있다』, 『클라인씨의 병』,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 『에필로그』 순으로 총 12편의 연작이 발표되었다. 연작소설이란 인물·주제·배경·소재에 있어 일정한 관련을 맺고 있어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소설들을 지칭한다. 마치 태양을 구심 삼아 태양계를 이루는 크고 작은 행성처럼 난장이 연작은 작품마다 크고 작은 각자의 개성을 지닌 채 서로를 끌어당기는 힘으로 존재한다. 여행자와도 같은 독자는 각 행성에 머물며 세계를 체험하고 이동하면서 작품들이 안으로 울려내는 소리와 그 소리와 소리가 부딪치는 소통의 장을 경험하면서 각자의 마음 안에 난장이의 언어를 각인시킨다. 



미술가가 꿈속에서 빛깔을 본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이다. 작가는 꿈속에서 별처럼 반짝이는 많은 말들과 만난다. 그해에는 잠을 자는 동안에도 내가 써야 할 말들이 끝없이 이어져 나와 정말 때에 어울리는 나의 말들아 너희도 이제 잠을 좀 자고 내가 깨어나 일할 때 차례로 일어나 나와라 부탁할 정도였다. 나는 말할 수 없이 피곤했지만 깊이 잠들 수 없었다. 어떤 말들은 끝내 잠자지 않고 다가와 나를 잡아 흔들었다. 나는 빨리 써 달라고 보채는 그 말들을 머리맡 빈 커피잔에 넣어 받침접시로 눌러놓은 다음에야 잠을 잘 수 있었다.
그 많은 말들을 내가 그 뒤에 어떻게 했는지 알 수 없다. 나의 지금 머리는 철야 조업 공장의 기계처럼 망가져 떠오르는 말 하나 없다. 오랫동안, 찾아오는 말들을 너는 안될 사정이 있어 안 돼 하며 돌려 보내기만 했더니 이제는 모든 말들이 내게 필요하지 않다 지레 채고 발길을 끊어 버렸다.

조세희, 『침묵의 뿌리』, 열화당, 1986, p. 20. 



작가는 오래도록 침묵 속에 잠겨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는 결코 쉽게 말하지 않는다. 언어 표현만 그러한 것이 아니다. 이야기를 구성하는 큰 뼈대와 잔 가지들도 어떠한 의미를 함축하고 상징을 내포한다. 피상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형체들의 향연을 맛 보고 이리 저리 짜맞추면서 독자는 마치 퍼즐 조각을 맞추는 아이처럼 비밀을 캐내려고 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야기의 상징성을 사지선다형 하나의 답안으로 단정지을 필요는 없다. 가령, 작품 속 ‘달나라’의 의미를 ‘난장이의 이상향’으로 속단해버린다면 세상에서 문학은 문학을 창조하고 공유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보람이겠는가. 독자는 눈을 감고 작가의 고도로 함축된 언어의 세계에서 진하게 풍겨 나오는 깊은 냄새를 느낀다. 때때로 그 향기는 각기 다른 개인의 마음 안에 섞여 들어가 제 3의 사유로 서서히 전환되고 때때로 그렇게 만들어지고 차차 다듬어진 이성은 우리가 가늠할 수 없고 예상하기 어려운 힘을 길러내어 일상 생활 밖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그런 것은 이따금 누군가에게 희망이고 사랑의 힘이다. 희망이나 사랑은 새로운 변화의 원초적인 힘이다. 이러한 일련의 진보의 과정을 이끌어 내는 것이 문학의 한 역할이다.      



문학언어의 궁극적 기능은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 그 자체를 투명하게 존재하게 하는 것이다. 바르트는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지식서사ecrivant)’와 공통 언어의 수호자이면서 이보다 멀리 나아가 비정보로서 언어를 추구하는 ‘작가(ecrivanin)’를 구별하고 있다. 작가는 의미 체계를 통해 무의미의 세계를 추구하며, 말을 재료로 언어적 대상물을 주조해 내는 창조자이다. 즉, 만약 글 쓰는 것이 ‘전달하는 것’이라면 문학적 대상은 언어를 넘어선 전달이다. 말들로 생산되었다가 말들로 재차 막혀 버리는, 결국에는 ‘무의미’를 의미하는 ‘침묵’으로 전달되는 것이다. 사르트르는 이러한 의미에서 ‘그것은 문학적 이야기다’라는 말은 ‘당신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기 위해 말한다’는 뜻이 된다고 단언한다. …

언어는 ‘의미하지만’ 의미하지 ‘않는다.’ 언어는 ‘의미’하는 것의 한계를 떨치면서 더 많은 것을 ‘의미하기’ 위해 앞으로 나아간다. 텅 빈 침묵, 아무것도 전달하지 않음이 문학의 언어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지점이다. ...  

신범순·조영복, 『깨어진 거울의 눈』, 현암사, 2000, p196-p196.



다시 난장이의 집과 방죽과 배와 굴뚝과 우주인, 그리고 달과 공, 난장이의 종이비행기를 떠올려 보자. 난장이의 집 앞에 밀려오고 물러서길 반복하는 방죽의 파도와 그 위에 철퍽거리는 작은 배, 굴뚝으로 가는 난장이와 아들, 굴뚝 위에 선 난장이와 달, 우주인이 날리는 한 장의 종이 비행기. 그리고 하늘로 솟아 오르는 작은 공.



“아저씨는 평생 동안 아무 일도 안 하셨습니까?”

“일을 안 하다니? 일을 했지. 열심히 일했어. 우리 식구 모두가 열심히 일했네.”

“그럼 무슨 나쁜 짓을 하신 적은 없으십니까? 법을 어긴 적 없으세요?”

“없어.”

“그렇다면 기도를 드리지 않으셨습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드리지 않으셨어요.”

“기도도 올렸지.”

“그런데, 이게 뭡니까? 뭐가 잘못된 게 분명하죠? 불공평하지 않으세요? 이제 이 죽은 땅을 떠나야 됩니다.”

“떠나다니? 어디로?”

“달나라로!”

“얘들아!”

어머니의 불안한 음성이 높아졌다. …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中    





작가의 이전글 미국식 계층과 정체성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