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효구 Aug 14. 2020

구름

2019년 7월 22일 00:15

*이것은 2019년 7월 22일 00:15에 개인 블로그에 게재했던 글이다.






얼마나 평안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지 모른다. 늘 마음 안에서 초고에 불과한 나의 글은 건물을 빠져나올 때부터 시작되곤 한다. 미국 대사관 앞 건널목을 향해갈 때 시야 끝에 북악산이 있다. 산과 하늘이 겹쳐지는 풍경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하는데 퇴근 후 걸을 때 마주하면 처음에는 아무런 감정이 없다가 서서히 애틋해오기 시작한다. 약간 원망스러운 기분이 들기도 하고. 하늘이 무슨 잘못이 있다고 나는 그 풍경을 원망할까. 요즘의 하늘은 푹 젖어있다. 그 모습은 내 마음과 닮아 있어서 나는 이 축축한 날씨를 미워하지 않는다.



세종 문화회관 근처에 다다르면 다시 산이 보인다. 일 귀신이 붙어서 퇴근 후 20분간은 그것들을 떨쳐내기 위해 하늘을 보며 걷는다. 그들은 다 떨쳐낸 줄로 알고 있을 때에도 불쑥 얼굴을 내민다. 꽤나 끈질기다. 가끔 밥을 먹다가도 나타난다. 자기 전에 불현 듯 떠올라 마음을 무겁게 만든다. 하루가 매번 똑같은 무게의 젖은 구름이다. 꽤나 무거워서 귀가하면 눕고만 싶다. 자고 일어나면 무게는 조금 덜어지기도 한다. 나의 평일은 목줄 메인 애완견의 삶과도 같다. 주말이 되면 주인은 조금 더 긴 목줄을 달아 준다. 하지만 나는 시니컬한 개다. 주인의 너그러움 따위는 애초에 고맙지가 않아서 멀리가려 들지 않고 주말에도 잠을 잔다. 자는 게 제일 행복하다. 



잊고 있던 말들은 산머리를 떠도는 구름처럼 우연을 가장하며 내게로 온다. 기억의 무리들은 몇 해 사춘기를 보낸 남자 아이 같다. 그 동안 어딜 다녀왔는지 물어도 말이 없다. 의식이 높은 빌딩 속 갇힌 공간을 떠도는 동안에 밀려나 있던 기억은 망각의 공터에 가 있었을 것이다. 거기에는 그 애가 있는데 그의 이름을 짧게 줄여 ‘바오’라 부른다. 그는 퇴근 직후의 뒷목 근육처럼 뻣뻣하게 굳어 있다가 잠의 파도에 섞일 때 비로소 내게 녹아들기 시작한다. 망각은 무한의 색을 가졌고 잠과의 타협은 언제나 너그럽다. 잠이 들면 바오는 그제서야 느릿 느릿 다가 온다. “오늘의 공원은 어땠어?” 우리는 이 시간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 우리는 예정된 망각을 잘 알고 있으므로 순순히 받아들인다. 하얀 빛과 파도의 시간. 오늘 밤 어쩌면 당신을 만날지도 모른다. “바오야, 내 사랑을 잘 지켜줘야 해.”




작가의 이전글 침묵이 밀어 낸 말 1. 난장이의 언어로 만든 문학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