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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구 Mar 25. 2021

무질서에 관한 시집 노트 6

OE 시론 - 네 권의 시집을 논하다 6

[ CONTENTS ]


1. -


2-1.  황인찬, 『구관조 씻기기』

2-2.  안희연, 『너의 슬픔이 끼어들 때』

2-3.  김선재, 『목성에서의 하루』    

2-4.  이원, 『사랑은 탄생하라』    


3. -





3



생각이 죽어버리고 나면 그것은 소멸하여 사라지지 않고 그 다음 차원으로 넘어가는 것 같다. 쉽게 읽히지 않는 난해한 시의 독서는 시인이 들여다보던 세상을 아주 기술력이 좋은 마이크로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일이었다. 무한으로 작아져가는 입자까지 확인할 수 있는 이 현미경으로 들여다본 시인의 세상의 두께는 끝도 없이 얇아질 수 있었다. 그 관찰 속에서 나는 이 시들은 죽은 것이 아닌지 끊임없이 의심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일종의 죽음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죽음’은 시가 죽어서 아예 사라지고 쓸모없어졌다는 말이라기보다는 새로운 전환을 뜻한다. 이 모든 것은 ‘무질서’에 관한 우주 법칙의 일면이다. 


 ‘무질서’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죽음’에 가까운 시는 어떤 종류의 장애나 꺾임으로 해석될지도 모른다. ‘엔트로피’, ‘무질서’의 원리에 무지한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현실, 현상, 대중이 열광하는 것들의 화려한 겉면들의 틀 속에 현혹되어 자신을 가두고 그 안에서 빠져나오기 힘들다. 그렇게 속은 사람들의 눈에 시인들은 떠나간, 쫓겨난 사람들일지는 몰라도 시인들의 목전에는 다른 차원으로 끊임없이 팽창하고 수축하는 것들에 대한 거대한 예감이 도사리고 있다. 무질서로 끊임없이 향해가는 죽음은 ‘창조’이고 ‘창조’는 혁명의 시작이다. 슬프게도 혁명 이전의 세계는 컴컴하다. 새로운 것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반하는 것들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힘을 양산시킨다. 이것 또한 다른 종류의 죽음이다. 그들은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파멸의 구름을 키운다. 겉은 다이아몬드처럼 빛나고 있을지 몰라도 그들은 우매한 장님이고 아주 큰 파멸이 예견되어 있다. 파멸을 예감한 시인들은 아프고 예감은 끔찍하다. 


 이렇게 시인의 눈앞에는 무질서와 혼돈으로 거듭되는 죽음들이 끝없이 창조되고 있다. 연이은 죽음의 파도에 둘러싸인 채 지상을 떠돌던 것들은 안으로 하강하고 지하로 찰싹 붙어서 자꾸만 스며든다. 물론 허공으로 흩어져 지구 밖으로 사라질 수도 있다. 균형을 이루려던 것들은 무너지면서 새로운 균형이 생겨나고, 무질서에 가까워지는 영속적인 죽음을 예감한 시인은 그 아득한 환심 속에서 자기도 모르게 안도한다. 네 편의 어지러운 시집을 들여다보면서 그 모든 것들을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내 무의식의 바다 깊은 곳에 모래로, 진흙으로, 진주로 숨어있던 진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현실의 유리창 속에 파묻히고 푹 젖어버려서 잊고 있었다. 그러나 모든 기억은, 진실은 내 안에 죽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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