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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구 Mar 25. 2021

무질서에 관한 시집 노트 5

OE 시론 - 네 권의 시집을 논하다 5

[ CONTENTS ]


1. -


2-1.  황인찬, 『구관조 씻기기』

2-2.  안희연, 『너의 슬픔이 끼어들 때』

2-3.  김선재, 『목성에서의 하루』    

2-4.  이원, 『사랑은 탄생하라』    


3. -





4



4. 이원, 『사랑은 탄생하라』    



멈추지 않고 계속 읽는 시집과 주말의 이른 오후는 어떤 인연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사실 나의 토요일 오후 한 때를 포식자처럼 점령하는 한 권의 시집이 잔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사랑은 탄생하라』는 위로의 시편이다. 이마부터 입술까지 햇빛 닿은 듯 따뜻하다. 나는 시인의 산문집 『최소의 발견』을 다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시인의 생이 어떤 것이었든 시편은 애타게 ‘사랑’을 향할 수밖에 없으리라고 생각한다. 


 이 시집에서는 ‘아이’와 ‘엄마’, ‘사랑’, ‘심장’, ‘죽음’이 반복해서 등장하고 있다. ‘아이’는 안희연 시인의 시편에서도 나타나는데 두 시인의 세월호 관련 시편에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연민과 슬픔의 감정을 떠나, 이원 시인의 ‘아이’라는 시적 소재에는 애틋한 마음이 조금 더 두텁게 묻어있다. 이것은 시인의 실제 체험의 감정이 시 속에 반영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인지 시인의 마음은 계속해서 ‘불태워진 심장’이며 ‘격렬하게 열렬하게 뛰는 심장’이다. 그 심장은 ‘하얀 천’이나 ‘하얀 눈’ 속에서 ‘침묵’하다가 ‘울음’을 터뜨린다. 그것은 ‘죽은 아이’들을 향했을 때 가장 ‘절망’적이지만 그 비극의 재해석 속에서 ‘사람은 탄생’하고 ‘사랑은 탄생’한다. 





칼날을 내부의 사랑이라 하자
피 묻힌 손으로 얼굴을 지우고 있다 하자
얼굴은 점점 더 선명해졌다 하자

<뛰는 심장> 中
흰 구름 하나가 안으로 들어왔다

더 이상 풀어질 것 없는 얼굴 같았다

목소리까지 풀어진 형체였다

<구름 드로잉> 中
아이는 고개를 뒤로 젖혀 입을 벌리고

<15분 동안 눈보라> 中
흘러나오고 있었어 사랑이라는 말이 세상이 아직도 사랑을 기억이라도 하고 있는 듯이 자전거가 경적을 울리며 지나갔어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눈동자가 떨어지는 소리 같았지 사람들은 숟가락을 들고 있는 중이었지 입은 훨씬 전부터 벌어져 있었지

<방문객> 中



이원의 ‘사랑’과 ‘사람’이 탄생하는 방식은 다소 전위적이다. ‘피 묻은 손으로 지운 얼굴’은 다시금 ‘점점 더 선명’해진다. ‘흰 구름 하나’로 인해 얼굴은 ‘더 이상 풀어질 것 없’고 ‘목소리까지 풀어진 형체’이다. 사람들은 자꾸만 ‘훨씬 전부터’ ‘고개를 뒤로 젖혀 입을 벌리고’ 있다. 기이한 모습으로 사라졌다가, 생겨났다가, 있을 것처럼 존재하다가, 다시 사라지는 것들. 맥락 없이 갑작스레 선명했다가, 지워졌다가, 풀어지는 형체들의 반복 속에 시인의 깊은 ‘절망’과 ‘사랑’이 탄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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