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 밥상 - 초보 엄마의 푸념

효구 에세이

by 효구


본 글은 계간 <현대수필> 2025년 가을호에 수록 예정인 수필입니다.





엄마들이 둘째나 셋째를 낳는 이유는 첫 출산의 고통을 잊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과연 맞는 말임을 실감하는 요즘이다. 나 또한 올해 초의 출산과 육아의 일들이 구체적으로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석 달 전만 해도 아기에게 하루에 여서 일곱 번씩 밥 주는 하루 일정에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기분이었고, 그 석 달 전에는 제왕절개 이후 아랫배가 찢어지는 느낌이 났었는데 우습게도 다 잊어버렸다. 단지 ‘참 고됐다’, 두 마디로 은은하게 반추할 수 있을 뿐이다. 신기하게도 지금 돌이켜보면 구체적으로 그 일들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조물주는 인간의 기억을 영속하지 않게 함으로써 종속 영위를 가능하게 한 것이 아닐지?


비록 구체적으로 어떻게 고통스러웠는지, 그리고 얼마나 즐겁고 기뻤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기는 하지만, 기록과 사진, 영상만이 기억의 매개가 되어 그때의 일들을 불러 일으켜준다. 휴대폰의 앨범을 열고 그때의 기록물들을 찬찬히 둘러보면 아기가 언제 이렇게 컸나, 앞으로도 아기가 자랄 일만 남았는데 이 보송보송 뽀얀 볼, 조약돌 같은 검은 눈망울, 날 꼭 빼닮은 입술, 몇 가닥 없지만 살랑 흔들리는 머리카락, 조그맣고 오동통한 손가락, 발가락 모두 커버려서 지나 보내면 아쉬워 어쩌나 싶다. 아기는 이제 이름을 부르면 나를 쳐다보고 자기를 부르는 줄 안다. 남편이 “돼지는 꿀꿀” 돼지 콧소리를 내주면 꺄륵 웃기도 하고, 마냥 재밌지만은 않은지 가끔은 웃지 않는다. 엉망진창으로 이유식을 먹이던 중 그릇을 엎어서 내가 놀란 소리를 내면 혼나는 줄 알고 삐이 울기도 한다.


다섯 달 전에는 이런 기록을 했었다.

‘아기를 위한 밥을 주는 것은 70일 간의 주된 과업이었고 엄청난 체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산후 우울과 함께 하루하루가 고됐고 지친 채로 지내야 했는데 그래도 시간이 약이라고 정신 차려보니 아기가 거의 백일이 다 돼 간다.

두 시간 텀을 지나 세 시간 텀으로 넘어와서 조금씩 나아지는가 싶으면서도 계속 지쳤다. 어느 날 친정에 와서 엄마가 내 밥상을 차려주고 계시는 걸 보면서 엄마가 자식 밥상 차리는 게 평생 과업이겠구나 싶었다. 그걸 발견하니 마음이 꽉 막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마음이 그야말로 콱! 꽉!

이제 나의 평생의 숙제! 자식 밥상!’


이유식을 시작하고 나서 또 다른 차원의 육아 세계를 경험하는 요즘이다. 이제 ‘찐’으로‘자식 밥상’이 펼쳐지는 것이다. 종일 매트와 침대 위를 굴러다니는 아기에게 한 시도 눈을 뗄 수가 없어서, 주중 ‘독박’ 중에는 이유식을 만들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래서 주말에 내가 후다닥 열흘 치 이유식을 만들어 큐브에 넣어 냉동하는 동안 남편이 아기를 전담한다. 메뉴는 쌀 미음, 오트밀, 소고기, 단호박, 청경채, 당근, 사과 등등 … 다양하기도 하다.


“배고파?”

아기는 한 마디 대답하지 못하고 나를 멀뚱멀뚱 쳐다보다가 다시 칭얼거리기 시작한다. 입을 벌리고 오물거리며 손이나 주변의 무언가를 빨려고 하면 배가 고픈 신호라 읽었었는데, 요새 이가 나서 간지러워 빠는 건지, 배가 고픈 건지, 졸려서 그런 건지, 새로운 놀이를 원하는 건지 예전만큼 확신이 없다. 나는 육아 어플을 통해 시간을 기록하면서 아기의 수유와 이유식 간격을 짐작한다.


아기는 이유식을 잘 먹는 편이지만, 깨끗하게 먹는 법은 아직 잘 모르는 편이다. 계속해서 그릇과 숟가락을 집으려고 한다. 악력이 아주 세다. 내가 함께 잡아 균형을 맞춰 주지 않으면 매번 그릇은 엎어지고, 숟가락은 저 멀리 튕겨 나간다. 찰흙 같은 소고기 가루들이 나와 아기의 얼굴 위로, 바닥으로, 식탁 의자 틈 사이로, 사방으로 튄다. 이유식 후 엉망이 된 아기와 아기 의자를 통째로 들고 욕조에 넣어 씻기려고 해본다. 샤워기 물소리에 겁을 먹는 아기의 비위를 맞춰 살살 물만 끼얹어 음식물을 내리다 보니 아기의 목에 벤 비린내가 완전하게 사라지지 않는다.


정성껏 만든 맘마를 아기가 마냥 잘 먹는 것만은 아니다. 언젠가 ‘아’ 하고 입에 넣어주려는 순간 엉엉 소리를 지르며 울었다. 그 전날 멀쩡히 잘 먹었던 음식을 별안간 안 먹는 이유도 모르겠고, 우는 아기의 마음에 동해 덩달아 울적해지는 마음이었다. 누워서 우유만 먹던 시절이 좋은 것이라는 주변 육아 선배들의 말을 실감한다. 지금은 그나마 하루에 두 번 이유식 하지만, 이제 곧 하루 세 번씩 이유식을 하고 중간중간 간식까지 챙겨줘야 하면, 엄마는 대체 언제 쉴 수 있는 걸까?


이유식 시작 이후 또다시 육아 난이도가 상승하고 있음을 느끼며 엄마가 무척 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거의 반 이사 수준의 아기 짐을 바리바리 싣고 한 일주일을 친정에 와서 지냈다. 엄마는 두 번의 이유식으로 나와 함께 손녀 밥상 전쟁을 치르면서도, 내 입에 들어갈 음식 걱정을 하셨다. 아기가 자는 틈틈이 나더러 쉬라 하시고 본인은 언제 부지런히 나가 장을 봐 오셔서 고기와 과일 등 딸 입에 들어갈 밥상을 반듯하게 차려 내놓으셨다.


나이 서른을 훌쩍 넘고서야 이해할 것 같다. 자꾸만 나는 됐다, 너 먹어라, 너 먹어라 하는 엄마의 마음을. 아기의 밥을 만드는 내 마음이 그랬듯이 우리 엄마도 내가 잘 먹는 걸 보면 세상 다 얻은 듯 마음 뿌듯하셨겠지. 아무리 이유식이 쉽지 않더래도 나는 계속 아기 입에 밥을 넣어주고, 우리 엄마는 내 입에 밥을 넣어주실 것이다. 누가 아들 엄마는 길바닥에서 죽고, 딸 엄마는 싱크대 앞에서 죽는다고 우스갯소리 한 것이 떠올랐다.


우리 딸은 절대 시집 보내지 말아야겠다.

무자식이 상팔자란다, 엄마가 맛난 밥 매일 입에 넣어 줄테니, 애도 낳지 마라! 엄마랑 둘이 평생 재밌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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