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꾸일기 / 10. 31 - 11. 6
출근길 라디오에서 한번, 그리고 퇴근길 버스 라디오에서 또 한 번. 이용 아저씨의 목소리로 한 번, 그리고 서영은의 목소리로 또 한 번 잊혀진 계절을 들었다. 이렇게, 다른 날은 몰라도 10월의 마지막 날은 정확하게 알 수 있다. 어떻게 얼마나 크고 있는지 잘 알 수 없는 꾸꾸는 23주 차에 접어들었다. 블루베리만 하다고 감동한 날이 엊그제인 거 같은데, 벌써 6개월 후반의 아기가 되었고, 훌쩍 자라서 사람의 형태를 갖췄다.(‘엊그제’라는 말은 아주 긴 시간을 담은 단어다. 십수 년의 시간도 우리는 쉽게 엊그제 정도로 퉁쳐버릴 때까 있으니 말이다)
휴가 전 아내는 서류도 떼고, 꾸꾸도 확인할 겸 병원에 갔다. 담당해주시던 분이 없어서 다른 분의 진료를 봤는데, 첫마디가 ‘생각보다 크네요?’였다고 한다. 블루베리만 하던 꾸꾸는 어디 가고, 생각보다 큰 아기가 되었는가. 크기는 나를 닮지 않아도 되는데... 닮지 말았으면 하는 것만 닮는다는 인체의 신비가 꾸꾸에게도?
_이제는 한 장에 다 담기지 않는 아기가 되어버렸다
아침에 일어나면 가끔 ‘꾸꾸’를 봤다는 이야기를 해준다. 여러 가지 형태로 뱃속의 아기를 만나고 있나 보다. 아주 작고 귀여웠지만 생긴 건 그리 예쁘지 않은 꾸꾸를 꾼 날도 있고, 꾸꾸를 낳는 꿈을 꾼 날도 있고, 얼마 전엔 조금 자라서 한글을 배우고, 일기를 쓰는 꾸꾸를 만날 날도 있었다고 한다.
사람이 잠에 들면 어떤 제2의 현실세계로 진입한다고 믿는다. 꿈속에서 누군가를 만나는 건 그 세계에선 진짜의 일인 것이다. 아쉽게도 나는 꾸꾸의 꿈을 꾼 적이 없는데, 아기와 엄마에게만 허락된 어떤 세계가 있고, 그곳에 아직 초대받지 못해서일지도 모른다. 언제가 나의 꿈에도 나타나 줘.
꾸꾸의 일과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요즘 보통 음식을 먹거나 먹기 전에 꾸꾸는 움직이는데, 이는 우리가 삼킨 음식을 뱃속에서 받아먹거나, 혹은 본인이 생각하는 식사시간보다 우리의 식사가 늦어지면 좀 화가 나서 일거라고 생각한다. 책을 읽어주면 또 곧잘 움직이는데 뱃속에서 공부하느라 바빠서 일거라고 생각한다. 아침에 깨어나면 잠시 후 꾸꾸도 움직이는데, 우리와 같이 출근 준비하느라 뱃속에서 씻고 꽃단장하느라 그런 거라고 생각한다. 하여간 말도 안 되게 귀여운 존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