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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O Sep 01. 2021

툭하고, 툭툭.

힘들이지 않고 '툭' 나아가는 인생-

힘 빼고 '툭'


골프를 시작했다. 보기엔 별 거 아닌 운동 같았는데, 막상 시작하고 나니 세상 힘든 일이었다. 티브이에서 봤던 우아하고도 파워풀한 스윙은 분명 CG일 것이다. 머릿속의 모습과 현실의 나는 망가진 로봇과 같았으니까. 선생님은 공을 치려는 힘을 빼야 한다며 매일 같이 '힘 빼고 채를 툭 던져보세요'라고 말하고, 나는 네라고 답한 뒤, 멋지게 스윙에 실패한다. '아니 공을 쳐야 하는데 힘을 빼고, 채를 뭐 어쩌라고요?'라는 표정을 지으며 선생님을 쳐다보면, 위로를 하려는 건지 아님 진짜인지 '원래 그래요. 힘 빼는데만 3년이 걸려요. 자~ 다시 힘 빼고 천천히..'라고 말한다. 휴... 삼 년이라니... 시작하지 말 걸 그랬다. 삼 년은 아니지만 두 달이 지난 지금, 힘 빼는 것을 조금 같다. 예전보다 수리된 로봇이 되어 조금씩 공을 툭툭 쳐내고 있으니까. 사실 이 말은 골프를 배우기 전에도 많이 들었다. 처음 수영을 배울 때 물에 빠질까 바짝 긴장했을 때도, 잘하고 싶은 마음이 앞서 생각에 힘이 잔뜩 들어갔을 때도, 해결하려 노력할수록 자꾸만 꼬이던 어떤 시절에도, 혼자 뒤처진 것 같아 몸과 마음이 애쓰는 지금도. 주었던 힘을 빼면 자연스럽게 몸이 뜨고, 생각지도 못했던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보이지 않았던 길도 보이고, 조급함 대신 나의 속도와 리듬이 생기게 된다. 

<물론 이것은, 살을 빼는 것처럼 알고는 있지만 하기 어려운 것 중에 하나다.>




가볍게 '툭'


기억에 남지도 않을 평범한 오후였다. 다른 친구들을 만나러 같이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었고, 별 의미 없는 대화를 주고받았다. 그러다 그녀가 가볍게 툭 던 지 "어? 나는 너 좋은데?"라는 말에 마음이 툭하고 내려앉았고, 순간 아주 특별한 오후가 됐다. 진심이라는 것이 이것저것 따질 시간을 갖지 못하고 툭 내뱉어지는 것. 그런 말들이 몇 번을 고쳐 쓰고, 아름답게 꾸민 말보다 사람의 마음을 더 흔들어 놓는다. 아주 담백해서 부담스럽지 않고, 알맹이만 남아서 오해할 일도 없으니까. 모든 말들이 대체로 그렇다. 나쁜 상황을 전할 땐 구구절절해지지만, 그렇지 않을 땐 늘 가볍게 툭. 누군가 말한 것처럼 연봉협상 시즌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대충 '툭'


저마다 엄마의 요리를 좋아한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대충 툭'에 있다. 엄마들의 레시피는 '대충, 이만큼, 요만큼, 적당히, 이렇게, 저렇게, 두서너, 후루룩, 눈대중으로'등과 같이 계량하기 어려운 단어들로 이루어져 있다. 힘을 들이는 거 같지도 않고, 깊이 고민하는 것 같지도 않고, 약간은 귀찮은 듯 슥슥하는 것 같은데 어째서 이토록 맛있는 걸까. 어째서 '엄마가 해준 거 같아'라는 말이 음식에 보내는 극찬이 되었을까. 십수 년 혹은 수십 년 주방에서 쌓아온 내공이 어떤 경지에 이르러 완성되었을 것이다. 1초를 위한 10년이라는 카피처럼 말이다. 엄마의 요리뿐만 아니라, 많은 전문가들의 몸짓이 그렇다. 힘들이지 않고 대충 툭. 그러나 아무나 흉내 낼 수 없는 결과물. 와. 대체 얼마나 열심히 살아야 그런 여유와 멋짐을 가질 수 있을까.




그리고 '툭툭'

걷다가 혹은 뛰다가 힘이 들면, 잠시 툭하고 주저앉는다. 잠깐 쉬어가는 게 아니라, 힘 빼고 툭. 가볍게 툭. 그리곤 흘러가는 대로 가만히 있는다. 그러다 다시 걷고 싶은 마음이 들면 툭툭 털고 일어선다. 그렇게 툭하고, 툭툭하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 멋지게 대충 툭하는 날까지.



지친 오늘을 달래주는 것도 어쩌면 툭하고 털어 넣는 맥주 한 잔이 전부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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