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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O Sep 08. 2021

시간이 된다면,
시간을 찾을 거예요.

돈 좀 있다면, 돈을 살 거고요.


짬을 내어 '바쁘다'라고 말할 만큼, 숨 막히는 하루를 보내고 집에 오는 길. 커다랗게 뜬 보름달을 보며 소원을 빈다. 내일부턴 돈과 시간이 많은 사람이 되게 해 주세요. 드라마 속 사람들처럼, 바쁜 회사원이면서도 늘 반듯하고, 퇴근 후 심지어 야근 한 다음에도 여유가 있고, 연애를 하면서, 친구도 만나고, 취미생활도 마음껏 즐길 수 있게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시간과 돈을 주세요. 아니면 침대에서 낭비한 시간이라도 돌려주세요. 적어도 서울을 오가는 경기도민에겐 서너 간씩이라도 더 주세요. 그래야 공평한 거 아니겠습니까? 이렇든 저렇든 시간은 있는데 돈이 없거나, 돈은 좀 있는데 시간이 없는 그런 생활은 이제 지겹습니다. 이뤄질 일 절대 없겠지만, 무한한 시간과 돈을 갖게 되면 얼마나 행복할까.



코로나가 시작되기 전 마지막으로 떠난 긴 휴가. 푹 쉬다 오면 되는 그 시절에도 바빴다. 한정된 돈과 시간 대비 최고의 휴가를 만들기 위해서 떠나기 전에도, 떠난 휴가지에서도 끊임없이 고민하고 일할 때보다 더 바쁘게 움직였다. 하루는 24시간 최소한의 잠을 자더라도 스무 시간 남짓, 열흘이니까, 200시간. 200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우리는 후회 없는 시간이 될까. 돈이야 뭐... 이번 달, 다음 달, 심지어 다다다음 달의 내가 힘을 합쳐도 부족했다.

몇 시에 일어나야 하지? 오늘은 무엇을 해야 하지? 여기선 내가 먹을 수 있는 최선의 것은 무엇이지? 마음에 드는 것 3가지 중 딱 하나는 무엇을 택해야 하지? 사람들이 정해준 것을 따르지 않고 마음대로 하는데도 매 순간이 고민이었고, 그 어느 때보다 신중한 나였다. 포기한 다른 것들에 미안하지 않게, 선택한 것들을 두 배로 열심히 즐겼고, 먹지 못한 것들이 생각나지 않게 주문한 음식을 싹싹 긁어먹었다. 입맛에 맞지 않는 것도 '음~ 이것이 미국 맛이구나!'라고 웃으며 즐겼다. 사지 못한 것들이 마음에 남지 않게, 내가 산 물건들을 유일한 것처럼 아꼈다. 부족한 시간과 돈을 가지고도 꽤 즐거웠다.

휴가의 막바지 지친 몸과 마음에 진짜 휴식을 주었던 시간. 바다를 보며 커피를 마시다가 피식하고 웃었다. 매일 적은 잠을 자면서도, 부족함을 탓하지 않고, 투덜거리지 않고, 즐기는 내 모습이 떠올라서. 빼곡하게 채워 넣은 나의 시간이 기특하고, 소중해서.



"기술의 혁신은 시간을 줄이는 데 있다. 오래 걸리던 것들을 빠르게 바꾸고, 불필요한 시간을 줄여 더 효율적으로 바꾸는 것. 반대로 인간의 혁신은 시간을 늘리는 데 있다. 오래 걸리던 것들이 사라지지 않게, 이렇게 가만히 앉아서 아무 생각 없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불필요한 시간들을 마음껏 즐길 수 있게... 아 그런 날이 올까..."



충분한 시간과 많은 돈은 내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준다. 아니 경험해본 적이 없으니 줄지도 모른다가 맞겠다. 그러나 원하는 만큼의 시간을 찾을수도 돈을 가질 수도 없을테니. 그렇지 않은 나의 삶을 소중하게 여기며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 채워나간다. 그런 순간들이 차곡차곡 쌓여 결국 나의 세계를 조금 넓게 만들어줄 테니까. 이 또한 새로운 세계를 마주하는 것만큼 의미 있지 않을까?


어쩌면 이건 가지지 못한 나의 마음 한편에서 끊임없이 자라고 있는 욕망을 달래기 위한 궁색한 변명일지도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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