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無용품 _001
의자
사람이 걸터앉는데 쓰는 기구
출근할 때도
출근해서도
밥 먹을 때도
밥 먹고 커피를 마실 때도
잠깐 휴식을 취할 때도
회의를 할 때도
퇴근할 때도
TV를 볼 때도
책을 볼 때도
사람을 마주할 때도
사용하는 것
어떤 날은 하루 종일 의자에 앉아서 보내기도 하고
하루에도 수십 개의 다른 의자에 앉기도 하고
그 위에서 새로운 역사가 쓰이기도 하는 것
대체로 편안하고 안락하지만
가끔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울 때가 있는 것
그런 순간에 꼭 필요했지만,
지금까지 없었던 의자의 탄생
첫 번째 사無용품
보기엔 평범하지만
결론은 없고 주장만 난무하는 회의로 인해
나의 인생을 갉아먹고 있는 것 같은 회의감이 들 때
이 의자는 달라집니다
모두가 약속한 회의시간이 지나면
모두의 의자에선 전기가 흐릅니다
일어나지 않고서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게다가 한 개인이 사용할 수 있는 시간도 한정되어 있어서
일정 시간 이상 발언을 이어나갈 시,
그 사람의 의자에서 또 강력한 전류가 흐르죠
즈즈즉...
투머치토커의 본능을 이기지 못한다면
즈즈즉....사
뿐만 아니라,
누군가 근거 없이 비난을 퍼붓거나
업무와 상관없는 인신공격을 가하거나
답도 없는 의견을 이야기하거나
알고 싶지 않은 라떼 시절 이야기를 시작하면
사람들의 표정을 읽고
'질색'이라는 감정의 크기만큼
발언자의 의자에선 또다시 전류가 흐릅니다
뭐 마음껏 떠들어대도 상관은 없습니다
그저 전기 구이가 될 뿐이니까
말과 시간에 대한 컨트롤을 넘어
태도까지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중요한 이야기가 오고 갈 때,
딴짓을 하거나, 졸거나, 스마트폰에 빠진다면
가차 없이. 즈즈즈즉.
"어디 전기 무서워 말하겠나?"라고도 할 수 있지만,
이 의자엔 솔직하고 자유로운 의사표현이 가능합니다
자유롭게 이야기하라고 했지만,
결코 자유롭게 말할 수 없는 상황에서
솔직 버튼을 누르면, 의견이 전달됩니다
익명으로 말이죠.
아쉽지만 이건 상사의 경우엔 사용불가
지나치게 자유로운 토론문화로 인해
지나치게 내 시간이 사라지고 있다는 건
이 의자가 필요하다는 증거.
라떼 시절 이야기만 한 시간씩 늘어놓는 본부장에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이건 아니라고 말하는 실장에게
쓸 데 없이 공격적이고, 말도 안 되게 비현실적인 팀장에게
졸거나 혹은 게임하거나, 그러다 헛소리하는 김부장에게
똑똑하지만, 차마 말은 할 수 없는 박차장에게
그리고 모두가 빠른 회의 종료와 더불어 이른 퇴근을 바라는
모든 직장인에게
초강력 풀파워 전기의자를!
(아 진짜 아까 본부장만 아니었어도, 벌써 씻고 넷플릭스 보고 있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