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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O Aug 25. 2021

인생에 여름을
여름에 방학을

잠시 쉬어가는 8월의 EATFLIX

“아아, 오늘부터 한 달간 여름방학이 시작됩니다. 회사에 나올 생각은 절대 하지 마시고, 업무와 관련된 모든 것은 한 달 뒤로 미뤄주시기 바랍니다. 그럴 일 없겠지만, 몰래 회사일 비슷한 걸 했다간 강력한 징계 조치가 취해질 예정이니 이점 유의하시고. 긴 방학 여유로울 수 있게 보다 많은 월급을 드리겠습니다. 모두 즐거운 방학 보내고 한 달 뒤에 만나요!”라는 말은 올해도 듣지 못했다. 아마 영원히 듣지 못할 수도 있다. 어릴 적 여름방학 숙제로 냈을 상상화를 떠올린다. 자동차가 하늘을 날고 바다 밑에 도시가 있고 로봇이 힘든 일을 대신하고 뭐 그런. 다시 그때로 돌아가 그림을 그리면 1년에 한 번 여름방학을 즐기는 어른들을 그릴 것이다. 이게 진짜 미래고, 혁신이다. 성실한 어른들에게 열흘 남짓한 휴가는 너무 짧다.


<어린이가 부럽진 않지만, 여름방학은 부럽다.>




작가 김연수는 말했다. 휴식이란 내가 사는 세계가 어떤 곳인지 경험하는 일이라고. 그의 말처럼 혹시라도 긴 여름에 방학이 주어진다면 내가 사는 이 동네의 생활을 마음껏 즐길 것이다. 타인을 위해 혹은 새로운 경험을 위함이 아닌 오로지 나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나를 둘러싼 공간과 물건, 음식들과 함께 방학을 보낼 것이다. 밥벌이하느라 소홀했던 이곳에서 말이다. 알람을 맞추지 않고 잠을 자고 깨고, 자전거를 빌려 몰랐던 동네 구석을 발견하고, 또 어떤 날은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서 동네 작은 가게에서 저녁을 보내고, 좋아하는 책을 보고, 노래를 듣고, 영화를 보고, 전시를 챙기고. 전혀 화려하지 않은 그런 휴가, 그런 삼십 일의 방학을 보내고 싶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멋진 풍경도, 처음 맛보는 음식도, 짜릿한 모험도 아닌 여유롭게 천천히 흘러 조금 남는 시간이다. 혹시라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테니 이 마음 대신하여 <여름방학>을 다시 돌려본다. 지루하고 재미없다고 혹평 일색이었던 예능이지만, 그 안에는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이 모두 들어있다. 정유미와 최우식은 특별히 하는 게 없다. 밥을 지어 먹으며 시간을 보내는 게 전부다. 제철 과일로 식사를 챙겨 먹고, 집 앞 바닷가에 나가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고, 저녁을 해 먹고, 산에 오르고, 가끔 친구들을 불러 밤을 지새우고. 특별한 것은 없지만 뜨거운 계절에 조용하게 흘러가는 누군가의 시간이 있다. 이 계절에만 맛볼 수 있는 새콤달콤한 아오리사과를 베어 물고 잘 삶은 옥수수를 한 알 한 알 뜯어먹으면서 말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떠날 곳을 찾고, 낯선 곳에서 생경한 것들을 마주하고, 바빠서 잠시 잊었던 좋아하는 것들을 찾아가는 휴가도 좋다. 매해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시작되기 전 의식을 치르듯 휴가를 보냈었다. 의미도 있었고 재미도 있었다. 짧은 시간 동안 쌓은 좋은 기억들이 힘든 시절을 견디게 했다. 그러나 쉽게 떠날 수 없고 자유롭게 즐길 수 없는 쉽지 않은 시대를 보내며 휴가와 휴식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다. 멀리 떠날 순 없어도, 영원히 여름방학이 없을지라도 늘 잘 먹고 잘 보는 훌륭한 어른이 되길 바라며.



가질 수 없지만, 느낄 수 있지 여름방학


쏘아올린 불꽃, 밑에서 볼까? 옆에서 볼까?

어린 시절의 여름방학을 포장하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순수하고 아름다운 그 시절 이야기.

(애니메이션말고, 낡은 영화로 보자)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절반 이상을 여름 묘사에 할애한 책. 읽는 것만으로도 좋은 여름을 보내는 느낌이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여름 날씨가 미쳤을 때, 이 영화를 보면서 날씨를 왜곡시켜보자. 가슴 아픈 사랑이야기는 덤.



여름방학엔 매일 과식해도 좋아


복숭아

딱복이든 물복이든 상관없다. 무엇이든 먹고보자. 한참의 비가 내리고 복숭아가 싱거워지고 선선한 가을이 오기 전에.


평양냉면

여름에 냉면이 식상할지도 모르지만,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점심엔 평양냉면을 먹자. 어제 과음한 사람도, 배가 고픈 사람도. 유진식당에서 냉면에 소주를 마시자!


포트와인

한여름 밤, 쏘아 올린 불꽃을 보며 어른답게 얼음 세 알 띄운 이 와인을 마시자! 그라함도 좋지만 코스트코에도 훌륭한 와인이 있다.


또 다른 누군가의

더 재미있는 'EATFLIX'

https://brunch.co.kr/magazine/eatflix


+https://blog.daehong.com/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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