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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O Aug 18. 2021

좋아한다고
말해주세요

[ 하루에 열 번씩 좋아한다 말하기 운동본부 ]

호와 불호. 언제부터인가 불호가 더 많은 사람이 됐다. 좋은 면을 알아차리기 위해서는 적당한 시간과 관심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면은 노력하지 않아도 늘 눈에 띄었다. 회사를 다니면서 더욱 그랬다. 회의는 싫고, 별로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찾아내어 성토하는 자리 같았다. 그렇게 좋아하는 것보다 싫어하는 것이 많은 어른이 되었다. 하루를 불평불만으로 가득 채우는 날이 많았다. 싫은 것들을 어떻게든 쏟아내고 나면 잠시나마 마음은 편했다. 다시 쌓일 게 분명하지만 어쨌든 순간은 스트레스가 풀렸고, 싫어하는 것에 대해 공감을 받으면 혼자가 아닌 거 같은 생각도 들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깎아내리며 나은 사람이 된 거 같았고, 싫어하는 것을 말할수록 취향이 확고한 사람이 된 거 같기도 했다. 그런 기분에 휩싸여 점점 좋지 않은 어른이 되어갔다.



하고 싶었던 것이 많았다. 되고 싶었던 것, 가고 싶었던 곳, 갖고 싶었던 것도 많았다. 하지만 모든 것은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내 마음이 있는 곳과 내가 있는 곳은 완전히 달랐고, 갖고 싶은 것과 가진 것의 차이는 시간이 갈수록 더 커졌다. 나와 멀리 있는 것들은 언제나 반짝였고, 내 곁에 있는 것들은 대체로 하찮아 보였다. 매일 바쁘게 살면서도 정작 원하는 것과 점점 멀어지는 삶이 이어졌다. 이렇게 살다 간 늘 미간에 주름을 가득 채우고, 모든 면에서 부정적인 김부장이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아찔한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마음먹었다. 멀리 있지 않은 지금의 것들. 익숙하고 반복되어 생활에 맞닿아 있는 것들에 마음을 주기로. 대체로 시시하고, 약간은 촌스럽고, 아주 작거나 당연해서 지나치기 십상인 대단하지 않은 것들에 말이다. 무언가 하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하는 사람이 아닌, 하루에 열 번씩 좋아한다고 말할 줄 아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쉽진 않겠지만.



조금 더웠지만 바람은 시원한. 그리고 하늘이 맑고 높은 날씨가 좋았다. 버스의 맨 뒤에서 바로 앞 좋아하는 자리에 앉아서 들은 에피톤프로젝트의 노래가 좋았다. 이 노래를 들으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어서 좋았다. 그 사람과 함께 먹은 음식과 나눴던 별 거 아닌 이야기가 좋았다. 전시장에 걸린 수많은 사진 중에 하나가, 그리고 그 사진이 인쇄된 노트가, 그 노트를 사고 나온 오후 다섯 시라는 시간까지 좋았다. 테라스에서 앉아 마신 맥주가 좋았고, 해가지는 저녁이 좋았다. 하루를 좋아한다는 말로 가득 채우고 나면 오늘을 끝내고 잠이 드는 것이 아쉬울 만큼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사회생활을 위해 웃는 얼굴이 아니라, 좋아하는 마음에서 시작된 웃음을 발견하면 따라 웃게 된다." 




가볍고, 부담도 없고, 책임질 이유도 없어서 하루 종일 내뱉어도 무관한 말. 언제 들어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말. 그래서 가끔은 닫힌 마음을 여는 아주 위대한 말. 특별한 목적도 장황한 설명도 덧붙이지 않아도 되는 간결한 말. 자체가 이유이자 결과인 말. '귀엽다'라는 말과 더불어 아주 간편하지만 강력한 힘을 가진 말. 사랑이나 존경, 새로운 발견의 시작이 되는 말. 밥벌이가 되지 않는 한 영원히 지치지 않을 수 있다는 말. "좋아한다" 미움받을 용기가 필독서가 된 세상이지만, 모두가 미움받을 용기 내지 않게, 좋아한다고 많이 말하고, 들었으면 좋겠다. 진심이 묻어나 나지막이 새어 나오는 그런 말과 감정으로 하루에 열 번씩 '좋아한다'말하면, 한 달 후엔 삼백 번이 되고, 일 년이면 삼천 육백 번, 십 년이면 삼만 육천 번을 할 수 있다. 모든 것을 다 기억할 수 없고, 지난주의 것과 이번 주의 것이 겹칠 수도 있고, 또 사람의 마음이 변해 좋았던 것들이 싫어질 수도 있지만, 어쨌거나 매일매일 좋아한다 말하고, 좋아하는 것들이 반복해서 쌓이고, 익숙해지고, 친해지고, 진해져서 온전히 나의 것이 되고 나면, 우리는 어떤 상황에도 힘내 웃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 마치 아기가 애착 인형을 끌어안으면 눈물을 뚝 그치듯, 좋아한다는 말과 함께 오래 울지 않는 어른이 될 수 있다.



/ 좋아하는 것들로 하루를 가득 채우며, 끊임없이 좋아하는 것들을 마주하며, 더 많은 것들을 좋아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서, 어떤 개떡 같은 시절에도 자주 좋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전반적으로 좋지 않은 어른의 날들 버티게 하고, 웃게 하는 건 어쩌면 '좋아한다'는 말 한마디일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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