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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O Aug 04. 2021

별일 없이 산다는 것.

격리되었던 7월의 EATFLIX

완벽하고 철저하게 방역수칙을 지킨 것은 아니었지만. 마스크도 잘하고, 하지 말라는 건 가급적 하지 않으며 1년을 넘게 살았다. 그러면서도 이것이 나의 일이라는 생각은 잘하지 않았다. 이 시절 이상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지키는 규칙 정도에 불과했다. 연일 쏟아지는 뉴스에도 나와 내 주변 모두가 이 바이러스로부터 무사했기 때문이다. 이 시국에 여러 가지 이유로 힘들어진 사람들을 걱정하는 마음보다, 그냥 이 시절이 빨리 지나가 마스크를 쓰지 않는 날을 오길 바라는 마음이 더 컸다. 그러다 회사에 처음 확진자가 나왔다. 처음으로 코로나 검사를 받으며 나의 일이라 여기지 않았던 것이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고 주말 양성 판정을 받았다는 후배의 전화를 받고 코로나19는 완전한 나의 일이 되었다. 그러나 할 수 있는 건 빠르게 혼자가 되는 것 말곤 아무것도 없었다. 모두가 처음 겪는 이 일 앞에서 누구나 그러했을 것이다.


함께 녹음실에 있었다는 이유로 2주간 자가격리에 들어갔다. 괜히 목이 아픈 것 같았고, 열이 나는 것 같기도 했다. '혹시나 하는 불안한 마음'을 빼면 아무렇지도 않은 시간이었다. 꽤 오래전 청파동 원룸에 혼자 살던 젊은 내가 된 거 같은 기분도 들었다. 밖에 나갈 수 없다는 사실은 집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별 대수롭지 않은 일이다. 시간이 되면 일어나서 씻고, 밥을 챙겨 먹고, 티브이도 보고, 책을 보고, 일도 했다(쓸데없이 좀 바빴다. 재택의 완성은 '일 없음'인데...) 시간이 되면 정성껏 밥을 챙겨 먹고, 몸에 미안하지 않게 운동도 조금 하고, 차와 커피를 내려 마시고, 여기저기서 보내준 과일도 많이 먹었다. 가급적 눕지 않고 바르게 앉으려 노력했고, 이틀에 한번 청소를 하고, 청소가 끝나면 좁은 욕조에서 한참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주말엔 낮부터 냉동실을 털어 맥주를 마시고, 낮잠을 잤다. 보고 싶었지만 놓쳐버린 영화랑 드마라도 보고, 늦지 않게 잠에 들어 잘 수 있을 만큼 늦게까지 잠을 잤다. 되돌아보니 짧지 않은 이 시간을 평양냉면보다 심심하게 아니 맹물에 가깝게 보내버린 거 같기도 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좋은 시간이었다. 그런 별 거 아닌 것들에 시간을 들이고, 마음을 쏟으며 보냈다는 것이.


열몇 살 어린 시절엔 별게 다 별일이었다. 날씨가, 누군가의 말과 눈빛이, 닫힌 싸이월드가, 지난 술자리에서 오고 간 대화들이, 취했던 밤과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마음들까지. 하여간 많은 것이 호들갑스럽게 일상을 채웠다. 그런 별일에는 늘 상당한 수고가 필요했고, 그런 날이 지나고 나면 괜히 쓸쓸해지는 날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하루는 불안한 마음도 들었다. 늘 몸과 마음이 바쁘고 정신이 없었다. 그와 비교해 요 몇 년 간의 삶은 아주 평온하고 잔잔했다. 특히 격리된 2주의 시간은 더욱 그랬다. 별일 없이 사는 것의 기쁨과 조금은 지루해 보이는 이 시간이 주는 즐거움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더불어 이런 일상을 깨뜨리는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부자가 되게 해달라고 빌었던 새해 소원을 취소하고 다시 빌어본다.


후배는 건강을 회복했고, 나는 무사히 격리에서 해제되었다. 모두가 힘든 지금도, 앞으로 다가올 또 어떤 시절에도 별일 없이 살아갔으면 좋겠다. 그저 먹는 것과 보는 것이 인생 최대의 별일이길.



잔잔한 당신을 응원하는 이야기


거북이는 의외로 빠르게 헤엄친다

스스로가 대수롭지 않다고 느껴질 때마다 꺼내보는 내가 일곱 번째로 좋아하는 영화


패터슨

패터슨시에 사는, 패터슨씨에 대한 이야기. 언젠가 패터슨씨처럼 살고 싶다. 아니 살 수 있다


인생 후르츠

이 영화를 보고 난 후부터 인생 좌우명은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가 되었다. 여전히 빠르게 걷고 빠르게 포기하는 사람으로 살고 있지만.



잔잔한 당신을 위한 한 끼


라멘

거북이는 의외로 빠르게 헤엄친다에서 고독한 미식가 고노상은 최선을 다해 기억되지 않을 평범한 라멘을 만든다. 그러다 정말 맛있는 인생 라멘을 만드는데... 일단 열라면이라도 끓이고 보자.


도넛

패터슨의 아내 로라는 한 날 도넛을 만든다. 로라의 행적을 보면 그다지 맛있을 거 같진 않지만... 그래도 크리스피든 던킨이든 잘 나가는 노티드든 먹고 보자(우리 동네 근처 도넛드로잉도 추천)


생선구이와 고로케

인생 후르츠 히데코 할머니는 별별 요리를 다 해낸다. 그중에 생선구이랑 크로켓이 너무 정갈하고 맛있어 보여서 볼 때마다 먹고 싶어 진다. 잘할 수 없다면 비비고 생선구이라도 먹고 보자.



또 다른 누군가의

더 재미있는 'EATFLIX'

https://brunch.co.kr/magazine/eatfli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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