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취미가 뭐냐고 물으신다면…
“취미가 뭐예요?”
“저는 책 읽는 것 좋아해요.”
이런 꿈같은 대화는 소설의 첫머리에서나 나올 것으로 기대되는 시간들이 있었다. 근 30년 넘게 독서를 취미로 가져왔지만 취미를 묻는 타인 앞에서 당당하게 독서를 이야기한 날들은 손에 꼽는다. 독서가 취미라는 말은 왠지 모르게 남들과 다르게 고상하다는 자만감, 감각적인 시대의 멋을 따르지 않는다는 촌스러움, 골프나 낚시 등 화려한 여타의 취미를 가질 여유가 없다는 부끄러움과 묘하게 연결되어 있기에 그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은 세속적인 독서가들은 원치 않는 오해를 피하고자 저도 모르게 독서라는 취미를 숨기곤 한다.
독서인들의 실상은 세상의 기대나 선입견과는 다소 다르다. 두꺼운 책 뒤에 숨어 있지만 우리는 지극히 세속적이며 누군가 우리를 그토록 고상하게 바라봐 주기를 기대하며 책을 읽지도 않는다. 때로 독서는 낚시나 골프만큼이나 돈이 많이 드는 취미이기도 하고 넷플릭스와 유튜브 못지않게 자극적인 소재에 탐닉할 수 있는 세속적인 분야이기도 하다. 때로 지적인 자극이나 창작에의 영감을 받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순간은 어떤 취미 생활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볼 때 독서는 지극히 평범한 취미 생활일 뿐이다.
이번 연재에서는 독서라는 다소 전통적인 취미 생활을 둘러싼 다양한 선입견들을 거부하고 지극히 평범하고 세속적인 독서인들이 어떻게 자신만의 취미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지 다루어 볼 예정이다. 우리에게도 밤을 새워 치열하게 준비하는 오픈런이 있고, 어느 분야에나 존재하는 탐미주의 마니아들을 위한 고가의 도구들도 있다. 빽빽이 책이 들어찬 서가에서 가슴 벅찬 설렘을 느끼며 천 년 전 철학자들 또는 동시대의 뛰어난 과학자들과 함께 사고하는 기쁨을 누리면서도 통장 잔고를 계산하며 인터넷 서점 장바구니를 들락거리는 평범하고 세속적인 독자들과 함께 이 글을 써내려 가고 싶다.
써 내려가는 연재가 세속적인 독서의 세계에서 함께 유영하는 독서인들에게 작은 공감과 기쁨을 주는 글이 될 수 있다면 영광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