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리트리버와 함께하는 시골 생활
우리 집 마스코트 린다는 웬만해선 짖지 않고 공격하지 않는 순둥이 대형견이다. 가장 최근에 그의 울음소리를 들은 것이 세 달도 넘어가는 일이니 가족 모두가 ‘쟤는 말을 못 하는 거야? 목에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건 아닐까?’ 걱정이 되기 시작할 무렵에야 한 번씩 그 목소리를 들려준다. 이래도 좋아, 저래도 좋아 룰루랄라 늘 방실방실 웃으며 사람을 좋아하는 골든 리트리버의 종특으로 만인에게 사랑받는다. 작은 강아지들이 와서 왈왈거리며 코를 깨물면 엉덩이를 내어주는 순둥해서 걱정인 멍멍이. 때로 나는 그가 너무 공격성을 잃고 순하기만 한 것 같아 물가에 내놓은 아이처럼 걱정이 되기도 한다. 정작 물에서는 물갈퀴 있는 리트리버가 빠질 일이야 없겠지만서도.
기본적으로 5도 2촌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우리 가족은 시골집에 내려오면 린다를 마당에 풀어 둔다. 갇혀 있었던 좁은 집에서 풀려나 넓은 마당을 뛰어다니며 농작물이 잘 자라고 있는지, 다른 동물의 흔적은 없는지 순찰하고 햇빛을 즐기며 땅을 파기도 하는 그 모습이 사랑스럽다. 처음 시골에 데려 왔을 때에는 혹시나 마당 밖으로 나가 동네 주민들을 놀라게 하거나 길을 잃는 것은 아닐까 걱정했지만 집 경계 밖으로 나가지 않고 집 안 어디에 있든 부르면 달려와 방실방실 웃어주는 탓에 우리 가족은 단 한 번의 의심 없이 그의 마당 생활을 함께 즐기고 있었던 것인데……
온 가족이 낮잠 자고 일어나 큼직한 거실 창으로 한적한 시골 거리를 바라보던 어느 늦은 오후, 집 밖에서 유유히 산책하고 있는 그를 발견하고야 말았다. 룰루랄라 웃는 순진한 얼굴로 동네 마실 나가는 할아버지처럼 유유자적 시골길을 걷고 있었던 것이다. 열여섯 명의 인심 좋은 주민들이 살아가는 작은 마을이지만 대형견과 길 한복판에서 마주치고 놀라는 어른들이 있으면 어쩌나, 이때까지 우리만 몰랐지 웃는 얼굴로 우리를 속이고 다른 주민들을 노략질하는 악당이었으면 어쩌지 생각하니 식은땀이 흘렀다.
부랴부랴 목줄을 들고 집 밖으로 우다다 뛰어 나가려는 찰나! 아뿔싸 우리 집 개가 동네 주민 할아버지 한 분에게 다가가는 모습이 보인다.
- 큰일이야. 남편! 어서 뛰어.
슬리퍼 차림으로 뛰어나가는 우리를 뒤로 하고 할아버지 앞에 꼬리 치며 달려가 벌러덩 드러누워 예쁨 받는 우리 집 강아지의 모습이 보인다. 이건 또 무슨 상황인가 당황스럽기만 한데 혹시나 도망갈까 살금살금 다가가니
- 오냐오냐. 오늘은 간식도 없이 와서 미안해. 순심아 우쭈쭈~ @#@%#%@^*%*($@#$
- 아이고, 순심이가 또 도망 나왔네. 동네 순찰 잘하고 나쁜 사람 이 놈 해라!
지나가는 어르신마다 머리를 쓰다듬고 덕담 한 마디씩을 건네신다.
그러니까 린다는 우리 가족이 하나, 둘 자신의 일에 빠져들어 자신에 대한 관심이 낮아지면 담장 밖으로 슬그머니 탈출하여 온 동네를 누비며 ‘순심이’라는 이름으로 어른들께 사랑받고 혹시나 우리 가족이 찾으면 전속력으로 달려와 순진한 얼굴로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매소드급 연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누구 집 똥개냐 너는?
- 거, 너무 뭐라 하지 마이소. 착하다 아이가. 우리 마을은 옛날부터 소 키아던 마을이라 괜찮애. 저 큰기 좁은 마당에 갇혀 있으면 답답해서 우예 사노! 애교 부리고 싹싹하게 굴고 하모 우리도 기분이 좋다 아잉교. 글고 저런 아가 굵직한 똥을 여기저기 좀 싸 놔야. 족제비도 몬오고…….
범죄 현장을 급습하여 녀석의 목에 목줄을 매고 연신 죄송하다고 고개 숙이고 집으로 데려가는 길 뒤로 아쉬운 대화가 이어진다.
귀촌이 하나의 유행이 되어 많은 사람들이 시골행을 고민한다. 하지만 시골 마을에 정착하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어서 시골 마을의 텃세나 심심한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공을 들여 지은 집을 팔고 나오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렇기에 이사 오기 전부터 이웃 어른들에게 예쁨 받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다. 싹싹함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는 내가 먼저 다가가 인사드리고 도시에서 구해 온 달다구리들을 나누기도 하고 옆집 강아지들에게 조공도 바쳐가며 노력한 탓에 이웃으로 인정받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뜻밖에 우리 집 외교사절단이 린다였다니, 우리가 모르는 현실의 이면이 얼마나 많은가 아득해지며 왠지 모를 배신감이 급습한다. 요 녀석 너 혼자 잘난 척하고 예쁨 받고 있었지!!
우리 가족을 환영해 주시고 우리만 몰랐던 강아지의 대탈출극까지 예쁘게 봐주시는 이 귀한 분들께 감사하고 죄송한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나. 이때까지 믿어왔던 우리 집 강아지의 멍청하지만 착하고 순한 개라는 정체성을 향한 강한 의심을 어찌해야 하나. 고민하던 차에 옆집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 순심이는 원래가 저 건너편집 개 이름이라. 그 할매가 아들이 도시에서 키우던 골든리트리버를 키우게 됐다 아이가! 그래가 한 오년쯤 살았지 싶어. 가가 온 동네를 뛰어 댕기믄서 즈그 할매 길도 안내하고 동네 어른들도 지키주고 안 그랬나! 그랬다가 병에 걸려가 마 죽으삐써. 그래 동네 사람들이 다 야를 예뻐한다 아이가.
뜻밖에 팻로스 증후군을 오래도록 앓으시던 할머니가 우리집 강아지를 예뻐하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눈시울이 붉어진다. 마당 저 편에서 괘씸한 마음에 뚝딱뚝딱 개 울타리를 만드는 남편에게 슬그머니 말을 건다.
- 공유 경제 시대라는데 이쯤 되면 강아지도 마을 분들과 공유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바쁜 손놀림을 멈추고 제각각의 사연으로 가득한 동네를 살핀다. 하나 둘 가슴에 상실이 쌓여가는 나이. 주름쥔 손으로 묵묵히 밭일을 해나가시는 저분들의 역사에는 얼마나 많은 상실과 이별이 자리하고 있을까?
적당한 위로라는 것이 있을 수 없는
기약 없는 이별 앞에서
서로의 슬픔에 기대어
기어코 앞으로 나아가야만 하는
쓸쓸함을 본다.
새로운 만남이 치유될 수 없는 아픔을 대체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가 걸어가야만 하는 상실의 길에 작은 웃음이라도 되어주기를 바라본다.
옆집 개가 앙칼지게 짖기 시작한다. 헐레벌떡 뛰어 나간 시선 뒤엔 역시나! 길 건너편에서 유유자적 산책 중인 우리 집 개가 있다.
여러분 저 이제 개 잡으러 가요.
미친 사람처럼 목줄 쥐고 시골길을 뛰어다니는 여성을 만나면 측은지심을 가져 주시기 바라요.
그리고 이봐, 멍!
이제 네 정체를 알았으니 연극은 그만하길 바라. 나갈 거면 인사도 하고 목줄도 메고 문도 좀 닫고 다녀. 너만 인기 있기 없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