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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희 Dec 12. 2023

나를 부르는 말들

불안이 우리를 잠식하려 할 때


유독 한 단어가 나를 따르는 날이 있다. 책을 읽으면서도, 친구를 만나면서도, 라디오를 들으면서도 같은 단어를 만나 움찔 놀라고 멈춰 서게 되는 날. 그런 날이면 내면에 숨어 있던 감정이 단어로 물화되어 이제 자신을 똑바로 마주 보라고 요구하며 우두커니 서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오늘의 단어는 단연코 ‘불안’이다.


아침 독서 시간 조금은 가볍게 즐기고 싶어 읽은 만화책에도, 읽고 있던 에세이 집에서도, 은은하게 흐르는 목소리가 좋아 즐겨 듣는 팟캐스트에서도 불안을 다룬다. 그런 날이면 찬찬히 내 안을 마주 보려 노력한다. 어디서 시작된 ‘불안’일까? 고작 스무 편 남짓의 글을 썼을 뿐이면서도 조회수를 바라보며 초조해하는 욕망에서 시작된 불안, 빠르게 진보하는 세상에서 나만 도태되는 것 같은 불안, 아이들을 사랑하는 만큼 그들의 잔잔하고 평화로운 일상이 깨어질까 걱정하는 부모로서의 집채만 한 불안들.



모든 불안은 욕망의 다른 이름이다. 욕망의 크기만큼 불안이 커져 날 삼키려 하는 날들에 그는 나를 불러들였다. 그런 날에는 그를 마주 보며 불안의 실체를, 내 안의 욕망을 직시하려 노력한다. 예를 들어 글쓰기에서 도태될까 불안해하는 나를 들여다보자. 작가가 되고자 하는 욕망, 조회수가 늘었으면 하는 욕망은 글쓰기를 향하고 있는가? 아니. 그것의 실체는 남들의 인정을 받고자 하는 마음이다. 그리고 그 배후의 배후에는 스스로로부터 아직도 인정받지 못해 떨고 있는 어린 내가 있다. 그 아이를 살펴야 할 때에 조회수를 바라보고 남들에게서 좋은 평을 듣기만을 바라고 있었구나.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안이 옅어지지 않을 때에는 두려워하는 일이 끝끝내 일어나 버린 그 이후의 날들을 상상해 본다. 글을 쓰지 않는 평범한 일상을, 빠르게 진보하는 세상에서 그것에 따라가지는 못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만 채워가는 하루를, 크고 작은 사고 속에서도 아니 그 일탈의 크기만큼 성장해 나가는 아이들을. 생각하는 것만큼 나쁘지 않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불안 속으로 걸어 들어가 최악의 수를 보았는데도 저것뿐이라니 후련하기도 하다.


어렸을 때부터 내면의 깊은 우물로부터 부름 받고 있었던 나는 이제야 하나, 둘 그에 응답하는 방법들을 익혀간다. 오늘처럼 물화되어 그가 나를 부르는 날에는 그를 받아들이려 노력한다. 끝의 끝까지 내려가 그 깊은 물에서 자맥질하고 그 속에서 몸과 마음을 담그고 한숨 쉬어간 뒤에 한 발짝 한 발짝 세상 밖으로 나아간다.


성인이 된다는 것은 어떤 모습의 나와도 친해져야 하는 것인가 보다.


때로 마음에 차지 않았던 나의 실체를 받아들이고 측은해하며 스스로를 바로 세우는 일. 그렇게 한 번 더 갱생하여 생을 살아갈 용기를 얻고 생명을 키워내고 다른 이들이 기댈 어깨도 되어 주면서 어기적 어기적 걸어가는 일. 때로 불안이 어깨를 감쌀지라도 계속해서 살아가는 일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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