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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희 Dec 22. 2023

슬기로운 초등생활 - 나쁜 친구를 만났을 때

대쪽같이 살려면 유연함이 필요하다.

며칠 전 둘째 아이가 입학통지서를 받았다. 첫째 아이 때는 입학이라는 글자만 봐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아이고 이 작은 아이를 어떻게 학교에 보내나. 얄궂은 일들이 생겨 나쁜 애한테 맞고 오거나 괴롭힘을 당하면 어떻게하지!’ 몇 번이고 작은 머리통을 쓰다듬으며 한숨을 쉬곤 했다. 반면 둘째 아이의 입학 통지서를 받아 들고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해준 것도 없는데 이만큼이나 커서 학교를 간다고 생각하니 미안하고 대견한 마음이 턱끝까지 차올랐기 때문이다. 엄마가 옆에서 한숨을 쉬거나 말거나 눈물을 흘리거나 말거나 아이들은 둘째가 학교에 들어가는 것을 기대하고 기뻐한다. 특히 첫째 아이는 집에서만 같이 놀 수 있던 본인 맞춤형 동생을 학교에서 본다는 생각을 하니 신나 죽겠다는 표정이다. 그리고는 짐짓 근엄한 척 학교에서 슬기롭게 살아남기 위한 팁을 줄줄 일러주는 것이 아닌가.


쉬는 시간은 몇 분이고 운동장에 나가 놀 때 조심해야 할 점은 무엇인가, 유치원 선생님과 다르게 학교 선생님은 얼마나 무서운가. 담임보다 무서운 체육 선생님이 따로 있어서 체육을 할 때에는 더 조심해야 한다는 것 등등 쉴세 없이 동생을 교육시키며 중요한 내용을 리바이벌시키는 치밀함이란! 이때까지의 잔소리가 무색하지 않구나 했다.


둘째가 말했다.

“오빠야 그런데 나쁜 친구가 괴롭히면 어떻게 해?”

첫째는 중요한 질문을 잘했다고 칭찬하고는 대답했다.

“나쁜 친구랑 어울려 놀면 안 되지! 말도 섞으려 하지 마. 그런데 말이야 학교 생활에 적응해서 친구들이랑 잘 놀려면 나쁜 아이들의 말을 들어주고 어울려 줘야 할 때도 있어. 그 아이들 말이 맞다고 생각하지 않더라도 잘 들어주고 말이야.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그 아이들에게 괴롭힘 당하지 않고 학교에서 잘 지내기 위해서는 착하기만 해서는 안된다는 거야. 착한 말만 하려고 해서도 안 되고!  뭐든 적당하게 어울려야 하는 거야. 그래야 학교 잘 다닐 수 있어.”


설거지를 하며 아이들의 대화를 몰래 훔쳐 듣던 나는 흠칫 놀랐다. 여느 부모처럼 나도 내 아이들에게 세상의 떼를 묻히지 않고 키우려고 노력했다. 착하고 예쁜 말로 주변을 채우고 올바른 가치관을 심어주려 일장 연설 아니 잔소리에 잔소리를 거듭하며 키웠다. 그렇게 곱게 바르게 키운 첫째 아이는 기관 생활이 힘들었다. 그런 아이가 학교에서도 친구들과도 잘 어울려 놀고 자기주장을 펴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으며 마음을 놓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스스로 타인과 어울리는 길을 찾아 재미있게 생활하고 있다니 매우 기쁜 마음이 들면서도 나 스스로에게 속상한 마음이 들었던 것은 아이의 부적응이 나로 인한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금만 더 열린 마음으로 아이를 세상에 노출시켰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이가 마음고생하지 않고 여느 아이들처럼 평범하게 친구를 사귀고 죄책감 없이 가끔은 나쁜 말도 해 가면서 무난하게 살아가지 않았을까. 생각하고 또 후회했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겠다는 마음. 아이의 행복이나 본성과는 상관없이 착하게 키우겠다는 욕구로 과도한 도덕적 틀을 씌우고 아이를 키운 것은 누구를 위해서였을까? 정작 나는 그렇게 살지도 못하면서. 술도 마시고 가끔은 욕도 하고 짐짓 말실수도 하며 살아가면서도.


그래 우리 그렇게 살자.

실수도 하고 가끔은 센 척하며 나쁜 말도 하고, 나쁜 아이들과 어울려 노는 법도 알고.

구렁이 담 넘어가듯 그렇게.

유연하게 춤추면서 여리면서도 질기게 살자.

크고 중요한 일에 대쪽 같이 곧은 마음으로 살아가려면 작은 일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이 필요한 거지.

그것을 나보다 더 훨씬 어린 나이에 깨달은 너는 대단하구나.

크게 될 상이로다.

그리고 둘째야 살아있는 이야기를 전해주는 이런 오빠가 있어 얼마나 좋으니.

앞으로 오빠의 괴롭힘에 너도 나도 짜증이 나더라도 한 편으로 스스로 처세술을 채득한 고수려니 하며 더 깊은 실망은 하지 말도록 하자.

저렇게 나쁘게 말해서 어쩌나 저 아이의 인성은 왜 저런가 밑바닥까지 내려가 본성까지 의심하지 말자.


겨울이다. 추위 속에서 웅크리며 안으로 안으로 몸을 숙이는 동안 아이들이 자라는 계절이다. 웅크리며 나를 숙이는 동안에야 우리가 자랄 수 있다는 것을 계절의 변화에서 배우며 저마다의 안에서 스스로를 지키는 힘을 키워 나가는 아이들을 조금 더 믿어볼 일이다.


힘든 일도 있껬지만 지금처럼 함께 걸어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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