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희 Dec 31. 2023

도서관에 비밀 창고를 만들었다.

쉿, 여기에 비밀 창고가 있어.

옛날 옛적 어느 마을에 아이들이 걱정되어 떠나는 발걸음이 무거운 선생님이 있었대.

그 선생님이 학교를 떠나는 날 아끼던 아이들 손에 꼭 쥐어준 지도에는 학교의 비밀 창고가 그려져 있다는데, 거기에는 글쎄......


학교를 옮기기로 마음을 먹었다. 4년간 맡은 업무에 최선을 다했다고 믿었고 나름의 보람도, 고통도 모두 다 겪은 이 곳에 더 이상 남겨둘 마음이 없다고 생각했다. 아쉬운 것 없이 시원하게 내신을 쓰고 결과를 기다릴 수 있으리라.


그런데 막상 떠나고자 하니 마음에 남는 얼굴이 몇이나 떠오른다. 중학교 1, 2, 3학년 전체를 4년 동안 가르치다 보니 아이들과 물씬 정이 들어 버린 것이다. 전교생을 다 합쳐도 일선 학교의 한 반 정도 크기 밖에 안 되는 소수의 학생들과 3년간 징글징글하게 붙어 다니며 갖가지 행사를 준비하고, 계절에 따라 성장하는 아이들의 모습에 경이를 느끼다가, 과외에 가까운 수업을 하고, 밥 안 먹는다는 아이를 붙들어 함께 밥도 먹고, 방황하는 사춘기의 열병을 함께 겪으며 무수한 이야기를 나누고… 교사일을 천직으로 삼고 있지만 전형적인 T형의 이성적 인간이라 학생들과 끈끈한 래포를 쌓고 정을 주고받는 일에는 무심한 나였기에 이런 뭉클하고 섭섭한 마음이 낯설기만 하다. 스쳐간 모든 얼굴이 기억에 남지만 그중에서도 까까머리 남자아이들 사이에 끼어 각자의 사연을 긴직한 채 시골 마을의 하루를 견뎌 나가는 여자 아이들 세 명이 유독 눈에 밟힌다.


종교 상의 이유로, 정신적인 이유로, 경제적인 이유로 저마다 열병을 앓고 있는 이 아이들은 조용한 시골 마을에서 학교라는 공간에 둔 마음으로 살아갈 의지를 얻는다. 학교가 마치면 탈출하듯 우르르 빠져나가는 일반적인 아이들과는 다르게 학교를 떠나기 아쉬워하며 선생님들의 퇴근 시간까지 도서관이나 미술실에서 책도 읽고 그림도 그리고 수다도 떨다가 그들을 위해 준비해 둔 퍼즐도 맞추고 블록도 조립하며 함께 문을 잠그고 하교하는 것이 일상인 아이들이다.


어둑어둑 해가 질 무렵 밤잠 많은 노인들의 형광등이 하나 둘 꺼지고 나면, 긴긴밤은 이제 이들에게 견뎌내야 하는 시간이 된다. 학원은커녕 가장 가까운 친구의 집은 걸어서 30분 거리이고 집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부모님과의 약속에 따라 세상과의 유일한 연결고리인 핸드폰도 내려놓아야 하는 아이들의 하루를 생각하면 먹먹해지곤 한다.


가진 것이 너무 많아 미니멀리즘이라는 기치를 내거는 것이 자랑인 세상이 되었지만 이 아이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자신의 공간을 가지지 못했다. 그중에서도 종교적인 이유로 힘들어하는 한 아이는 부모라면 누구든 쌍수 들고 환영할 책을 읽는 모습마저 감시와 검열의 대상이 되어 자신만의 책상과 책장을 가지는 것조차 요원하다. 각자의 서재를 가지는 것은 너무나도 중요하다. 그것은 서재라는 공간이기 이전에 개인의 정신과 감성이 물성으로 실현되는 공간이다. 그 안에서 자유롭게 꿈을 꾸고 자신의 정체성을 이룩해 나가야 할 아이들은 서재는커녕 책장도 가지지 못한 채 조금씩 무뎌져 가는 삶을 받아들이고 있다.


며칠간 머리를 싸매고 궁리하다가 도서관 구석에 박혀 아무도 쓰지 않는 오래된 서랍장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10년 전쯤 사용하던 케이블 타이 잔뜩 묶인 전선 뭉치 한 움큼을 행정실로 보내고, 이전에 도서관을 담당하셨던 선생님들의 검열에 걸려 아이들에게 대출해 주지 못했던 여러 책들을 처분하고 나니 가로 세로 30센티 정도의 작은 공간이 생겨났다.


그리고 여기에 작은 보물 창고를 만들었다.



종교적인 이유로 다양한 콘텐츠를 접하지도 채우지도 못하는 한 아이를 위한 보물 창고다. 종교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종교 이외의 것들과도 만나 기존에 가지고 있는 가치를 강화시키고 때로 전복시키며 치열하게 자신을 구성해야 하는 시기라는 것을 알기에. 똑똑하고 정의로운 내 제자가 앞으로도 편향되지 않게 선량한 영향력을 두루 미치는 크리에이터이자 성인으로 자라났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다. ‘축의 시대’(카렌 암스트롱)와 ‘배움의 발견’(타라 웨스트오버) ‘키르케’(매들린 밀러)를 위시한 다양한 책을 어떠한 사상적 검열 없이 읽을 수 있게 채워 둔다. 나를 대신해 아이를 이끌어 줄 애정하는 작가님들의 팟캐스트와 유튜브 목록들도 차곡차곡 모아 적어 둔다. 섭식 장애가 있는 아이를 위해 맛있고 균형 잡힌 식사와 요리법을 소개하는 채널과 혹여 독립할 그날을 준비하도록 유명한 재테크 채널도 추가해 본다. 그리고 힘들 때 위로받을 수 있는 영상들의 목록도 써내려 간다. 달콤한 간식 주머니 두 개와 필기감 좋은 샤프, 볼펜 몇을 넣으니 서랍은 포화상태다.



뜬 자리에 흔적을 남기지 말아야 하는데 전입해 오시는 선생님께는 미안한 일이다. 그래도 나는 딱따구리처럼 내가 떠난 자리에도 아이들의 마음을 맡아 둘 아늑한 공간을 남겨 본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을 좋아한다. 양극화가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가난하고 힘없는 자를 향한 자리가 점점 더 줄어들고 있지만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는 주체적인 성장의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란다. 세상을 향해 ‘나 성공한 사람입니다.’ 외치지 않더라도 충분히 괜찮은 사람으로, 성숙한 인격체로 자기 삶을 꾸려 나가는 제자들의 모습을 그린다. 서랍 속 작은 세상에서 조금이나마 따뜻한 세상과 영감을 주는 스승을 만날 수 있기를.


‘너는 자라 내가 되겠지. 겨우 내가 되겠지.’ 김애란 작가의 <비행운>에 나오는 문장이다. 다소 편협하고 개인적인 나의 기록을 서랍 속에 빼곡히 붙여 넣으며 몇 번이나 곱씹어 생각했던 문장이기도 하다. 그래 아마도 나는 나 이상의 누군가를 만들어 내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또 제자가 스승을 뛰어넘는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


소소한 일상의 행복 속에서 조금씩 성장하고 가치관에 불을 질러 새로운 변화를 서서히 모색하는 선생님의 삶으로 초대할게. 기꺼이 판단하고 비판하며 더 나아가줘.
얘들아, 그곳에서 우리 곧 다시 만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