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깊은 조급증과 이별하려 합니다.
제야의 종소리를 듣지 않은 지도 7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두 살 차이 남매를 기르면서 시간의 흐름도, 나이를 먹는다는 것도 아이들의 나이로만 겨우 어림할 뿐이다. 12월 31일에서 1월 1일로의 변화는 연속적인 시간의 흐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큰 의미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부러 분절시켜 한 시간대를 규정함으로써 생각의 자세를 교정하는 것은 의미가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나이는 셈하지 않으면서도 매해의 시작마다 계획을 짜고 연말에는 다소 자조 섞인 반성을 해보는 것을 좋아하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2023년 연초부터 받아 든 업무분장에 너무 큰 좌절을 느껴 별다른 계획을 세우지 못했다. 그저 단 한 가지, 친정에서 내려받아 평생을 시달려온 뿌리 깊은 조급증에서 벗어나 여유 있게 일과 육아를 병행하며 일상에 큰 무리 없이 무사히 받아 든 일을 해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다. 조급증과 함께 살아가는 것은 어떤 일을 하더라도 스스로가 만든 마감 시간에 쫓기며 끝나지 않는 마라톤을 하듯 이 일과 저 일 사이에 바통을 넘겨주며 스스로를 압박하는 방식으로 모든 일을 진행하는 것이다. 책 읽기도, 쇼핑도, 육아도, 직장 일도 그 영향력을 벗어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렇게 일하다 보면 성과가 높게 나올 것 같지만 쫓기듯 바쁘게 처리하는 일에는 실수가 많고 수많은 일들이 서로의 꼬리를 물어 어떤 일에서도 전문가가 되기는 어렵다.
조급증과의 이별을 준비하며 결심한 것 중 하나는 매뉴얼을 꼼꼼하게 읽어보겠다는 다짐이었다. 여러 가지 일을 급하게 처리하면서 붙은 나쁜 습관이 ‘별다른 게 있겠어?’하며 매뉴얼을 대충대충 흘려보는 것이라 그런 자세부터 바로 잡고 싶었다. 목적과 취지에서부터 세부적인 지시사항, 후속조치까지 시험 공부하듯 형광펜으로 줄 쳐가며 열심히 익히고 차근히 업무를 진행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낯선 감각이었고 한 가지 일을 제대로 처리하고 있다는 유능함에 조급한 마음이 사그라드는 것 같았다. 불쑥불쑥 이 일도 해야 하는데, 매뉴얼만 읽고 있을 시간이 아닌데, 애들하고 놀아줘야 하는데…. 저마다의 중요성을 가진 갖가지 일들이 불쑥불쑥 솟아올라 또다시 심장 박동을 거세지게 만들면 그 마음을 붙들고 이야기했다. ‘이것 좀 봐. 나 한 가지 일에 이렇게 공을 들이고 있어. 이제 곧 네 차례가 될 거야. 그땐 아무런 방해 없이 너에게만 내 마음을 쏟아 줄게. 조금만 기다려.’ 토닥토닥…
조급증과 이별하기 위한 두 번째 방법은 기다림을 익히는 것이었다. 육아에서는 당연한 일이거니와 일의 성격에 따라 어떤 일은 쉽사리 마무리 지어지지 않고 이 사람 저 사람의 손을 타며 내게로 다시 돌아온다. 지난한 피드백의 과정을 여러 번 거친 후에야 비로소 내게서 떠나가는 일들도 있는 것이다. 성질 급한 나에게는 견디기 힘든 시간이기에 때로는 부장님을 독촉하고, 서면으로 주고받을 문서를 직접 들이밀며 빠르게 밀어붙이곤 했다. 기다림을 불러들인다. 서두르려는 몸의 감각들을 내리눌러 기다림 옆에 앉힌다. ‘조금 늦어도 괜찮아. 여유도 있으니 우리 커피나 한 잔 할까?’ 토닥토닥…
이런저런 시도 끝에도 나는 여전히 조급증과 함께 살고 있다. 변명을 하자면 업무의 양 자체가 절대적으로 많으면 서두르지 않으려는 어떠한 노력도 무용지물이 되더라는 것인데 그래도 큰 사건 없이 잘 마무리된 여러 일들을 돌아보며 그것이 전부 이러한 노력에 빚지고 있다고 스스로를 토닥여 본다. 조급증과의 이별은 부러 발달시킨 예리한 감각을 녹슬어 둔하게 만드는 과정이기도 해서 때로 무력해지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스스로가 만든 다른 이들의 평가와 시간의 급박한 흐름이라는 속박에 빼앗기던 에너지를 내 안으로 불러들이는 과정이기도 하다. 2024년의 나는 조금증과의 이별을 계속해 나가려 한다. 맡을 수 없는 양의 업무는 대차게 거절하는 배짱도 키웠으면 좋겠다.
밖에서 들리는 온갖 소음보다 내 안에서 들려오는 작은 토닥임에 귀 기울이며 조금 더 세심하고 배려 깊은 한 해가 되기를.
모두에게 Happy new year.
사진출처 :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