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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희 Dec 13. 2023

함께 읽는 책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이꽃님), 어린이라는 세계(이소영)


늦은 오후. 길게 뻗은 해의 끝자락이 방 구석구석에까지 스밀 무렵, 겨울날의 공기는 차갑고 따뜻한 방바닥은 노곤노곤하다. 버터향 물씬 나는 따뜻한 빵조각을 덥히고 미지근한 보리차 물 한 잔을 준비하여 아이들과 뒹굴뒹굴 각자의 책을 읽는다. 제각각 다른 세계 속에서 거닐다가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오거나 멋진 표현이 등장하면, 아름다운 그림이 삽화로 제시되면 함께 이야기 나누는 날들을 꿈꾼다. 이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풍경 중의 하나이다. 그리고 맞이하기 위해 치밀하게 계획하고 드물게 마주하는 귀한 순간이기도 하다.


아이와 부모가 함께 책을 읽는 장면을 싫어하는 이가 있을까? 하지만 그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시간이나 장소와 같은 물리적인 요소가 마련되어야 하고 부모와 아이들의 정서적 거리가 가까워야 하며, 독서를 즐기는 문화를 공유해야 한다는 세 가지 조건이 갖추어져야 비로소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특히나 사춘기의 절정인 청소년들이 부모와 마주 앉아 책을 읽는다는 것은 이제는 멸종한 공룡의 정강이뼈만큼이나 찾아보기 힘든 풍경이기도 하다.


그래도 나는 때로 이 불가능한 일들을 꿈꾼다. 부모님들의 독서에 진심인 것도 이 귀한 아름다움을 함께하기 위해서이다.


여행을 함께 가고, 맛있는 것을 함께 먹고, 캠핑을 함께 떠나는 것도 좋지만 독서를 통해 같은 서사를 공유하고 그것에 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관계는 조금 더 내밀하다. 일상적인 대화 주제에서 벗어나 대화 소재가 확장될 수도 있고 같은 이야기를 읽고 다른 것들을 발견해 내는 서로를 보며 신선한 감각을 다소 식상한 가족 관계로 불러들이기도 한다.



이렇듯 아름다운 순간이지만 엄마가 또는 아빠가 재밌게 읽었으니 너도 한 번 읽어 보라는 뻔한 말은 곤란하다. 부모가 읽고 좋았던 문화적 산물을 환영하며 즐기는 청소년은 흔치 않다. 자신 안에서 부러 부모의 흔적을 지우고 자신들만의 콘텐츠를 찾아 나가는 것이야말로 청소년기의 특권이니 우리는 같이 걷던 길에서 슬그머니 뒤로 빠져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천천히 뒤따라가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부모로서 좋은 것들을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은 아름답고 간절하기만 하기에 오늘의 책 추천을 준비했다.


오늘 함께 읽고 싶은 책은 이꽃님 작가의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와 이소영 작가의 ‘어린이라는 세계’이다.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

두 사람의 진심이 하나의 진실을 향해 가는 동안 쌓아 올린 먹먹한 감동
“나에게. 아빠가 쓰라고 해서 쓰는 거야.” 첫 문장으로 시작한 편지가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라는 마지막 문장에 닿기까지, 두 사람의 진심이 하나의 진실을 향해 가는 동안 쌓아 올린 감동은 많은 독자들에게 울음을 울게 만들었다. ‘은유’라는 똑같은 이름을 가진 두 사람이 시공간을 초월해 편지를 주고받으며 펼쳐지는 이 코끝 찡한 이야기는 드라마와 영화로 제작 중이다. (중략) ‘감동’과 ‘눈물’이 언급되는 평이 압도적으로 많은 이 책은 청소년을 넘어 초등학생부터 성인까지 단숨에 몰입시키며 폭넓은 지지와 공감을 끌어내었다. 또래 친구에게 추천하는 책, 자녀에게 추천하는 책, 부모에게 권하는 책, 최애작으로 독자들이 손꼽는 이유는 여타 수식을 제거하고 ‘재미있고 감동적이며 위로받았다’는 것. 평범한 우리 일상을, 우리 자신을 기적이라 여기게 되는 힘을, 먼 거리에 놓여 다가설 수 없을 것만 같은 서로를 좀 더 이해해 보려는 힘을 이 책 안에서 발견하게 되어서가 아닐까.

- 예스 24 책 소개-

 

편지를 통한 타임스립을 소재로 책으로 영화 ‘시월애’와 ‘동감’을 떠올리게 하는 책이다. 타임슬립은 SF의 공식으로 자리매김할 만큼이나 독자들을 강력하게 끌어들이는 문학적 장치이다. ‘은유’라는 동일한 이름을 공유하는 이들이 시간을 건너 편지를 주고받는다는 설정 만으로도 아이들은 이 책에 몰입한다. 불평불만 가득한 평범한 청소년의 일상에 편지를 주고받으며 두 ‘은유’는 서로를 위로하고 성장하게 되고 끝끝내 서로의 정체를 궁금하게 여기게 된다. 어느 지점에선가부터 미스터리처럼 펼쳐지는 ‘은유’ 찾기의 여정에서 우리는 그 서사에 빨려 들어가 마침내 ‘은유’가 되어 눈물 흘리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스포 주의!) 부모와 한자리에서 읽지 않더라도 아이들은 이 책을 읽으며 그들의 부모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고리타분한 세계 속에서 잔소리만 하던 부모의 세계 속으로 성큼 걸어 들어가 부모도 자신들과 마찬가지의 방식으로 성장해 온 인격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서로를 이해하게 하는 힘이 이 책에는 분명히 있기에 아이들과 투닥투닥 크고 작은 다툼이 있는 시기에 함께 읽어 보시기를 강권한다.


이 책의 작가는 불패의 책에서 소개했던 ‘죽이고 싶은 아이’, ‘당연하게도 나는 너를’을 쓴 이꽃님 작가이다.

- 전에 네가 잘 읽던 작가의 또 다른 책인데 재밌어 보여서 샀어. 네가 먼저 읽고 엄마 빌려줘. 재밌으면 엄마도 읽어 보게.

무심히 던지고 늘 그렇듯 쿨하게 나오시기를 바란다. 그리고 절대로 독촉은 금물. 표지만 보고 내팽개쳐 두다가 게임과 SNS, 유튜브 시청이 시들해진 어느 순간엔가 아이가 책을 손에 들 수 있게 시간을 주시기를. 거기에는 무한한 인내가 필요하겠지만, 마침내 책과 마주한 순간 ‘은유’를 찾아 긴 여정을 함께 하고 한층 더 말랑말랑해진 아이들과 함께 애정 어린 대화를 나누는 저녁이 기다리고 있음을 믿는다.

 

<어린이라는 세계>

어린이는 잘 보이지 않는다. 몸이 작아서이기도 하고, 목소리가 작아서이기도 하다. 양육이나 교육, 돌봄을 맡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우리 곁에 어린이가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한 채 살아가기 쉽다. 10년 남짓 어린이책 편집자로 일했고, 지금은 독서교실에서 어린이들과 책을 읽는 김소영은 어린이의 존재를 더 잘 보이게 하기 위해 부지런히 글을 쓰고 목소리를 내 왔다. 『어린이라는 세계』에는 김소영이 어린이들과 만나며 발견한, 작고 약한 존재들이 분주하게 배우고 익히며 자라나는 세계가 담겨 있다. 이 세계의 어린이는 우리 곁의 어린이이기도 하고, 우리 모두가 통과해 온 어린이이기도 하며, 동료 시민이자 다음 세대를 이루는 어린이이기도 하다.
독서교실 안팎에서 어린이들 특유의 생각과 행동을 유심히 관찰하고 기록하는 김소영의 글은 어린이의 세계에 반응하며 깨닫는 어른의 역할과 모든 구성원에게 합당한 자리를 마련해야 할 사회의 의무에 이르기까지 점차 넓게 확장해 간다. 어린이를 더 잘 이해해 보려는 노력은 나 자신을, 이웃을, 우리 사회를 구석구석까지 살피려는 마음과 다르지 않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모두가 경험하지만 누구도 선뜻 중요하다고 말하지 못했던 어린이에 관한 이야기를 비로소 시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 예스 24 책 소개 -


이 아름다운 책을 어떻게 소개해야 하나 고민이 많았다. 각 가정에 하나씩 들여 드리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애정을 가지고 있다. 부모님들도 부모가 아닌 어른들도 꼭 한 번씩 읽어주기를 바라는 이 책은 우리가 지나왔고 누군가는 겪고 있을 ‘어린이’라는 세계를 자극적인 소재 하나 없이 아름답게 그려낸다. 단언컨대 우리는 이 책을 읽으며 어느 지점에서 위로받을 것이고 또 다른 지점에서는 뉘우치게 될 것이다. 우리 또한 한때 어린이였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우리가 키우고 있는 어린이들을 내 안에 잠자고 있던 아이의 눈으로 바라보고 이해하게 하는 귀한 책이다.


이렇게나 아름다운 책이지만 안타깝게도 아이들은 에세이(수필)를 싫어한다. 이 분야의 책들을 사랑하는 나로서는 가슴 아픈 일이지만 감히 단정해서 말할 수 있다. 세상을 자신의 감각으로 깨달아가는 아이들은 다른 이들이 남긴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이나 감상에 대한 것들을 귀찮게 생각하거나 하찮게 여기며 다소 엉성하나마 뚜렷한 색으로 자신들의 세계관을 완성해 나간다. 이것은 젊음의 특권이다. 다른 이들의 세련된 노하우 따위 스스로 깨달아가는 인생의 서툰 그림과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청소년을 위한 독서 목록에 에세이를 넣는 것을 상당히 자제하는 편이다.


아이들에게 에세이 책 전체를 선뜻 건네지 않는다. 책을 읽고 나를 울린 글 한 편을 골라 필사하고 그것으로 마음을 전하는 편지 한 통을 쓰곤 한다.



오랜만에 긴 편지를 써 볼 일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글이 있단다.' 에세이의 세계로 아이들을 초대하는 편지를.

오늘 이 글을 읽으며 너를 생각했어.
내가 없는 시간의 너를.
내가 경험해 보지 못한 생각을 하는 너를.
내가 모를 서운함을 느끼고 외로움을 느끼며 그러면서도 단단하게 성장하고 있는 너를.

나도 너를 향한 상상력을 이만큼이나 넓혀서 더 잘 이해해 보고 싶노라고. 너는 내가 가진 가장 소중한 것이며 그러기 위해 그 어떤 고민과 상념의 시간도 기꺼이 함께 하겠노라고. 내 앞에 있는 너를 더 잘 이해하고 사랑하기 위해 너의 내면을 향한 상상의 지평을 조금 더 펼쳐 보고 싶었다고.


욕심 나는 책들은 이렇게나 많지만, 때를 기다리며 읽단 코 재워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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