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비건(김한민), 나의 비거니즘 만화(보선), 긴긴밤(루리)
우리는 우리가 느끼는 모든 감정의 이름을 모두 다 알고 있고 우리에게 주어지는 상황에 맞게 그 감정을 느끼며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퍽 그렇지는 않다. 존재하는 줄도 몰랐지만 이름을 붙여 줬을 때에야 비로소 깨달을 수 있는 감정들이 있다면 부끄러움이야 말로 그에 가장 가까운 감정일 것이다. 때로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일들은 그 이면을 알고 나서야 추악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럴 때면 나도 모르게 큰 실수에 가담하는 일원이 되었음을 깨닫고 부끄러워지곤 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끊임없이 현실의 뒷 페이지를 알려주는 책, 우리를 비춰줄 수 있는 책,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는 책을 읽어야만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육식에 대한 화두에서 비켜날 수 있는 현대인이 있을까? 고기는 맛있는 한 끼를 대변하는 반찬이고, 소중한 이를 접대하는 마음이며, 한 끼를 수월하게 넘길 수 있는 실패 없는 반찬이다. 개나 고양이와 같이 살아 움직이며 우리에게 사랑받는 동물들과는 동떨어진 감칠맛 도는 하나의 상품이다. 그래서 혼자 끼니를 해결하기 시작한 무렵 고기를 굽다 선명한 붉은 빛의 피가 근육과 뼈의 사이사이에서 뭉근히 흘러나오는 모습을 보며 흠칫 놀라기도 했다. 그것이 누군가의 살이라는 당연한 일을 잊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나를 비롯한 현대 사회의 많은 사람들은 ‘고기’가 나와 내 아이들이 먹기 위해서 죽어야 하는 ’동물‘이라는 것을, 우리의 식탐을 위해 부모와 생이별을 하거나 강제로 임신해야 하는 ’동물‘이 있다는 것을 애써 외면하며 모르는 척 살고 있다.
눈을 감고 잠깐의 쾌락을 위해 우리가 외면하고 있는 것들을 상상해 보자. 살육당하는 소의 처량한 눈동자와 전염병이 돈다는 이유로 살아 있는 채로 땅 속에 묻혀야 했던 수많은 돼지들, 치킨 공화국이라는 이름 뒤에 숨어 있는 열악한 조건의 닭사. 애완동물의 사료와 간식을 만들기 위해 죽어가는 오리와 양. 말랑말랑한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새끼를 고기로 내어 주어야 하는 어미 동물의 눈물... 이들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감정은 요동치고 끝끝내 목이 메는 이들의 모습을 본다. 나와 다른 존재를 끌어안을 수 있는 어떠한 인간다움의 모습이 거기에 숨어 있다. 이에 나는 그 순간을 위해 기꺼이 독서 수업 시간의 일부를 '비건'에 대한 책에 내어준다.
하지만 비건에 대한 이야기를 아이들과 나누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단백질 섭취가 필수적인 청소년 시기에 비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아이들의 성장을 방해하는 행동으로 오해받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이 이야기를 청소년들과 함께 나누는 것이 아이들을 난쟁이로 만드려 하거나 힘없는 말라깽이로 만들려는 의도인 것은 당연히 아니고 그들 모두를 비건으로 살아가게 하기 위함도 아니다. 그저 이렇게 많은 양의 고기를 소비하는 것은 절대로 일반적이지 않은 일이며 우리의 육체와 정신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결코 건강하지 않은 일임을 알려주기 위해서이다. 또한 많은 논란 속에서도 축산업이 기후 위기를 불러들이는 큰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육식을 하는 우리는 알아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내가 먹는 것의 원천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야 말로 앞으로 자신의 식생활을 주도적으로 해결해 가야 할 아이들이 반드시 확인해야 할 내용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매년 비건에 대한 책 읽기를 계획한다. 때마다 감정의 소모가 커서 결국엔 아이들과 함께 울어버리곤 하는 수업이지만 이 수업으로 인해 세상을 다층적으로 이해하고 자신의 식습관을 살펴볼 아이들을 생각하며 '아무튼, 비건'(김한민), '긴긴밤'(루리), '나의 비거니즘 일기'(보선) 세 권의 책을 소개한다.
부끄러움과 죄책감의 기반 위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터전을 망치는 식량으로
번영을 누리고 기쁨을 얻으면서
행복한 먹는 생활을 지속할 수 있을 것인가?
아이들과 함께 생각하는 책 읽기의 시간이다.
<아무튼, 비건>
김한민 작가는 한때는 남들처럼 고기를 즐겼던 자신이 어떻게 비건이 되었으며, 어떻게 이를 지속해오고 있는지, 그리고 결국은 동물이 어떻게 자신에게로 다가왔는지 이 책에서 차근차근 풀어내고 있다. 아울러 ‘비건적인’ 작은 노력들을 실천할 수 있는 방법들을 제시하면서, 완벽함에 매몰되지 않고 천천히 비건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마지막 부분에서는 비건에 대해 자주 나오는 질문을 소개하고 그에 대한 답을 제시하는 형식으로 비건의 논리와 철학을 보여준다.
yes 24 '아무튼, 비건'(김한민) 책소개
이 책은 친절하지 않다. 우리가 외면해 왔던 육식 산업의 모습을 글과 그림으로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이래도?, 이래도? 먹을 수 있어?’ 우리를 시험대 위에 올려놓는다. 이 책을 읽으면 가까이에서 이렇게 잔인한 방식의 집단 살해가 매일 같이 이루어지고 있음에도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구나 반성하게 된다. 내 밥상에 오르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군침 도는 고기 한 점이 항생제와 호르몬제의 또 다른 이름은 아닐까 의심하게 된다. 육식을 권하는 사회의 이면에 이득을 취하고 있는 거대한 존재가 있음을 알려준다.
이토록 무거운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술술 제시하는 이 책은 비건들 사이에서 입문서이자 안내서로 통한다. 그만큼 무겁지도 않고 페이지 수도 많지 않아 아이들이 쉽게 완독할 수 있는 사회과학 분야의 서적이기도 하다. 문학 분야에 치우쳐 온 아이들의 독서가 걱정인 분들이라면 이 책을 통해 ‘사회 과학’ 분야로 확장되는 독서의 퀀텀 점프를 시도해 보면 어떨까 생각한다. '이런 것이 사회학 서적이라면 ‘3’번 띄지를 두른 다른 책들도 읽어볼 수 있겠군.' 미지의 분야를 향해 걸어가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조금씩 확장하는 책 읽기를 유도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긴긴밤>
세상에 마지막 하나 남은 코뿔소가 된다면, 소중한 이를 다 잃고도 ‘마지막 하나 남은 존재’의 무게를 온 영혼으로 감당해야 한다면 어떠할까? 친구의 마지막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어린 생명이 마땅히 있어야 할 안전한 곳을 찾아 주기 위해 본 적도 없는 바다를 향해 가는 마음은 어떤 것일까?
이 책은 지구상의 마지막 하나가 된 흰바위코뿔소 노든과 버려진 알에서 태어난 어린 펭귄이 수없는 긴긴밤을 함께하며, 바다를 찾아가는 이야기이다. 울퉁불퉁한 길 위에서 엉망인 발로도 다시 우뚝 일어설 수 있게 한 것은, 잠이 오지 않는 길고 컴컴한 밤을 기어이 밝힌 것은, “더러운 웅덩이에도 뜨는 별” 같은 의지이고, 사랑이고, 연대이다.
yes 24 '긴긴밤'(루리) 책소개
멸종 위기에 처한 흰바위코뿔소 노든은 코뿔소이지만 코끼리들 틈에서 자라난 친구도, 혈육도 없는 외로운 존재이다. 가까스로 생추어리를 탈출한 그는 그와 같은 종의 암컷을 가까스로 만나 사랑에 빠지고 새끼를 낳아 기르지만 뿔 사냥꾼들에 의해 가족을 잃고 홀로 동물원으로 보내진다. 처절한 슬픔과 고독 속에서 그는 자신의 아픔을 극복해 나가고 마침내 다른 생명과의 연대를 이루어 나간다.
자신의 생존을 넘어서 다른 종과 손잡고 연약하고 어린 것을 향해 온기를 내뿜는 노든을 보며 그것이야 말로 인간이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인간다움이 아닐까 반성하게 하는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며 단 한 마리의 동물이라도 조금만 더 오래 살아남아 주기를 아이들과 기도한다. 인간이 아닌 것들과 연결되어 풍성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것이야 말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행복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손을 뻗어 지켜야 할 아름다움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 주는 아름다운 책이다. 초등 저학년부터 일반에 이르기까지 모두를 끌어안을 수 있는 이 아름다운 책을 권할 수 있어 기쁘다.
<나의 비거니즘 일기>
작가 자신을 투영한 인물이자 화자인 나, ‘아멜리’는 비인간 동물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어 비건이 되었다. ‘비거니즘’이란 단순히 ‘고기, 생선, 유제품을 먹지 않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일종의 ‘삶의 태도’이며 그러한 태도로 살아가는 사람이 ‘비건’이다. 비거니즘이라는 가치관을 소개하기 위해 이 만화는 나와 다른 존재를 존중하는 법, 동물을 몰개성화하거나 대상화하지 않는 태도, 육식의 불편한 진실, 비인도적인 동물 착취 등에 대해 다룬다. 또한 비건의 일상과 다양한 비건食에 대해서도 그린다.
yes 24 '나의 비거니즘 만화'(보선) 책소개
'아무튼, 비건'과 비슷한 내용을 다루고 있지만 청소년들이 조금 더 접근하기 쉬운 만화 형식으로 된 책이다. ‘아무튼, 비건’이 우리를 호되게 야단치는 따끔한 일침이라면 나의 비거니즘 일기는 슬픔과 죄책감 속에서 우리의 마음을 조용히 움직여 다른 동물의 옆에 슬그머니 가 앉게 하는 책이다. 소의 넓은 등을 어루만지며 가만히 그를 토닥이고 미안하다고 이야기하고 싶어지는 책이다.
매년 아이들과 비건에 대한 책을 읽고 이야기하려 노력한다. 이것은 기후 위기와 환경오염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올바른 식습관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며 나와 다른 존재를 끌어안으려는 인간다움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우리의 일상이 누군가의 생명에 빚지지 않는 세상을 꿈꾸며
저편에서 나를 부르는 비건들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고백하건대 나는 아직도 비건이 되지 못했다. 비건 지향적인 삶을 꿈꾸며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인 나는 다가 올 여름 강원도 인제군으로의 여행을 꿈꾼다. 이슬아 작가의 친구들 '동물해방물결'이 '달뜨는 마을 보금자리'를 조성한 강원도 인제군의 소 생추어리에서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자유를 얻은 소라는 동물을 식량이 아닌 친구로 맞이하기 위함이다. 강원도로 향해 가는 우리 가족의 발걸음이 채소와 과일로 속을 채운 내 몸처럼 가벼울 수 있기를 나는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