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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희 Nov 29. 2023

두근거리는 책

‘연의 편지’(조현아), ‘사랑에 빠질 때 나누는 말들’(탁경은)

그에게서는 비누향이 난다.
‘젊은 느티나무’(강신재)


 아직도 나를 설레게 하는 이 소설의 도입부는 내 젊은 날의 문장이었다. 1960년대에 출간된 ‘젊은 느티나무’는 부모님의 재혼으로 남매가 된 두 남녀의 사랑이야기이다. 아직도 이 소설이 어떻게 그 엄격한 검열 과정과 보수적인 교과서 집필진을 뚫고 우리에게 왔는지 모를 노릇이지만 감사하게도 이 작품은 90년대 흑백 교과서 같은 수험생의 삶에서 작은 탈출구가 되어주었다. 할 수만 있다면 작가님께 부탁하여 2023년 버전의 ‘젊은 느티나무’를 의뢰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지만 2001년 작고하신 작가님을 기리며 나는 나 스스로 2023년의 느티나무를 찾아야만 한다.


 바야흐로 21세기, 남자아이들의 영역이라고 칭해지던 다크 판타지 만화, 스포츠 만화 등을 즐겨 읽는 여자 아이들은 많아졌지만 로맨스 소설이나 만화를 찾아 읽는 남자아이들은 거의 없다. 멸종 위기에 처한 로맨틱한 남자아이들은 설사 읽고 싶은 마음이 있더라도 잘 표현하지 못하고, 아무도 없는 이른 점심 시간 몰래 다가와 나에게 귓속말하듯 작은 목소리로 말을 건넨다.

- 선생님 ‘OOOO’ 있어요?

처음에는 사랑 이야기를 찾는 남자아이들에 대해 나조차도 생경감을 느꼈으나 도서관 4년 차의 지금은 연애 소설을 읽고 있는 남자아이들의 뒷모습이 아름답고 사랑스럽기만 하다. 오랜 시간의 추적(?) 관찰에 의하면 그들은 이 독서를 통해 어떤 전형성이 있는 부류로 급격하게 바뀌게 된다.


 첫째, 여성에 대한 높은 이해를 바탕으로 선생님, 여자 친구들 및 인류 전반에 대해 매너 있는 태도를 장착한다.

 둘째, 언젠가 있을 연애의 물꼬를 트기 위해 여자 친구들의 말을 잘 들어주고 선량한 눈빛으로 자신을 무장하곤 한다.

 셋째, 외모는 차지하고서라도 비위생적인 남자아이와 연애를 하는 소설은 없으므로 위생에 신경 쓰고 스스로의 외모를 가꾸는 데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이는 실로 실존적인 변화라 할 수 있다. 사랑이 아닌 그 어떤 것이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이토록 빠르고 아름답게 변화시킬 수 있을까? 생을 살아나가는 강력한 스킬들을 장착하고 한층 더 부드러워진 남자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즐겁다. 스스럼없이 찾아와 책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하고 고민이 있으면 조금 더 개방적인 태도로 다가와 상담을 하기도 한다. 조별 수업에 조금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여자 아이들과의 의견 교환을 시도하기도 한다. 더 이상 여자 아이들을 머쓱해하거나 신비의 동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진짜 연애가 시작된다면 그야말로 축하할 일이지만 생각보다 수줍고 어리숙한 중학교 남자아이들이 연애를 시작하기란 쉽지 않다. 오히려 연애소설 따위 읽지 않고 능구렁이 같은 태도로 여자 아이들에 대한 기본적인 매너나 연애에 대한 간접적인 노하우가 없는 남자 아이들이 주로 연애를 시작하곤 하는데 이 것이 더 큰 문제가 되곤 한다.

 

 그래서 나는 독서 시간에 로맨스 만화와 소설을 강권하는 교사가 되기에 이르렀다. 먼저 다가오기 힘든 아이들에게 내가 먼저 손을 내밀어 붙잡고 가는 격이다.

- 너 이 책 읽어 봤어? 선생님은 너무 재밌었거든. 딱 30쪽만 읽어봐.

 못 이기는 척 금단의 선을 넘어 로맨스 소설이나 만화에 손을 뻗기만 하면 남자아이들은 그 어떤 여자 아이들보다 강하게 서사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인류의 절반에 대한 이해가 깊어진 아이들이 그윽해진 눈빛으로 ‘선생님 이런 거 한 권 더 주세요.’ 나지막하게 이야기하면 나의 영업은 오늘도 성공이다. 이번엔 특히 꼬리에 꼬리를 물고 올라오는 큰 손님을 잡았다는 것을 안다.

- 그치! 선생님도 이 책 너무 재밌게 읽었어. 여주가 너무 예쁘지 않니? 소설이지만 이 이야기도 너무 좋은데 읽어봐. 알지? 겁내지 말고 딱 30쪽만! 이번 책은 여주가 완전 예쁘지는 않아도 엄청 매력 있어!




 앞서 이야기한 여러 가지 좋은 점에도 불구하고 로맨스를 다룬 작품들을 적극적으로 추천하는 것은 다소 걱정이 따르는 일이기도 하다. 아이들 독서 흥미 유발을 한답시고 수위가 너무 높은 작품을 고르거나 외모 지상주의, 능력 지상주의 등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을 추천하여 역효과를 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분야의 작품을 소개할 때에는 그 어느 때보다 더 꼼꼼하게 읽고 여러 가지를 고려하고자 한다. 이런 나름의 기준을 통과하고 오늘 소개할 작품들은 ‘연의 편지’(조현아), 와 ‘사랑에 빠질 때 나누는 말들’(탁경은)이다.



편지와 함께 찾아온 마법 같은 시간
낯설고 두려운 순간, 나를 인도하듯 날아온 편지와 그 안에 적힌 수수께끼.
편지를 따라가면 너를 만날 수 있을까…?
주인공 소리는 이전 학교에서 겪은 학교 폭력의 후유증으로 새로운 학교에서도 겉돌고 있었으나 어느 날 책상 안쪽에 붙어 있는 숨겨진 편지를 발견하며 모든 것이 바뀐다. 발신인 불명의 편지는 학교의 지름길, 반 친구들의 얼굴과 이름표, 선생님의 특징을 설명하며 소리가 새 학교에 빨리 적응하면 좋겠다고 응원해 준다.

예스24 ‘연의 편지’(조현아) 소개 글


 표지부터 매력적인 이 작품은 그림에서 서사까지 전 연령대를 휘어잡는 힘이 있는 아름다운 작품이다. 학교 폭력을 못 본 척 넘기지 못했다는 이유로 괴롭힘을 당해 전학까지 가게 된 소리는 전학 간 학교에서도 적응이 쉽지 않다. 그러던 어느 날 책상 아래에서 우연히 발견한 수수께끼 같은 편지를 추적해 가기 시작한다. 10통의 편지를 쫓아 발신인을 찾아 가는 과정에서 소리는 우정과 용기를 찾고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비밀의 정원처럼 아름다운 학교를 배경으로 소리, 동순, 호연의 우정과 사랑을 오가는 아름다운 이 이야기는 너무나도 매력적이다. 자극적인 요소 하나 없이 아기자기한 그림과 서사가 가지고 있는 힘만으로도 모든 이들에게 사랑받는 이 만화책을 건네고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다.


https://www.youtube.com/watch?v=vqyOXKqZl4I&ab_channel=%EB%84%A4%EC%9D%B4%EB%B2%84%EC%9B%B9%ED%88%B0


중학생 때 첫사랑이자 짝사랑의 아픔을 겪은 서현이는 그때부터 아무도 좋아하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그런데 고등학교 소논문 동아리에서 만난 동주가 자꾸만 서현이에게 다가온다. 입시 공부, 진로 문제만 고민하기에도 버거운 열일곱인데, 서현이 친구 지은이가 동주를 좋아하면서 관계는 더욱 복잡해진다. 한편, 동아리에서는 범죄 원인에 관한 주제로 소논문을 쓰기로 하고, 서현이는 현장 조사를 위해 소년교도소에 수감된 한 소년과 편지를 주고받게 되는데…….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고민하고, 사랑과 우정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10대들의 내밀한 이야기를 그린 청소년소설로, 제14회 사계절문학상 수상작 『싸이퍼』를 쓴 탁경은 작가의 두 번째 작품이다.

예스24 ‘사랑에 빠질 때 나누는 말들’(탁경은) 소개 글


 ‘연의 편지’(조현아)가 우정과 사랑을 오가는 풋풋한 로맨스라면 ‘사랑에 빠질 때 나누는 말들’(탁경은)은 본격 로맨스 소설이라고 볼 수 있다. 잘생긴 외모로 많은 여학생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동주와 평범한 여고생 서현의 사랑이야기로 시작되지만 이 소설은 한 단계 더 나아간다. 살인을 저지르고 소년 교도소에 수감된 현수와 서현이 소논문 작업을 위해 편지를 주고받게 되며 새로운 관계가 싹트기 시작하는 것이다. 소설을 읽는 동안 풋풋하고 두근거리는 동주와 서현의 이야기에 몰입하다가 편지라는 매체를 통해 서로에게 그 누구보다 내밀하게 빠져드는 현수와 서현의 이야기 속으로 건너가게 된다. 그리고 결국 ‘이 삼.각.관.계를 어쩌지!’ 발을 동동 구르며 이 소설과 그 주인공들을 사랑하기에 이른다. 결코 가볍지만은 않은 이 이야기에는 로맨스적인 요소 말고도 아이들이 빠져들만한 요소들이 많이 등장한다. 주인공 서현의 진로 문제, 모든 걸 다 가진 것 같은 동주의 열등감, 자신이 원하지 않던 범행으로 살인자가 된 현수의 이야기까지 청소년들을 둘러싼 갈등 요소들이 소설 안에서 집약적으로 펼쳐지며 아이들을 소설 속 세계로 유인한다.


 오늘 소개한 두 편의 작품은 편지라는 매체를 통해중심 사건이 전개되는 공통점이 있는 이야기들이다. 예쁜 편지지와 함께 아이들에게 선물하며 사심을 담아도 좋을 것 같다. 사랑하는 책 두 권을 짧게 소개할 수밖에 없어 아쉬움이 가득하다. 아이들과 함께 다시 한 번 읽으며 잊고 있었던 첫사랑의 시간으로 여행을 떠나 보고 싶다.





 아이들이 야동으로 나와 다른 성을 접하고, 완벽한 외모의 배우들이 등장하는 드라마와 영화만으로 사랑을 배우기를 원치 않는다. 두근두근 감정의 흐름 속에 기적과도 같이 찾아오는 사랑의 순간을 순박한 우리 아이들이 책을 통해서 꼭 경험해 보기를 바란다. 한 사람의 존재만으로 세상이 바뀌고 그로 인해 내 삶이 아름다워지는 경험을 통해 진실한 성장과 실존 찾기가 이루어지는 순간을 책보다 더 적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장르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신들만의 사랑을 찾기까지 우리가 함께하는 이 책들이 그들을 따뜻하게 품어주기를 기도해 본다.




















* yes24나 출판사로부터 어떠한 금전적인 지원도 받지 않았음을 밝힙니다.

* 사진 출처 : 언스플래쉬, yes24,

* 영상 출처 : 유튜브 - 네이버웹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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