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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희 Nov 22. 2023

손 내미는 책

‘괴질’(이진미)

"얘들아, 이상향이 뭘까?"

"24시간 게임만 해도 야단 칠 사람이 없는 세상이요!"


 구조를 알려주는 책을 좋아한다. 아이들에게 세상을 움직이는 진짜 힘과 질서가 무엇인지, 그로 인해 생기는 여러 가지 현상과 문제점은 무엇인지 알려주기를 바란다. 다소 허무맹랑할지라도 아이들이 정치적으로 멋진 그림을 그려내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때로 구조를 바꾸거나 존재하고 있는 힘의 형태를 유지하게끔 도와줄 수도 있는 생각과 힘을 가진 어른이 되기를 원한다. 게임이 이상향이라는 아이들의 세상에 그보다는 더 멋진 이상향이 펼쳐지기를 원한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히는 가장 큰 이유도 그것을 가장 쉽게 때로는 유일하게 알려주는 것이 바로 책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드러내 놓고 하기는 쉽지 않다. 교원은 정치적으로 중립성을 띄어야 하고 정치적 발언을 하는 것은 분명히 지양해야 할 지점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궁극적으로는 이러한 이야기들이 아이들에게 하품이나 불러일으키는 재미없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목소리에 힘을 주고 민주 시민으로서의 역할을 알려주거나 힘과 돈이 지배하는 세계 속에서 구조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역설해 보지만 대다수의 아이들에게 이는 자신들과 너무나도 유리된 이야기일 뿐이다. 크레인에서 떨어져 죽은 노동자의 이야기를 하거나 학교 폭력으로 고통받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하는데도 시시껄렁한 농담으로 수업을 몰고 가는 아이들은 어디에나 있다. 나도 약자들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는 아이들의 무심함에 실망하고 아파하는 평범한 교사이다.


 하지만 그건 이미 존재하는 이야기이고 내가 하려고 하는 것은 변화를 일으키는 바람이 되는 것이므로 오늘도 나는 나 대신 그들을 깨워줄 책을 찾아 건넨다.



 아이들이 몰입하여 읽고 책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들에 빙의되는 것. 그리하여 그들의 아픔에 눈물짓고 공감하며 더 나아가서는 정의로운 세상의 구조를 생각하는 어른이 되는 것.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독서 교육의 목표이다. 좋은 책들은 세상을 향한 메시지를 가지고 있다. 그걸 작가의 의도라든지 주제라고 부른다. 그러나 작가들은 의뭉스러운 사람들이라 절대로 자신의 이야기를 직설적으로 전달하지 않는다. 다양한 문학적 장치 속에 숨겨 놓은 메시지를 술래잡기하듯 찾아내어야 비로소 그들의 이야기가 들리기 시작한다. 감사하게도 때로 이런 문학적 장치들은 아이들을 유인하는 형태를 띠기도 한다. 스릴러나 유머의 탈을 쓰고 숨 막히는 전개로 작가들의 세계로 초대하는 작품들을 비로소 만나면 나는 횡재한 기분이다. 나와 이해관계가 같은 작가들과 기꺼이 손을 맞잡고 아이들에게로 다가간다.



그해 비가 그치자 조선에 역병이 돌았다

1821년 여름, 평안도 정주에 유난히 긴 장마가 온다. 비가 그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을에서 존경받던 황 부자댁에 줄초상이 난다. 사인은 괴질, 원인을 모르는 괴상한 돌림병이었다. 곧이어 마을 사람들이 괴질에 감염되기 시작하고, 그 탓을 황 부자댁으로 돌린다. 순식간에 길가에 시체가 쌓이고 마을에는 피 냄새가 진동한다. 그러던 중 황 부자댁 작은아들마저 증세가 나타나고 곧 죽고 마는데….

yes24 '괴질' 책소개 中


 이진미 작가의 ‘괴질’은 표지부터 우리를 매료시키며 시작된다. 코로나를 겪은 아이들에게 이 문구는 전혀 낯설지 않다. 2020년 그해 해가 바뀌자 전 세계에 역병이 돌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200년 전 조선시대 콜레라 유행을 배경으로 하는 이 작품은 같은 사건을 겪은 아이들을 빠르게 소설 속 장면으로 데리고 간다. 소설 속 세계에서 펼쳐지는 전염병의 심각한 피해와 이를 막으려는 국가, 의원, 백성들의 사투 과정이 코로나를 겪은 우리와 너무도 유사하여 흥미진진한 전개를 따라가며 절로 집중하게 된다.


 전염병은 평등하지 않다. 전 세계적인 전염병의 공포 속에서도 모든 사람이 같은 농도로 아픈 것은 아니다. 부자와 빈자, 영향력이 큰 사람과 평범한 사람은 엄연히 다른 의료적 혜택을 받는다. 섬 하나를 거대한 공동 묘지로 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던 동시간에 코로나19에 걸렸던 트럼프 대통령이 다양한 백신을 통해 며칠 만에 회복된 일을 기억한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선진국들이 백신의 혜택을 누리는 동안에도 피해가 끊이지 않았던 많은 국가들을 생각한다. 전염병의 영향력은 절대로 공평하지 않다.


 코로나19 사태를 두고 아이들과 정말로 나누고 싶은 이야기들은 이런 것들이었다. 신문기사를 읽히고 토론을 하고 논쟁을 이어가 보았지만 대다수의 아이들에게는 그저 잠 잘 오는 수업 시간일 뿐이었다. 몇 번의 실패를 건너 나는 조용히 책 한 권을 쥐어 주기로 했다.


 그 속에서 아이들은 주인공들과 울고 웃으며 우리 시대를 비추는 거울을 바라본다. 자지 말고 일어나라고, 너의 입장을 써서 발표해 보라고, 의견이 다른 친구들과 논쟁을 해보자고 독촉하지 않는다. 그 어떤 말보다 재밌는 책 한 권의 힘이 훨씬 더 강하다는 것을 알기에 아이들과 함께 읽는 일을 계속한다. 책을 읽고 난 아이들이 나와 함께 분노해 주기를, 비로소 우리 사회의 구조를 바라보아 주기를 기다리는 일은 즐겁기만 하다. 아이들이 스스로의 이상향을 찾을 수 있도록 우리 시대의 아픔을 기꺼이 함께 겪는다.


아름다운 꿈을 꾸길 바라.
그 속에서는 성적이 좋지 않거나 수업시간에 잠만 자던 아이들도
행복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두기를.
너희가 살아갈 세상이 조금은 더 평등한 천국에 가까워질 수 있도록
선생님은 또 다른 책을 찾을게.  



괴질 - 예스24 (yes24.com)


* yes24나 출판사로부터 어떠한 금전적인 지원도 받지 않았음을 밝힙니다.

* 사진 출처 : 언스플래쉬, yes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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