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떡을 아십니까?
어린 시절 내 별명은 ‘묵고재비’였다. 먹으라는 밥은 먹지 않으면서 각종 주전부리를 달고 사는 나를 할머니를 비롯한 가족들은 ‘묵고재비’라고 불렀다. 수많은 묵고 싶은 음식들 가운데 나의 베스트는 떡!이었다. 그래서 나의 또 다른 별명은 ‘떡순이‘이기도 했다. 첫 손녀인 나를 무척이나 예뻐하셨던 할머니는 바쁜 명절날에도 ‘우리 떡순이 줄 떡 한 되 더 해야 되겠네.’하시며 기어코 슴슴한 제사떡에 더해 베이비떡 한 되를 더 주문하시곤 했다.
베이비떡은 분홍, 초록, 하양 색색깔로 찍어내는 기계 송편이다. 한 입 깨물면 달달한 팥소가 한가득 배어 나오는 그 떡을 무슨 이유에서인지 우리 가족들은 베이비떡이라고 불렀다. 초딩 입맛을 가진 그 누구라도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그 떡을 나는 무척이나 좋아했다.
그래서인지 명절날이 다가오면 묵고재비의 마음은 기대로 벅차 오르곤 했다. 토요일 4교시 수업을 마치고 학교 교문을 나서서 시내버스 103번을 타고 할머니 집으로 향한다. 골목골목마다 구수한 찌짐 굽는 냄새. 익숙한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버선발로 뛰어나와 나를 맞아 주시는 할머니 손을 잡고, 대청마루에 앉아 한 접시 가득 쌓인 색색깔깔 맛도 좋고 모양도 좋은 베이비떡과 새벽잠을 물리고 직접 빚은 식혜 한 잔을 달게 받아먹곤 했다. 맞벌이하시는 부모님께 기대할 수 없었던 따뜻한 환대를 받는 나만의 안식처가 거기에, 할머니의 손과 가슴팍에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나 달달한 음식을 좋아하던 묵고재비 꼬마는 단 맛을 썩 내켜하지 않는 마흔을 넘긴 성인이 되었다. 식혜와 베이비떡을 쥐어주시던 할머니도 이제는 곁에 없다. 그런데도 나는 베이비떡이 진열된 떡집 앞을 아직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바래지 않는 추억처럼 사랑도, 온기도, 달달함도 가만히 내 안에 남아 색색깔깔의 떡과 함께라면 꺼지지 않을 온기가 되어준다. 사랑받은 기억과 함께 하는 간식이야말로 최고의 간식이다.
이제 스스로 식혜도 만들고 큰맘 먹은 날은 백설기 정도는 만들어 먹는 성인이 되었다. 할머니를 다시 만날 그날이 온다면 그를 위한 은쟁반에 하안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고 그를 위한 사랑과 시간을 받은 만큼 내어드리고 싶다. 일과 육아라는 핑계로 함께 하지 못했던 시간들을 나누며 긴 대화를 이어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