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을 좋아해서 가리는 게 별로 없는 편이다. 누가 발명했는지 상주고 싶은 앙버터, 다 흘리고 먹어도 포기할 수 없는 크루아상, 단짠의 최고봉 소시지빵, 퍽퍽함이 매력적인 생도넛, 과일이 가득 올려진 달콤한 과일타르트. 나열하라고 하면 반나절은 족히 걸릴 것 같다. 빵집에 가면 어떤 빵이 새로 나왔나, 오늘은 무얼 먹어볼까 고민한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고민. 좋아하는 빵들에 관해 이야기하면 반나절로는 부족할 것 같다. 식빵, 바게트 같은 다른 재료가 들어가지 않은 식사빵도 좋아한다. 맨 몸 같아서 맨 빵이라고 부르는데 버터를 가득 올려 굽기도 하고 잼이나 과일을 곁들이기도 한다. 요즘은 바삭하게 구워 땅콩이 씹히는 스타일의 땅콩버터와 함께 먹는 것에 푹 빠져있다.
그렇지만 빵순이에게도 유독 손이 안 가는 빵이 있긴 하다. 그건 바로 롤케이크다. 한 때 유행했던 크림의 비율이 훨씬 큰 롤케이크는 종종 먹지만 그마저도 크림맛으로 먹는 것 같다. 모빵집의 롤케이크의 판매량은 기네스북에 등재될 정도라고 하는데 판매된 제품을 길이로 환산하면 약 3천 km라고 한다. 에펠탑 높이의 9300배, 에베레스트산 높이의 339배에 이른다고 하니 어마어마한 양이다. 어렸을 때 집에 누군가 오시면 롤케이크를 종종 사 오셨던 것 같은데 요즘도 가볍게 선물을 주고받으니 기네스북에 올라갈만하다. 그만큼 대중적이라는 얘기 일텐데 왜 싫은지 선물을 받고 며칠이 지나도 영 줄지를 않아 처분을 고민할 때가 많다.
반면 카스텔라도 비슷한 맛과 종류 같은데 롤케이크와 다르게 금세 먹어치운다. 카스텔라를 맛있게 먹는 방법이 있기 때문이다. 누가 알려줬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어느 책에서 본 것 같기도 하다. 카스텔라를 내놓을 때는 보통 우유를 같이 내놓는데 난 그 우유를 과감하게 카스텔라에 부어 먹는다. 특별한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고 그냥 붓기만 하면 되는데 카스텔라가 우유를 흡수해야 하기 때문에 편평한 그릇을 준비한다. 그리고 그 위에 찬 우유를 붓는다. 빵이 우유를 바로 흡수하지 않아서 그릇에 넘치기도 한다. 그래도 괜찮다. 넉넉히 부어주는 것이 좋다. 조금 지나면 카스텔라가 우유를 한껏 머금는다. 그때 한 숟가락 떠먹으면 된다. 그러면 한 조각이 순삭이다. 카스텔라의 퍽퍽한 맛은 온데간데없이 부드러움이 가득 느껴지고, 단맛도 우유에 많이 중화된다. 브런치집 메뉴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두툼한 리코타치즈팬케이크의 식감과 약간 비슷한데 맛은 좀 더 달콤하고 부드럽다. 호불호가 있을 수 있겠지만 내게는 마음까지 몽글몽글해지는 맛이다.
예전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중에 '내 이름은 김삼순'이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파티시에인 주인공 김삼순은 마르셀 푸르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라는 책에 나오는 것이라며 마들렌을 홍차에 푹 찍어먹어 보라고 권한다. 그 장면을 불어로 설명하는데 언어 특유의 분위기까지 더해져 너무 부드러운 푹신한 맛일 것 같았다. 따라먹어 봤는데 오, 예상대로였다. 내가 좋아하는 카스텔라에 우유 찍어먹는 맛이었다. 그 이후로 카스텔라를 우유에 찍어 먹다 보면 마들렌이 생각나고, 마들렌을 찍어 먹다 보면 카스텔라가 생각난다. 빵이 빵을 부르는 모양이다. 빵순이라고는 하지만 먹다 보면 느끼하고 질린다 싶은 시점이 올 때도 있다. 그럴 때는 고민하지 말고 우유를 벌컥벌컥, 홍차를 호로록 마시면 해결된다. 느끼함이 가시면 다시 먹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