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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여유 Jan 16. 2024

카스텔라에 우유 부어 먹는 맛

빵을 좋아해서 가리는 게 별로 없는 편이다. 누가 발명했는지 상주고 싶은 앙버터, 다 흘리고 먹어도 포기할 수 없는 크루아상, 단짠의 최고봉 소시지빵, 퍽퍽함이 매력적인 생도넛, 과일이 가득 올려진 달콤한 과일타르트. 나열하라고 하면 반나절은 족히 걸릴 것 같다. 빵집에 가면 어떤 빵이 새로 나왔나, 오늘은 무얼 먹어볼까  고민한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고민. 좋아하는 빵들에 관해 이야기하면 반나절로는 부족할 것 같다. 식빵, 바게트 같은 다른 재료가 들어가지 않은 식사빵도 좋아한다. 맨 몸 같아서 맨 빵이라고 부르는데 버터를 가득 올려 굽기도 하고 잼이나 과일을 곁들이기도 한다. 요즘은 바삭하게 구워 땅콩이 씹히는 스타일의 땅콩버터와 함께 먹는 것에 푹 빠져있다.

그렇지만 빵순이에게도 유독 손이 안 가는 빵이 있긴 하다. 그건 바로 롤케이크다. 한 때 유행했던 크림의 비율이 훨씬 큰 롤케이크는 종종 먹지만 그마저도 크림맛으로 먹는 것 같다. 모빵집의 롤케이크의 판매량은 기네스북에 등재될 정도라고 하는데 판매된 제품을 길이로 환산하면 약 3천 km라고 한다. 에펠탑 높이의 9300배, 에베레스트산 높이의 339배에 이른다고 하니 어마어마한 양이다. 어렸을 때 집에 누군가 오시면 롤케이크를 종종 사 오셨던 것 같은데 요즘도 가볍게 선물을 주고받으니 기네스북에 올라갈만하다. 그만큼 대중적이라는 얘기 일텐데 왜 싫은지 선물을 받고 며칠이 지나도 영 줄지를 않아 처분을 고민할 때가 많다.


반면 카스텔라도 비슷한 맛과 종류 같은데 롤케이크와 다르게 금세 먹어치운다. 카스텔라를 맛있게 먹는 방법이 있기 때문이다. 누가 알려줬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어느 책에서 본 것 같기도 하다. 카스텔라를 내놓을 때는 보통 우유를 같이 내놓는데 난 그 우유를 과감하게 카스텔라에 부어 먹는다. 특별한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고 그냥 붓기만 하면 되는데 카스텔라가 우유를 흡수해야 하기 때문에 편평한 그릇을 준비한다. 그리고 그 위에 찬 우유를 붓는다. 빵이 우유를 바로 흡수하지 않아서 그릇에 넘치기도 한다. 그래도 괜찮다. 넉넉히 부어주는 것이 좋다. 조금 지나면 카스텔라가 우유를 한껏 머금는다. 그때 한 숟가락 떠먹으면 된다. 그러면 한 조각이 순삭이다. 카스텔라의 퍽퍽한 맛은 온데간데없이 부드러움이 가득 느껴지고, 단맛도 우유에 많이 중화된다. 브런치집 메뉴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두툼한 리코타치즈팬케이크의 식감과 약간 비슷한데 맛은 좀 더 달콤하고 부드럽다. 호불호가 있을 수 있겠지만 내게는 마음까지 몽글몽글해지는 맛이다.

오밀조밀 선명했던 단면이 우유를 머금고 약간 뭉게져있다


예전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중에 '내 이름은 김삼순'이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파티시에인 주인공 김삼순은 마르셀 푸르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라는 책에 나오는 것이라며 마들렌을 홍차에 푹 찍어먹어 보라고 권한다. 그 장면을 불어로 설명하는데 언어 특유의 분위기까지 더해져 너무 부드러운 푹신한 맛일 것 같았다. 따라먹어 봤는데 오, 예상대로였다. 내가 좋아하는 카스텔라에 우유 찍어먹는 맛이었다. 그 이후로 카스텔라를 우유에 찍어 먹다 보면 마들렌이 생각나고, 마들렌을 찍어 먹다 보면 카스텔라가 생각난다. 빵이 빵을 부르는 모양이다. 빵순이라고는 하지만 먹다 보면 느끼하고 질린다 싶은 시점이 올 때도 있다. 그럴 때는 고민하지 말고 우유를 벌컥벌컥, 홍차를 호로록 마시면 해결된다. 느끼함이 가시면 다시 먹으면 된다.

초코맛이라 조금 아쉽지만 마침 집에 있어 2차는 홍차에 찍어먹는 마들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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