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월 4일 욕망과 실력의 갭
'어디든 달려 가야해.
헤드라잇 도시를 넘어
뒷자리엔 부푼 꿈을 숨겨주던
그녀의 젊은 자동차'
오전 7시 20분.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다. 잠들어 있는 아이들을 확인하고 평소처럼 출근을 한다. 차에서만큼은 온전히 혼자인 시간이고, 잔나비의 노래는 언제나처럼 아름답다. 가을이 왔고 숲 속에 있는 자그마한 일터로 출근하는 길은 매일이 다른 모습이다. 창문을 활짝 연다. 시골집 굴뚝에 뽀얗게, 나무 타는 냄새.
음악과 공간, 완벽한 계절의 출근길이었지만 머릿속은 복잡하기만 하다. 잔나비 노래의 가사때문이다. 브런치 작가가 된 이후 글로 된 모든 형식의 것들이 나를 자극하기 시작했다. 출판된 글들은 물론이고 브런치 대문에 걸려 있는 읽기 쉽지만 아름다운 에세이들, 특별한 경험을 담은 여행기, 인스타그램의 짧은 글과 친구들과의 대화, 노래의 가사에 이르기까지 이제껏 인식하지 못했던 말과 글들이 나를 향해 달려든다. 그저 즐기기만했던 것들에게서 경이를 느끼고 시샘하고 때로 구조를 분석하고 발상에 심취하며 어떨땐 고양되었다가 나락으로 떨어지기도하며 사춘기 소녀처럼 감정은 길을 잃었다.
그래도 넘어갈 수 있었다. '노력하면, 조금 더 고민하고 신중하게 생각하면, 경험의 밑바닥으로 내려가 경이나 혐오를 분석하면, 내 감정을 아름다운 말의 흐름 속에 담을 수 있다면 나도 할 수 있지.' 생각했다. 그런데 자동차 뒷자리에 꿈을 실었다니! 젊은 자동차라니! 단 일곱 단어만으로 영화의 한 장면 안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언어 감각. 배경 묘사 하나 없이도 델마와 루이스 같은 아름다운 로드 무비 한 편이 그려지는, 다른 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이야기를 입혀내는 그의 가사에는 이겨낼 재간이 없다.
글감은 어디에나 있고 영감은 시간과 공간을 가리지 않고 찾아온다. 드물게 그런 순간이 오면 핸드폰을 옆에 두고 오타가 나든말든 상관없이 써 내려간다.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리도, 눈에 띄는 시각적 자극도 모두 차단된다. 전화라도 걸려와 그 흐름이 끊기면 잘 만든 영화의 절정 부분에서 티비를 꺼뜨린 사람처럼 화가 나 전화를 건 대상을 향해 눈을 흘기게도 된다. 드물게 찾아 오는 내 안에서 들려오는 말의 흐름이 그칠까 전광석화처럼 지나가는 영감의 대상이 잊힐까 불안하고 두렵다.
열랼한 독자였으나 전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의 일상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미흡하고 초라할 지언정 작가라는 이름으로 불린 이상 나는 이제 그들이 만든 텍스트를 감흥 없이 소비하던 나날로 돌아가지는 못할 것이다. 청소도, 저녁밥도, 아이들의 공부를 돌봐주는 일상도 계속되고 있으나 예전 같지 않다.
일상을 넘어선 또다른 공간이 내 의식에 생겨버렸고
나는 기꺼이 그 혼란과 고통의 영역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책읽는 여자가 위험하다면 글쓰는 여성은 전쟁 중이다.
위태롭다. 언제든 벼려둔 날카로운 감각으로 현실을 재단할 수 있도록 극도로 예민한 신경을 갈고 닦는다. 그는 때로 그 자리에 있으나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기도 하다. 한 공간에서도 다른 의식 속으로 떠나간다.
음악은 벌써 'pony'를 넘어서 '가을밤에 든 생각',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해'를 달려 간다. "잔나비 님 '추억에 갈피를 꽂는다'는 표현은 도대체 어떻게 만들 수 있나요. 당신은 무엇을 읽고, 어떤 것에 영감을 받나요?" 질문은 끊임이 없고, 출근길은 더이상 평화롭지 않다.
가을이에요.
아름다운 날들이 이어지지만 저는 그 속에 없어요.
저의 평온한 출근길을 돌려주세요.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