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월 6일 <사심을 담아 쓴 글입니다.>
엄마! 나 갤럭시단이 되기로 결심했어.
어느 하굣길 유치원에서 뛰어나온 아이가 상기된 표정으로 다짐하듯 갤럭시단이 될 거라고 말했다. '갤럭시단이라니, 로켓단까지는 내가 잘 아는데 그건 또 뭘까? 후뢰시맨이나 바이오맨 같은 걸까? 아니면 새로운 어벤져스인가?' 속으로 짐작하고 있으려니 갤럭시단의 노래와 춤을 보여 주겠다고 한다. '노래와 춤까지 있는 걸 보니 다양한 콘텐츠로 승부하는 신종 히어로물인가 보다.' 생각했다.
- That's my Life is 아름다운 갤럭시
Be a writer, 장르로는 판타지
내일 내게 열리는 건 big big 스테이지
So that is who I am
뜻밖에도 아이브의 'I am'이 흘러 나왔고 아이는 앙증맞은 팔다리를 쫙쫙 펴고 요리조리 휘돌리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갤럭시단, I am 미안이에요.
딸에게 아이브가 있다면 나에게도 반짝이는 갤럭시단이 있다. 그들은 다국적 혼성그룹으로 가입과 탈퇴가 자유로우며 시시각각 다양한 콘텐츠를 생산하여 팬들에게 다양한 볼거리, 읽을 거리, 들을 거리 목록을 제공한다. 여느 아이돌이 그러하듯 대체 불가능한 매력으로 추종자들을 절절 매게 하는 마력도 있다.
김하나, 김겨울, 황선우, 이동진, 이슬아, 김혼비, 정혜윤, 박혜윤(이름을 '혜윤'으로 바꾸어야 하나 고민한 적도 있다), 조승연, 김혼비, 무라카미 하루키, 캐롤라인 냅, 김초엽, 천선란, 김이나, 김한민
한 명 한 명 사랑스러운 나의 갤럭시단 멤버들이다. 때로 솔로로 때로 유닛을 결성하여 만들어 내는 그들의 다양한 굿즈로 내 방은 이미 포화상태이고(김혼비 작가님 덕분에 목탁도 들일 판이다) 유튜브의 '나중에 볼 동영상' 목록도 늘 풍성하다. '책읽아웃' 유니버스와 '파이아키아', '톡토로', '궁금이'라는 다양한 팬클럽에도 가입되어 있는 나는 실로 극성팬이라 할 수 있다.
갤럭시단의 입단 조건은 선의, 정의, 다양성 존중, 지식인의 책무 등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곳에서라면 투입과 산출을 계산하지 않는 효율성 없는 사고방식도 칭찬받을 수 있다. 그러나 무엇인가를 선택한다는 것은 다른 것을 배재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콘텐츠를 만끽하기 위해서는 유행하는 드라마도, 블록버스터 영화도 볼 시간이 없고 다른 이들과의 화제성 있는 대화에 끼지 못할 확률도 높다. 그럼에도 기꺼이 어떤 형태의 도태를 즐기며 그들의 팬이 되고자 한다면 팡팡 터지는 지적 유희 속에서 자아를 성장시키며 세상을 조금 더 정의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다. 언니, 오빠들의 우쭈쭈하는 격려 속에 스스로를 괜찮은 사람이라 토닥이며 하루하루 커 갈 수 있을 테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한 사람의 생에 걸어 들어가는 것과 같다. 그들의 과거와 현재를 유영하는 동안 타인의 의식 속에 빙의하여 한 세계가 열린다. 그 과정에서 갇혀 있던 나의 자아와 그들의 그것이 만나 부딪히고 타협하며 각성되고 결국 확장되는 그 과정을 나는 사랑한다. 기꺼이 그들이 선사하는 황홀한 혼란을 무릅쓴다.
이런 극성팬임에도 불구하고 여태껏 나는 수줍은 독자이고자 했다. 때로는 그들이 주는 정보와 감동을 제공받으면서 책값으로 내는 돈 몇 푼에 값을 다 치렀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데 딸아이의 경쾌한 춤동작을 보며 이제 나는 그들이 좋다고 외치고 싶어졌다. '좋은 걸 좋다고 말하는' 용기가, 그 순수함이 나에게도 전염된 모양이다. 이번 <브런치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팬클럽 활동을 적극적으로 시작해보려 한다. 댓글도 달고 메일도 보내며 나의 스타들이 더 크게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조그마한 힘이라도 보태고 싶다.
저 이제 시작해요.
제게도 작가라는 이름이 생겼거든요.
작가님들께 자랑하고 싶었어요.
아직 비어있는 자리가 있다면,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사려 깊은 말과 글, 다정한 목소리 속에서 치유받으며 한 뼘 더 자라고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