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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희 Jun 14. 2024

에필로그

중학생이 책을 읽는 이유

글에는 힘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 익히 알려진 이 명언을 6개월간 이어진 연재를 끌어오면서 절실하게 인식했다. 고백하건대 책에 대한 글을 적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몇 천년 동안이나 누구나 인정해 온 가치를 부러 글로 적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 때면 너무 당연한 이야기를 주절대는 것은 아닌가 고민했다. 때로는 뛰어난 작가들의 명저를 읽기도 모자란 시간에 스무 편이나 되는 글을 적어 권할 정도로 내 글이 가치 있는 것인가 회의감이 드는 순간도 있었다. 허나 글로 쓴 약속은 말뚝처럼 박혀 마지막 글을 남길 수 있도록 끌어주는 힘이 되었고, 엉덩이 붙이고 앉을 힘조차 없었던 날들에도 연재를 생각하며 책장을 넘길 수 있는 의지가 되어 주었다.


연재를 끝마치며 왜 책을 읽어야 하느냐는 뻔한 질문에 대한 뻔하지 않은 대답을 고민했다. 문해력이니 인간성이니 타인에 대한 이해심이니 다양성의 존중이니... 좋아하는 대답은 너무 많지만 영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 보려 한다.


무한히 뻗어나갈 수 있을 것만 같은 기술의 시대, 영원한 삶을 가져다줄 것만 같은 생명 공학의 시대에 책은 한계와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인간성의 한계, 존엄성의 한계, 이상주의의 한계, 살아 있는 시간의 한계를 지적한다. 그러나 그러한 한계 속에서도 꽤 괜찮은 존재로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가능성을 가진 존재가 ‘사람’이라고 이야기한다.


책은 인간은 거대한 질서의 일부라는 진부한 이야기를 전한다. 참 소박하고 작은 담론이다. 그러나 바로 그 지점에서 우리는 겸손을 배우고, 단독자가 아닌 자연이라는 거대한 세상의 일부로서만 느낄 수 있는 소속감과 안정감을 느낀다. 또한 모든 인간은 사라져 물질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만고의 진리 속에, 그 허무함 속에서, 성숙해지고 겸손해지며 한없이 낮아지는 경험을 한다. 또한 책을 읽는 동안만큼은 허무한 우리의 실존을 이상적 가능성으로 채워가기 위해 고민하고 모색하는 존재들과 함께한다는 유대감으로 충만함을 느끼기도 한다.


우리가 비록 영생을 누릴 수는 없다 하더라도
같은 가치를 가진 이들과 함께 읽고 쓰며
나 이후의 존재들이,
우리가 넘긴 페이지만큼 조금 더 이상적 이어질
꽤나 괜찮은 우주에서 살아갈 수 있다는 꿈을 꾼다.
나는 그것이 책을 통해 누릴 수 있는
'영생'의 다른 이름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중학생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단 하나의 메시지였을지도 모른다. 외로운 시간 동안 손 잡아줄 좋은 친구가, 너희가 힘들어하는 모순 가득한 세상을 함께 탓하고 조금 더 나은 곳을 꿈꾸는 사람들이 여기에 있다고 그러니 너무 외로워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었다.





연재 기간 동안 십여 년 간의 중학교 교사 생활을 끝내고 고등학교 교사로 발령받았다. 멀찌감치 서서 바라보는 그곳은, 교권보다 인권을 지키기 위해 발버둥 쳤던 공간이었고 교육지원청보다 경찰서라는 기관이 더 친근했던 실로 전쟁터와도 같은 공간이었다. 특정 반에 들어가기 위해 밤을 지새우고 교실 문 앞에서 심호흡을 했던 날들도, 또래 집단에서 기세를 잡으려 끊임없이 교사와 힘 겨루기 하려는 아이들과 기싸움을 이어가던 날들도, 학교로 돌아오지 않는 아이의 손을 잡고 눈물짓던 날들도 이제는 모두 지난 이야기가 되었다. 천방지충 우당탕탕 사랑하는 중학생들에게 그들을 떠나며 전하는 마지막 러브레터가, 그들을 향한 증오와 사랑 사이의 어느 즈음에서 써 내려간 마음이, 곡해 없이 전달되기를 바란다.




길었던 사춘기가 이제야 끝이 난 것만 같다.
치열하게 싸우고 열렬히 사랑했던 한 시기를 떠나보내니
어쩐지 나는 조금 낡은 느낌이다.   


다시는 마주하지 못할 방황과 열정의 시간 속에서 모든 것을 태우는 산불처럼 타오르던 중학생들도 언젠가는 온순한 아궁이의 불이 되어 자신의 세상을 지키며 거대한 슬픔과 마주할 수도 있으리라.

아직 이상적이지 못한 세상에서 사그라드는 불꽃들을 바라보며 조금 슬픈 기분이다.

언젠가 온순하고 수동적인 삶 속에 지쳐 거센 불처럼 타오르던 자신을 떠올리는 나날이면,

치기 어렸던 어린 날들을 기분 좋게 추억할 수 있기를, 그런 그들을  지켜주기 위해 함께 앓고 눈물 흘렸던 존재들이 있었음을 조심스레 건네던 책 속에서 떠올려 주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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