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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희 May 27. 2024

슬픔에 대한 책

슬픈 세상의 기쁜 말(정혜윤)

슬픔 ; 슬픈 마음이나 느낌. 정신적 고통이 지속되는 일


슬픔은 부정적인 감정이다. 그는 언제나 푸대접을 받아 왔지만, 밝고 에너지 넘치고 아름다운 것들에 더 많은 가치를 부여하는 현대에서 그것은 더욱더 부정적인 감정이 되어 적극적으로 감추어야만 하는 대상이 되어 버린 듯하다.


갖가지 감정이 요동치는 사춘기 아이들과 슬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안 그래도 성적 위주의 무한 경쟁을 치르며 증오와 미움과 시기와 질투 등 부정적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 있는 아이들에게 슬픔의 무게까지 부러 감당하게 해야 할까 하는 문제는 오랫동안 나를 고민하게 했다. 그러던 어느 순간엔가 들끓는 몰이해와 오해, 분쟁의 중심에 혹여 '슬픔의 부재'가 자리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슬픔이 필요 없고 소모적인 감정이기만 했다면 인류는 슬픔을 느낄 수 없도록 진화되어 왔을 것이다. 모든 감정이 그렇듯 슬픔에도 역할이 있다. 다른 어떤 감정도 대체할 수 없는 그만의 고유한 역할이 있기에 슬픔은 중추적 감정으로 남게 되었을 것이다.


슬픔은 정신적인 고통과 우울을 가져오지만 그에게는 세상을 조금 더 따뜻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는 자신의 아픔을 통해 다른 이들의 고통을 이해하게 하고 슬픈 이들의 편에 설 수 있는 힘을 부여한다. 슬픔을 가져온 세상의 구조를 살펴보게 하고 때로 분노하게 하여 타인의 자리에 설 수 있게 한다. 그리하여 타인의 삶에 조금 더 겸손하고 따뜻하고 사려 깊은 태도를 가질 수 있게 한다. 또한 슬픔을 통해 다른 이들의 아픔을 돌볼 수 있었던 경험은 자신이 가치 있는 존재라 느끼게 하여 자아 효능감을 고양시킬 수도 있다.


그러나 필자와 같은 겁쟁이들에게 슬픔을 마주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대구 지하철 참사가 일어났을 때에도, 세월호가 가라앉았을 때에도, 이태원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을 때에도 나는 차마 그 사건들을 마주 보지 못했다. 스치는 기사에도 소스라쳤고 오랫동안 계속되는 악몽 속에서 헤매었다. 눈을 감아도 손으로 귀를 막아도 피부로 느껴지는 공포와 불안에 떨며 외면하며 살아왔다. 슬픈 세상을 피하며 마흔 남짓한 생을 살았다.


세월호가 가라앉은 지 10년이 지나고, 이제야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게 되었고 슬픔 속에서도 현실을 직면하며 서술한 작가들의 글을 펼 수 있게 되었다. 여전히 너무도 아픈 이 이야기들 속에서, 슬픔을 공유하는 사회 속에서,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속에서 희망을 찾는 작가들의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의 책을 읽으며 감히 흘릴 수도 없는 눈물을 삼킨다. 나는 많이 미안해진다.



슬픔을 넘어선다는 말은,
슬픔을 해소한다는 표현은
얼마나 잔인한가. 


차가운 물속에 아이를 잃은 부모의 슬픔 앞에서 나는 감히 회복을 꿈꾸지 않기로 했다. 이제는 함께 슬퍼하는 일을 멈추지 않으리라. 나의 불안과 공포를 넘어서 당신의 슬픔 곁에 웅크리고 있기를 멈추지 않으리라. 점이 모여 선이 되듯 슬픔의 점이 모여 슬픔의 선이 되고 슬픔을 공유할 수 있는 거대한 공간이 되어 슬픔 속에서 나아가기를. 


슬픈 책들 속에서
쉽게 잊지 않고, 쉽게 회복하지 않고
슬픔에 머물며 나아가기를
바라는 사람이 되었다.


중학교 아이들의 독서 목록에 슬픈 책을 하나 둘 챙겨 넣으며 타인과의 비교로 소란스럽고 옆의 아이보다 하나 더 가지지 못해 세상에 대한 분노를 느끼는 아이들에게, 절대적 가난과 결핍은 자신과 거리가 먼 이들의 삶이라 느끼며 친구와의 성적 대결에서 하나라도 더 우위를 점하기 위해 노력하는 아이들의 삶에, 타인을 위해 조용히 흘리는 눈물 한 방울의 자리를 마련해 본다.


그들의 세상이 조금 더 아름다워지기 위해
슬픈 세상에서, 슬픈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타인을 위해 나누어줄 온기가 남아 있다는
일깨움을 선물하고 싶다.




1.  슬픈 세상의 기쁜 말(정혜윤)

이 책은 코로나와 세월호 사건 등으로 우리가 사는 세상이 실은 모순과 혐오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깨닫고 우울에 빠지게 된 작가가 독자들에게 작은 희망을 전하기 위해 쓴 책이다. 작가는 얼음장처럼 차가운 겨울의 추위 속에서 맞잡은 손에 있는 한 줌의 온기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이야기한다.


이 책에는 화려한 삶을 살지는 못했지만 자신의 원칙에 따라 아름답고 정의로운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 열 편이 실려 있다. 아무도 없는 바다에서도 자신만의 원칙을 지키며 그 스스로가 믿음으로 화한 어부의 이야기, 버림받고 사기당하는 파란 만장한 삶을 살아오면서도 배움을 손에서 놓지 않는 할머니의 이야기, 대구 지하철 참사로 딸을 잃고도 슬픈 사람들과의 연대를 위해 삶을 이어가는 어머니의 이야기 등 슬픔 속에서도 자신의 삶을 소중하게 여기고 자신과 타인을 위해 아름답게 삶을 꾸리는 작은 영웅들의 이야기들이 실려 있다.



우리는 왜 고통의 한 중간에서
 현자가 된 슬픈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세상을 살아갈 용기를 얻는 것일까?
슬픔의 한 중간에서
타인의 곁에 있어 주는 인간의 삶이야말로
우리를 아직도 살만한 세상에 살고 있다는
자각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인 걸까?


이 책을 읽고서 세상의 모습에 실망하고 삶이 힘들어질 때마다 아바탄강의 반딧불이와 보홀 섬의 야생 돌고래가 유영하는 장면을 떠올린다. 작가가 내 상상 속에 만들어준 야생의 아름다움에 빚지고 나는 슬픈 세상을 걸어갈 힘을 얻는다.


- 5년 전에 여기 왔는데 그날 처음으로 반딧불이를 봤어요. 너무 아름다웠어요. 여기에서 일하고 싶다고 생각했고 그다음 날부터 바로 일했어요.
- 그때부터 줄곧?
- 네. 매일매일.

나는 5년간 매일매일 반딧불이를 보는 느낌이 어떠냐고 물어봤다. 그때 나는 무슨 대답을 기대했던가? 매일 보면 아름다움도 평이해진다는 그런 것이었을까. 나는 기대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채 그의 입에서 나올 말 한마디를 기다렸다. 그는 반딧불이 한 마리를 잡아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작고 완벽한 빛 하나가 그의 손을 그 누구의 손과도 같지 않은 특별한 손으로 만들어 줬다. 그의 손바닥에 영혼이 있는 것 같았다. 그의 등 뒤로 검은 강물 소리가 애잔하게 울려 퍼졌다. 그는 나지막하게, 느리게, 또박또박, 마치 나에게가 아니라 반딧불이에게 대답하듯, 가난과 어둠과 별과 빛을 다 가지고 있는 사람의 우아함을 담아 이렇게 대답했다.

-Still Beautiful.


슬픔을 이토록 사려 깊고 따뜻하게 전할 수 있는 다른 이를 나는 알지 못한다. 슬픔이 세상을 뒤덮을 때 마다 이 글을 읽으며 슬픈 사람들의 이야기를 정혜윤의 목소리로 들을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가 생각한다.


험악한 사건 사고와 전염병의 공포, 경쟁으로 인한 피로감, 안전을 보장해 준다는 것을 신뢰할 수 없는 사회 속에서 현실을 점점 냉소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우리 아이들에게 살짝 열어 보여줄 수 있는 아름다운 세계가 여기에 있음에 아껴두었던 작가의 소중하게 품어오던 세상을 조심스레 내어 보인다.




한 명의 친구를 제쳐야 보다 높은 등급을 받고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는 경쟁 위주의 중고등학교 체제에서 아이들의 마음을 붙들어 친구 옆에 가 앉게 하는 기적은 타인의 슬픔에 공감하는 자신의 슬픔에게 있다. 자신의 슬픔으로 타인을 포용하는 몇 편의 이야기를 알고 있다면 아이들이 사는 세상이 조금은 더 다정할 수 있지 않을까 바라는 마음으로 슬픈 이야기를 기쁘게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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