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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달 Oct 09. 2023

너를 떠나보내는 길

시한부 반려견과 함께 하는 삶 <12>

 루비가 추석 마지막 날, 무지개 다리를 건너 강아지별로 떠났습니다.


 전날 밤에 그렇게나 칭얼대며 잠을 통 자지 못하더니 아침 약을 먹고서는 잠깐 볕을 쬐는데 경련이 시작되었습니다. 몸 전체가 떨리기 보단 입을 계속해서 떨더니 동공이 커졌습니다. 다급하게 집사람을 부르고 병원에서 가르쳐 준 것과 같이 앞을 살짝 가려 줍니다. 급격한 흥분을 동반하는 경련에는 눈을 가리는 것 만으로도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경련을 진정시키기 위한 약도 12시간 주기로 먹이고 있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경련을 하는 동안 혀가 입에서 삐져나옵니다. 식은 땀이 납니다. 한참을 안고서 몸부림 치는 것을 지켜보다 잠시 진정된 것 같아 살짝 내려놓으려고 하는데 숨을 쉬지 않습니다. 그렇게나 빠르게 뛰던 심장도 더 이상 뛰지 않습니다. 마치 잠든 것 처럼 가길 바랬던 집사람의 작은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은 채 루비는 그렇게 저희 곁을 떠났습니다. 


 눈을 감지 못한 채 아직도 온기가 남아 있는 루비의 모습을 보면서 '이젠 어떻게 해야하나?'라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그렇게나 오랫동안 준비했는데, 불과 일주일 전만 하더라도 이제 준비를 해야지. 라고 생각했는데 갑작스러웠습니다. 반려견의 사체를 처리하는 데는 3가지의 방법이 있습니다.

1. 종량제 봉투에 넣어 일반 쓰레기와 같이 처리

2. 동물병원을 통해 의료 폐기물로 처리

3. 전문 동물장례업체를 통해 화장 

 1번의 경우는 너무 좀 그렇잖아요. 아무리 그래도 가족인데. 2번의 경우는 루비 이전에 함께한 친구를 보낼 때 부탁드렸었습니다. 갑작스럽기도 했었고 아팠던 친구를 보는 것도 너무 힘들어서 부탁드렸었거든요. 우선은 다니던 동물병원에 전화를 해서 루비의 소식을 알립니다. 그 병원에서는 따로 처리를 해 주지는 않고 동물 장례업체를 소개시켜 준다고 합니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화장을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이불 속에 누워있는 루비가 살아있는 것 같았습니다. 아직 몸도 따뜻한 것 같고 미세하게나마 숨을 쉬는 것 같기도 하구요. 심장이 오르락 내리락... 가장 빠른 시간대의 동물 장례식장을 예약했는데 아직 루비가 살아있는 거 아닌가 하는 착각 속에 쉽사리 집을 떠나지 못했습니다. 

'어느 때와 같이 거실에 얌전히 누워있는 모습인데 우리가 섵불리 움직이는 것은 아닌가. 혹시라도 살아있음 어떡하지?' 당장 눈앞의 죽음을 받아들이기는 커녕 인지조차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거 병원 가서 판정이라도 받아야하나..'

 하지만 예약한 시간은 생각보다 빨라서 채비를 서둘렀습니다. 지체하기는 싫었습니다. 이미 떠난 친구 앞에서 더 슬퍼한다고 돌아오는 것도 아니고 보고 있으면 슬픈 생각에 휩쌓여 더 힘들어 질 것 같았습니다. 생전에 자주 입던 옷을 한 벌, 그리고 가는 길 추울까봐 따뜻하게 몸을 감싸주는 포근한 수건 한 장을 챙겨 떠납니다. 갑작스러운 일들에 놀란 것 같은 막내 룽이도 함께 데리고 갑니다.


 병원 방향과 같은 도로를 타고 가는데 기분이 묘합니다. 평소 같으면 앞자리에 함께 안긴 채로 가는데 오늘은 뒷자리 쿠션에 외로이 누워있습니다. 혹시나 차가 덜컹거리면 불편하지 않을까 몇 번이고 룸미러를 통해 지켜봅니다. 도시를 떠나 시골길로 접어들자 잠깐 편의점에 들려 마실 것을 사기로 합니다. 편의점에 들어가면서도 뒷자리의 루비를 확인해 봅니다. 혹시나... 기대와는 달리 루비의 체온은 전보다 떨어져 있었고 이제는 받아들입니다. 

 1시간 정도 차를 타고 도착한 장례식장은 시골의 작은 산 중턱에 있었습니다. 도착하자마자 직원분들께서 맞이해 주십니다. 간단한 상담을 하고 절차에 대해 안내받았습니다. 반려동물 장례식장은 처음인데 사람과 크게 다를 바 없더라구요.

염 하는 것을 지켜본 뒤 추모의 시간을 가지고 화장하고 유골을 받아보는 순서였습니다.

 염을 하는데 장의사분이 말씀하십니다.

"떠나보낸 지 얼마 안되셨나봐요. 체온이 그래도 좀 남아있네요."

 한 마디에 오늘 아침 상황부터 어떻게 지내온 친구인지까지 장황하게 답변을 합니다. 염이 끝나니 정말로 떠나보낸다는 느낌이 나며 감정이 밀려옵니다. 

"그 동안 너무 고생 많았어. 이제는 아프지 말고 편안한 곳에서 더 행복하게 지내"

 고생했다. 라는 말이 제일 먼저 떠올랐습니다. 삼년 전, 놀이터 가는 길에 픽 하고 쓰러져 바닥에 오줌을 지린 채 기절한 이후 심장병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독하다는 약도 잘 꼬박꼬박 잘 먹으며 잘 지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기력이 떨어지고 근육이 빠지고 눈은 점점 멀어지는 것이 보였지만 그래도 조금 더 함께 할 줄 알았는데 많이 힘들었나 봅니다. 부족한 주인을 만나 조그만 집에서 부대끼며 살았는데 고생했죠. 못 가본 곳도 많고 못 해본 것도 많은데 다시 생각하니 또 미안하네요.


 수의 대신 평소에 입혀놓으면 깜찍했던 빨간 옷을 입은 루비는 그렇게 화장터로 향했고 작은 함에 담긴 채 다시 안아볼 수 있었습니다. 돌아오는 길 루비를 오랫동안 담당한 수의사 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옵니다. 출근시간도 아닌데 병원에서 소식을 듣고 감사하게도 따로 연락을 주셨습니다. 그렇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집에 도착했고 이제는 루비가 없는 삶이 다시 시작됩니다. 괜찮겠죠?




 마지막 모습부터 장례식까지는 사진이나 영상을 하나도 기록해 두지 않았습니다. 아픈 모습을 다시 꺼내어보면 그 때의 기억만 떠올라 너무 힘들잖아요. 추억하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 다양하지만 저와 함께 사는 집사람은 밝고 건강하고 힘찬 모습의 루비를 떠올리기로 했습니다. 그 동안 저희 루비 이야기를 읽고 예뻐해주시고 공감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강아지별에서 행복하게 잘 지내길 빌어주세요

 * 글을 쓰지 않은 1년 동안 묵혀놓은 이야깃거리도 많아서 다시 천천히 이야기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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