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랬으면 좋겠다
나는 소리에 예민하다.
고등학생 때만 해도 공부하느라 쉬는 시간에 들려오는 외부 소리를 차단하겠다며 양쪽 귀에 이어폰을 꽂고, 음악소리를 최대한 키워 듣던 나였다.
친구들끼리 옆에서 이야기하다가 내 이어폰에서 나오는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고, 귀 괜찮냐고 걱정할 정도였다.
그런 내가 지금은 소리에 굉장히 예민해졌다.
둘째 아이를 낳고부터였다.
어린 두 아이를 동시에 보면서 미처 손이 가지 못한 둘째의 집이 떠나가라 울리는 울음소리는 내게 마치 끝도없이 울리는 사이렌 소리와도 같았다.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다. 요즘 부쩍 엄마를 아는지 내가 곁에 앉아있다 일어서기만 하여도, 고개를 돌리기만 하여도 큰일 난 듯이 마구 울기도 하고, 종일 안고 들어주지 않으면 서운하다는 듯이 우는 막내 덕분이다.
막내 하나만 보고 있자면 괜찮지만 위에 아이들까지 셋이 합쳐지면 미처 손이 가지 못할 때가 많다.
6살, 4살, 갓 5개월에 접어든 아기까지 세 명의 아이들이 함께 있을 때면 둘 중 하나의 상황이 벌어진다.
첫째와 둘째를 챙기느라 막내가 하염없이 울거나
세상 서럽게 얼굴이 벌게지고 숨 넘어가게 우는 막내를 달래느라 첫째와 둘째는 방치되거나.
울음소리는 정신적으로 도저히 감당해낼 수 없었다. 그럴 때마다 엄마의 마음은 유난히 바빠지고 미안함과 자책감으로 흘러넘쳤다.
늘 있는 일은 아니지만.. 요 근래는 그랬다.
손이 부족해서라는 변명은 대기 싫어서 씩씩하게
혼자서도 잘 해내고 싶었다. 그 마음이 가장 컸다.
최선을 다해 나와 아이들을 챙기고 있고, 바깥에서도 충분히 바빠서 어쩌면 나보다도 더 눈코 뜰 새 없을 남편에게도 짐을 지어주고 싶지 않았다.
잘하고 싶은 마음인데 상황이 따라주지 않으니 속이 상해 첫째와 둘째에게 혼자 흐느끼는 모습을 보인 날이 며칠 사이에만 해도 여러 번이다.
잘하려고 잘해보려고 나를 다독이며 차곡차곡
쌓아 올리던 마음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던 날이다.
주변에서 힘들지 않냐며 걱정할 때마다 별로 힘들지 않다고 할만하다고 대답하곤 했는데,
나는 정말 괜찮은 걸까.
날씨가 매일 흐리지 않은 것처럼,
괜찮은 날도 괜찮지 않은 날도 있는 거겠지.
세 명의 아이들을 다 자세히 들여다보고 챙길 수 있게 내가 여러 명이었으면 좋겠다.
한 명은 같이 놀아주고 한 명은 충분히 안아주고 한 명은 이야기도 들어주고..
아이들은 하루가 다르게 자라고, 오늘의 아이들은 지금 뿐인데 다 살펴보지 못하고 놓치는 것이 마음이 저리게 아쉽다. 해내지 못하는 내가 아쉽다.
그래도 무너져 내린 마음을 다시 차곡차곡 개어서 정돈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