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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도봉봉 Aug 09. 2024

불면증에는 독서가 직빵이지

불면증과 설레는 독서의 밤

 우울증이 내게 준 가장 큰 선물은

 단연코, 독서다.


 갑자기 남아도는 시간을 어쩔 줄을 몰랐다.

만날 사람도 없고 나돌아 다니고 싶지도 않았다. 끝도 없이 찾아오는 걱정과 우울한 마음이 아무것도 할 수 없게끔 만들었다. 처음에는 유튜브를 계속 봤다. 우울한 기분을 없애기 위해서 웃긴 것을 찾아봤다. 무한도전 레전드도 찾아보고 한사랑산악회도 봤다. 재미있는데 재미가 없었다. 계속 봐서 뭐 하냐는 생각도 들고 곧 흥미가 떨어졌다.


 글쓰기를 해보려고 마음을 먹었다. 글쓰기 강의를 들었다. 선생님이 첫 시간에 독서를 많이 해야 좋은 글을 쓸 수 있다며, "여러분이 읽는 책이 여러분이 쓰게 될 글의 수준이에요"라는 말을 하셨다.



 아. 책을 읽어야겠다.


 그다음 날부터 도서관을 뺀질나게 드나들었다.

 카트를 끌고 우리 가족 대출증을 모두 동원해서 30권씩 카트를 꽉 채워 빌려왔다. 그다음 날은 다른 도서관으로 가서 또 카트를 가득 채워 내 책을 빌려왔다. 딱히 읽고 싶은 책도, 찾는 책도 없고 내 독서 수준도 모르니 서가를 돌아다니며 눈에 띄는 책들은 다 빌렸다. 맥락도 흐름도 없이 아무 책이나 다 빌렸다. 그리고 읽었다.


 초반에는 우울증에 대한 책을 모조리 쓸어 읽었다. 내 주변에 우울증에 걸린 사람이 없으니, 나만 이런 건지, 병원에 다니면 도움이 되는지, 한없이 가라앉는 기분이 언제까지 가는지 이야기 나눌 사람도 없었다. 나도 내 진짜 감정이나 마음은 남편한테도 다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 주변에 누가 있었다 해도 그 사람과 진실된 대화는 어려웠을 것 같긴 하다. 상대방도 나와 우울증에 대한 대화를 나눠줄 의향이 있는지도 모르겠고.

 그래서 책으로 만났다. 나와 같지만 다른 우울증 환자들을 만났다. 그들도 친구한테는 말하지 못해도 글로는 다 토해낼 있었는지 책으로 출판된 우울증 체험기는 적나라하고 솔직했다.

 

 서울대 나오고 좋은 회사도 다니다가 우울증에 걸린 사람.

 나르시시스트 부모나 상사를 만나서 우울증에 걸린 사람.

 이상향과 현실의 괴리로 고통받다가 우울증에 걸린 사람.

 일이나 공부를 완벽하게 해내려다 무너져 우울증에 걸린 사람.

 출산과 육아로 인해 우울증에 걸린 사람.

 가족이나 친한 사람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우울증에 걸린 사람.


 우울증의 이유와 증상을 나열하자면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처럼 모두가 제각각 다른 이유를 갖고 있었지만, 더 환장할 것은 우울한 아무 이유도 없는데 우울증에 걸린 사람도 있다는 것이었다. 잘 살다가. 갑자기. 교통사고처럼. 그런 걸 보면 차라리 이유가 있는 게 더 낫나 싶기도 했다. 나는 어쨌든 원인은 알고 있으니.


 그나마 우울증의 세계는 명랑만화 수준이었다. 조울증이나 조현병으로 넘어가면 그 고통은 우울증과는 비할 수 없었다. 조현병이나 조울증인 가족들이 쓴 책들은 환자가 직접 쓴 책들만큼 절절했다. 특히 그런 환자의 부모 입장에서 쓴 책들은 환자를 케어하는 것도 힘들어 보였지만, 부모의 탓이 아닌 것을 알면서도 발병의 원인은 결국에는 부모에게 있지 않는가 하는 후회나 자책이 느껴져서 더욱 마음이 아팠다. 정신질환은 가족을 무너트리는 질병이었다.

 그 책들 안에서는 정신병동에 입원하는 것은 '우울증으로 책 정도 내려면, 입원은 필수지'하는 수준의 일상적인 일들이었다. 손목을 그었다, 자주 오가던 육교에서 뛰어내렸다 하는 이야기들을 읽다 보면, 우울증 이건 진짜 의지로는 안 되는 무서운 건가 싶기도 했다.

 어느 날 이유 없이 몰려드는 짜증에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다가 정신을 차려보면 생리 직전 이듯이, 이 우울증이라는 것도 호르몬이나 신경계의 문제라고 하면 나도 의지랑은 관계없이 자해나 자살 시도 같은 것도 하게 되는 걸까 두려웠다.


 그래도 책을 통해 접한 우울증 친구들과의 만남은 여러모로 가치 있었다.

 나보다 더 심한 사람들의 이야기에서는 '나는 이 정도는 아니네'라던가 '와.. 이렇게까지는 되지 않도록 정신 똑바로 차려야겠다'라는 안도감이나 다짐을 갖게 해 주었다.

 가족들에 의해 병원에 강제 입원 될 때, 그 순간까지 간호사에게 A4용지 하나만 제발 달라고 사정하여 본인의 증상과 감정을 기록했다는 어떤 책에서 만난 우울의 기록은 처절했다.

 폭풍 같은 날들을 지나 좋은 상담사나 의사 선생님을 만나 치료받는 과정을 보면 나는 만나지 못한 훌륭한 조력자를 만난 그들이 부럽기도 했고, 해묵은 감정을 다독이는 장면을 읽다가는 책 속의 모르는 의사가 건넨 위로에 울컥하기도 했다.


 모든 책의 결말이 완치와 희망과 위안으로 끝나지는 않았다. 여전히 치료 중으로 끝난 책도 있고, 조금 나았고 나아지려고 노력할 것이다로 끝난 책도 있고, 어떤 책은 이 사람은 지금 살아는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절망적으로 끝나버린 책들도 있었다.


 이런 책들을 읽으면서 확실히 내가 느낀 것은, 이들에게 글을 쓰는 과정은 치유의 시간이 되었겠구나 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아프고, 어둡고, 힘들었던 바닥 끝까지의 감정과 마음에 접근했고, 글로 풀어냈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그들에게는 미래가 있어 보였다. 밝고 희망찬 무지갯빛 미래가 아니라 조금이라도 우울을 컨트롤할 수 있는 미래. 우울 앞에 맞설 수 있는 삶. 자기 자신에 대해 가장 많이 바라보고 알아가는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힘들었던 그때까지의 인생보다는 조금은 더 나은 삶을 살 권리가 있는 것 같았다.


 어떤 사람들은 '우울한데 우울한 책을 왜 읽어? 더 밝은 책을 읽어야 하는 거 아니야?'라고 말할 수도 있으나, 우울증은 검색만 하면 정보와 후기가 쫙 나오는 당뇨 같은 병이 아니다. 간접 경험을 할 수 있는 폭이 좁고 얕다. 우울증 치료는 후기를 찾기 힘들다. 병원도 내가 가서 직접 진료받기 전에는 어떤지 알 수가 없다. 인터넷 커뮤니티에 글을 쓰기도, 댓글을 달기도 조심스럽다.

 그러니 우울증과 교류할 수 없어 답답한 사람들은 꼭 책을 통해 우울증을 만나보기 바란다. 홀로 느낄 수 있는 가장 좋은 위로는 '나만 이런 게 아니네' 하는 것인데, 인터넷 검색으로는 만날 수 없는 많은 스토리들을 책으로는 만날 수 있었다. 타인의 우울로 내 우울을 위로할 수 있었다.

 

 우울증에 관한 책들을 독파하고서는 진짜로 아무 책이나 읽기 시작했다. 새벽 2시, 3시가 되도록 잠이 오지 않았지만 수면제를 먹고 잘 생각은 없었기 때문에 불면의 밤을 독서로 덮기로 했다. 아이들과 남편은 12시쯤 되면 모두 잤고 나는 2시까지 책을 읽었다.



맥락도 흐름도 분류도 없는 나의 대출 도서들



 글을 쓰기로 했으니 글 쓰는 법에 관한 책을 읽었다. 에세이 쓰는 법, 문장 수정하는 법, 카피나 제목을 정하는 법에 관한 책들을 읽었다. 소설 플롯 쓰기나 감정표현하는 법에 관한 책들도 읽었다.

 내가 쓰는 글은 에세이에 속할 것이니 에세이와 수필도 읽었다. 김훈이나 정여울의 글이 좋았다. 라면이나 길가에 앉아있는 아이 하나를 보고서도 어찌 그런 훌륭한 한 편의 글이 나오는지 감탄스러웠다. '내 마음대로 살게요'식의 아무렇게나 사는 사람들 이야기도 좋았다.

 수준 있는 문장을 읽어야 내 글도 그렇게 될 것이니 고전을 읽었다. 남들은 예전에 다 읽었을 「호밀밭의 파수꾼」이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같은 책들을 읽었다. 읽다보니 「군주론 」도 재미있었다. 「니체 」는 뭔 소리인지 이해를 못 했지만 욕 하면서 읽었다.「호밀밭의 파수꾼」은 이 나이가 되도록 무슨 내용인지 모르고 있었다. 밀레의 이삭줍기 같은 배경에서 진짜 농부가 호밀밭 지키는 내용인 줄 알았다. 책을 읽는 내내 부끄러웠다.

 좋은 책을 찾기 위해 책에 관한 책들을 읽었다. 대부분이 줄거리를 소개하거나 책의 인상적인 내용을 인용하거나 요약한 것들이라 감동적이지는 않았지만 책에 대한 책들을 읽고 나면 읽고 싶은 책 리스트에 책이 몇 권씩 쌓여갔다.


  이렇게 읽을 책이 많았는데 이때까지 나는 무얼 하고 살았던 걸까? 읽으면 읽을수록 나의 무지가 부끄러웠다. 태어나서 책을 가장 많이 읽는데, 읽을 책들이 자꾸만 늘어갔다. 발산하는 무한급수처럼 읽고 싶은 책들이 늘어갔다. 이 리스트들이 '나를 독서의 세계에서 평생 나오지 않게 해 주겠구나'하는 어떤 구속감이 들어 좋았다.



읽으면 읽을 수록 늘어만 가는 「읽고 싶은 책 」 리스트





 무엇보다 책을 읽으며 가장 좋았던 것은 「지성인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이를테면, 이런 순간들이었다.

 읽고 있는 책에서 '「인간의 굴레에서」라는 소설에서는 이런 말이 나온다'라는 것을 보면 '음. 이 책은 서머싯 몸이 지었지. 달과 6펜스.'를 떠올렸다. 김영하 작가가 보르헤스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영상을 보면, '아,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아르헨티나 소설가. 점점 눈이 안 보이는.'라는 것이 생각났다. 팀 마샬의 「지리의 힘」을 읽으면서는 '테드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와 결정론적 세계관이 비슷하네' 따위의 근거없는 생각을 했다.

 

 뭔가 지성인이 된 듯한 기분. 나만 아는 기쁨이자 뿌듯함이었다. 책을 읽지 않았다면 이런 지적이고 순간적인 연상 작용들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데미안」의 주인공이 데미안인줄 안 채로 죽었을지도 모른다.



 책은 돈도 안 드는데 시간은 잘 간다.


 남아도는 시간을 갖고 있으며 밤에 잠까지 쉬이 잘 수 없는, 

 우울증인 우리들에게 책 보다 더 좋은 수면제가 있을까?




 

 우울증 친구들이여.

 저도 아직 잘 모르지만,

 책이 유튜브보다는 낫습디다.

 기어서라도 도서관에 함 가보이소.

 내보다 더 우울한 사람들 도서관에 많이 있어예.

 거기서 만나보이소.

 그리고 같이 함 느껴봐예.

 우울함을 잊게 해주는 독서의 기쁨이 있더라고예.


 





다음 이야기 : 글쓰기는 나에게 수학이 되었다

+ 내가 수학을 좋아했던 이유

+ 둘 다 시간이 잘 가고 재미있다면 믿으실래요

+ 수학은 언어다

+ 치유의 글쓰기란 이런 것인가

+ 우울한 상태에서 글이 더 잘 써져서 우울한 게 좋았대

+ 그럼 나도 우울한 걸 좋아해도 되겠네

+ 개그맨이 개그 소재를 찾듯, 나도 일상이 글감을 찾고 있으니 진짜 작가가 되기라도 한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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