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은 누가 풀든 답은 정해져 있고, 과정은 다르더라도 목적지는 같다. 국어나 사회를 공부할 때 가장 힘들었던 점은 해답지의 설명이 이해가 안 간다는 점이었다. 이해를 못 했다기 보다는 수긍할 수 없었다고 하는 것이 더 맞겠다.
"아니, 내 생각은 이건데, 뭐, 왜?"
"나처럼 생각하면 내 답도 답 맞거등요?"
이런 식의 사고가 열린 건지 막힌 건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내가 틀렸다는 것을 쉽게 인정할 수 없었던 문과 과목이었다. 지들끼리 싸우면 결과만 알려주면 되는데, 사회 과목은 각종 논란과 사안에 대한 찬반 입장을 다 살펴보고, 답도 없으면서 그걸 또 내가 배우고 익혀야 된다는 게 싫었다. 답이 없는데 답을 찾아야 하다니.
그에 반해 수학은 깔끔했다.
모든 것이 깔끔 그 자체.
해답지와 싸울 일이 없었다.
해답지 왈, "응, 너 틀렸어." 하면, 나는 "옙!"하고 바로 무릎 꿇으면 그만이었다.
심지어 내가 푼 풀이와 해답지가 다른 풀이라면, 무조건 답지의 풀이가 가장 효율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것에 반박할 필요도, 내 주장이나 생각을 펼쳐 싸울 필요도 없었다. 그냥 나의 패배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된다.
가장 좋은 것은 수학에는 답이 있다는 것이었다.
문제가 있으면, 답이 있어야지. 그럼.
수학을 풀면 시간이 잘 간다. 연습장 빼곡히 적힌 수학은 예쁘다.
수학을 풀면 시간이 잘 갔다.
안 풀리는 문제에 '누가 이기자 해보자' 마음으로 끝까지 몰입하면 중간에 시계를 안 봐도 두세 시간은 금방 지나갔다. 시끄럽고 지저분한 현실을 잊을 수 있어서 좋았다. 복잡한 마음이 들 때면 수학 문제집을 펼쳐 들었다. 내가 못 푸는 문제는 어디든 항상 있었다. 끝까지 못 푼 문제의 해답을 확인할 때는 내 생각이 어떻게 뻗치지 못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수학에 온전히 몰입하면 현실의 나를 잠시 밀어낼 수 있어서 좋았다.
글쓰기를 시작했다.
브런치에 글을 쓰게 되면서 일주일에 두 편 정도 글을 쓰고 있다. 2-3일에 한 번씩 글을 쓰고, 하루정도 묵히며 다시 읽어보고 다듬어 발행한다. 보통은 메모장이나 수첩에 기록해 두고 머릿속으로 생각해 두었다가, 먼저 연습장에 대충 써보고 컴퓨터로 옮기는 식으로 글을 쓴다. 대부분의 글쓰기는 가족 모두가 잠든 밤에 이루어진다. 신기한 걸 발견했는데, 글쓰기를 할 때도 시간이 잘 간다는 것이다. 주제를 잡고 집중해서 글을 쓰다 보면 새벽 늦은 시간이 되어도 피곤한지도, 졸리는지도 모르겠다. 밤 12시에 시작했으면 꼼짝도 않고 글을 쓰다가 정신 차려보면 새벽 3시였다. 글쓰기가 '이건 내 운명이야! 왜 이걸 이제야 알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엄청나게 재미있지는 않다. 또, 대단한 작가들이 창작의 고통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에 공감할 만큼 고통스럽지도 않다. 그냥, 글을 쓰다 보면, 시간이 잘 간다. 수학처럼.
수학이 직업의 영역으로 넘어와 이제 조금 지겨워질 때, 글쓰기가 찾아왔다.
어른이 된 나에게, 글쓰기는 수학이 되었다.
국어는 싫다며? 싫어한다며?
답이 없어서 싫다며?
그래. 그랬는데, 국어 공부는 그랬는데, 니체 형님 말씀대로 주체적인 인생을 사는 게 답인지, 내가 주체가 되어 내 마음을 거침없이 쓰다 보니 세상 이렇게 속 시원한 일이 없었다.
「치유의 글쓰기」에 관한 책을 읽고, 시작한 것이 글쓰기였다.
'글을 쓰면 치유가 된다고?' 하는 호기심 비슷한 마음에 시작했던 글쓰기는 진짜로 나를 치유해 주었다.
우울증에 관한 글을 쓰면서 나를 갈기갈기 찢어서 다 들여다봤다.
시작은 우울증이지만, 결국에는 나의 인생 전체를 돌아봐야 했다. 내 과거부터 현재까지, 원인부터 결과까지 모든 걸 다 살펴봐야 했다. 거기서 글이 될 만한 것들로 분류하고 목차를 뽑아보고 순서대로 나열했다. 그 과정 속에서 알게 모르게 우울과 거리두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우울증에 관한 글을 쓰다 보니 우울한 것도 지긋지긋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징징대는 내 모습이 싫었다. 글 하나를 쓰기 위해서 여러 번 생각하고 글을 다시 고쳐 쓰는 과정을 통해서, 내가 마주하고 싶지 않고 남에게는 늘 비밀로 했던 것들을 글로 썼다. 그 작업을 하다 보면 가끔 현실감을 잊었다. 내가 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글이 완성될 쯤에는 나와 분리된 나에 대해 쓰고 있는 듯했다. 글을 다 쓰고 나면 그 글 속의 나는 뒷전이고, 그저 수정되어야 할 문장과 틀린 맞춤법들만 보일 뿐이었다. 글 안의 힘들고 어두웠던 감정들은 글을 쓰는 과정을 통해 과거의 지나간 감정이 되었다.
물론 쓰기 어려운 글도 있었다.
「이혼가정의 자녀로 산다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는 몇 번이나 꺾어 썼다. 한 번에 쓰지 못했다. 미친 듯이 썼다가 너무 미친것 같아 다 지워버린 문단이 한두개가 아니다. 아무에게도 하지 않은 말들을 글로 다 써서 아무한테나 보여준다는 것이 아이러니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막 쓸 수 있었다.
'나를 아는 사람이 나중에 이 글을 보면 어쩌지', '엄마가 이걸 보면 뭐라고 생각할까'
발행하기 직전까지도 올리지 말까, 다른 글을 다시 쓸까 했다가 '에잇, 몰라'하고 그냥 올려버렸다. 그 밑에 같은 심정이다, 이해한다는 댓글이 달렸다. 바로 답글을 달지 못했다. 한참을 묵히다 답을 달았다. 어떤 댓글을 보다가는 울컥하기도 했다.
마음을 아프게 하는 유입키워드
그 글은 내가 쓴 글 중에 유입키워드를 통해 가장 많이 읽히는 글이다.
유입키워드는 '이혼가정 자녀', '이혼 자녀 힘듦', '이혼 자녀 결혼', '이혼한 부모' 이런 것들인데, 누군지는 모르지만 그런 검색어가 내 통계에 뜰 때마다 혼자 속으로 꿍얼거려 본다.
너도 나처럼 힘든가 보다. 이 글이 너에게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겠니.
그 글은 가장 쓰기 힘든 글이었지만 글쓰기에 대해 가장 많이 느끼게 해준 글이기도 하다.
내 꼬인 감정이 조금 풀리게 되었다.
그래도 몇 명은 내 글을 보고 위로를 받는구나. 내가 쓰는 글들이 아주 쓰레기는 아니구나. 생각했다.
'엄마도 엄마의 삶이 힘들었겠지'라고 아무리 애써 생각해보려고 해도 절대 그렇게 되지 않았다. 머리로는 그렇게 생각했다가도 곧 원망하는 마음이 올라왔다.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 글을 쓰고 난 이후로 대나무숲에 목이 쉬어라 욕을 퍼부은 것처럼 속이 후련했다. 그리고 엄마도 불쌍하다는 생각이 진짜 조금씩 든다. 물론 억울하고 원망하는 마음도 함께 있어, 올라오는 양가감정에 괴롭다. 하지만 조금 덜 휘둘리려고 노력한다. 깔고 있는 아스팔트처럼 찐득한 감정들이 엉겨 붙어 있긴 하다. 그래도 철 지난 기억과 감정들 정리해서 분리수거를 좀 해야겠다.
상담을 10회차 받았으면 이런 생각의 정리를 할 수 있었을까? 정신과 약을 먹으면서 침대에 누워있었으면 신경계가 알아서 자동으로 움직여 이렇게 마음이 정리가 되었을까?
글쓰기로만 가능한 마음 청소의 과정이다.
수영장에 가든 마트에 가든 '어디 뭐 글 쓸 거 없나' 하고 주변을 관찰한다. 남들 이야기를 엿듣고 다른 사람을 눈여겨보는 습관이 생겼다. 생활에서 느껴지는 소소하고 치사하고 쪼잔하고 유치한 감정들이 소중해졌다.
커피값은 안 아끼면서 500원짜리 종량제 봉투가 찢어질 때까지 쓰레기를 우겨넣는 내 자신을 발견할 때, 유난히 퉁명스러운 카페 알바생에게 커피를 전해 받을 때, 맥도날드에서 세트를 주문했는데 후렌치후라이가 하나 빠져있을 때, 운전 중에 여유롭게 무단횡단 하는 등 굽은 할머니를 볼 때, 그 순간들이 소중하다.
열받고 화가 나는데 즐겁고 기쁘다. 화나고 짜증 나는 순간도 '어? 이거 글로 쓸 수 있겠는데?' 하는 생각이 들면 화가 폭발하려다가도 슥 가라앉는다. 우리 딸이 난리난리 칠 때, 울화통이 터지면서도 신박한 방법으로 난리지랄을 할 때는 화도 나지만 한 구석에서는 '아, 이거 까먹기 전에 빨리 메모장에 적어야지'하는 생각이 든다. 글소재 화수분이 집안에 떡하니 한 방 차지하고 앉아있으니 이것이야 말로 신의 선물인가, 고맙기까지 하다. 이 인간은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도 심상치 않을 듯싶어나는 내 의지만 있다면 계속해서 가족 에세이를 쓸 수 있을 것 같다.
개그맨들은 상갓집에서도 개그 소재를 찾는다고 한다. 일상에서 늘 개그 소재를 찾는 개그맨들처럼, 눈을 시뻘겋게 뜨고 무엇이든 글 소재로 삼으려고 하는 나를 발견하면, 꼴에 나도 진짜 작가가 되었나 싶기도 하다.
기껏 브런치에 글 몇 편 올려놓고 글쓰기에 대해 찬양하기에는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글쓰기를 권하는 책들에 나오는 글쓰기의 다양한 효능(?)에 대해서 덧붙여 말할 능력도 없다.
작가라고 하기에도 민망한데, 브런치에서는 누구나 나에게 '작가님'이라고 해주신다. 가끔 '글을 잘 쓰시네요, 글이 재미있어요' 하는 댓글은 너무 힘이 나고 좋지만, 한없이 부끄럽다. 다른 사람한테 나한테 이런 댓글도 달렸다고 자랑하고 싶은데 못한다. 그래도 기분이 좋으니까 캡쳐는 해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