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쓰야마'를 담은 음악들
"형! 다음 주 목금토일 3박 4일로 일본 갈래?" 친한 대학 동기가 대뜸 제안을 했다. 한창 학기 중에 갑자기 일본을 가자고 하다니 무척 당황스러웠다. 내 버킷리스트 중 하나가 학기 중 여행이긴 했지만 이렇게 갑자기 이룰 줄은 몰랐다.
고민을 해보겠다고는 했다. 하지만 말만 그랬지 속으로는 이미 결정을 한 상태였다. 미처 생각지도 못한 계획이 있을 수도 있어 다시 한번 되짚어 봤다. 어차피 별 계획은 없었다. 그리고 그날 점심을 먹으면서 같이 가는 동기들과 숙소와 비행기를 예매했다.
인생은 갑작스러움의 연속이라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어서인지 '갑자기?'라는 말이 어느샌가 입에 붙었다. 예견된 미래는 없지만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미래는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것 또한 착각이란 것을 알았다. 예측이라는 단어를 붙일 수 있는 미래는 없다. 그러니 학기 중에 인천공항을 가기 위해 아침 9시에 공항버스를 탔던 것이다.
낭만을 칠해야 한다면 노을에 젖은 구름을 짜서 물감으로 쓸 것이다. 하늘을 뒤덮은 붉은빛 구름을 보면서 든 생각이다. 거미줄처럼 가로지르는 전선들이 지저분해 보이기보다는 인간적이었다. 건물과 건물을 잇는 까만 전선들은 곧 사람과 사람을 잇는 하나의 마을을 형성하는데 큰 영확을 하기 때문이다. 높은 건물로 뒤덮인 서울을 벗어나 부담 없이 올려다볼 수 있는 건물들을 바라보니 경쟁만이 넘치는 정글을 잠시 벗어나 끝이 보이지 않은 지평선을 바라보는 느낌이었다.
붉은색 하늘을 보니 '라라 랜드'에서 푸르스름한 하늘을 배경으로 세바스찬과 미아가 춤을 수는 영화 속 장면이 떠올랐다. 둘 다 해질녘을 배경으로 한 장면이라는 연결고리가 무의식적으로 작용해서인지 영화 속 장면이 번뜩하고 떠올랐다. 위의 사진은 멈춰있기에 정적인 느낌의 낭만이라면 '라라 랜드' 영화 속 장면은 좀 더 동적인 낭만이라고 생각한다. 붉은색 하늘에 푸른색 노래가 더해지니 머릿속에서 두 가지의 낭만이 충돌을 했다. 언제 다시 느낄지 모르기에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찬찬히 내뱉으며 눈에 담았다.
도로를 가로지르는 전차가 인상적이었다. 차갑게 땅속을 지나는 지하철과는 다른 느낌의 소박함을 갖춘 인간적인 이동수단이다. 버스와는 달리 전차는 저 멀리서부터 천천히 소리가 들리며 도로를 채운다. '쿠궁쿠궁'하고 지나가는 소리는 도시를 관통하는 소리로 빠르지도 그렇다고 너무 느리지도 않은 '여유로운 삶'을 보여준다. 우리나라에서 익숙하지 않은 풍경이어서 그런지 인상적이었다. 저 멀리서 '쿠궁쿠궁'하며 다가오는 전차를 보며 여유가 무엇인지 다시금 알게 되었다.
여행을 출발하기 전날 나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수업을 듣기 위해 아침 6시에 일어났다. 부랴부랴 준비를 하고 학교를 가서 수업을 다 듣고 나면 저녁 6시였다. 집에 오는 길에 항상 느끼지만 하루가 무척 짧았다. 하루 종일 보람차게 보내서 그런 걸까? 아니면 해야 할 과제와 공부가 많아서 그런 걸까? 집으로 오는 길은 보람보다는 조급함만이 꽉 차 있다.
여행을 하면 매번 느끼지만 시간이 늘어난다. 여유와는 다른 개념인 거 같다. 촉박하게 일정을 짜면 그만큼 조급해 지기 때문에 여유를 느끼지는 못한다. 하지만 아무리 촘촘하게 여행 계획을 짰다고 하더라도 일상과는 다르게 시간의 속도가 조금 느려진 것 많은 확실하다.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고 어느 정도의 답을 찾았다. 새로움과 낯섦의 연속이 우리의 시간을 느리게 가게 해준다. 매일이 비슷했던 일상은 시간의 흐름을 느끼기에는 너무 밋밋했다. 또한 몰두할 것이 정해져 있기에 다음을 생각할 필요도 없었고 시간을 확인해 보면 1~2시간이 훅훅 지나가 있다. 하지만 여행은 다르다. 계속해서 낯선 것들이 보이고 다음을 생각해야 한다. 익숙한 것은 없기에 지루하지도 않다.
인생을 여행하듯이 살면 좀 더 하루를 길게 보낼 수 있지 있을까? 매일매일이 새로워 다음날이 기대가 된다면 우리 인생은 보다 더 보람차고 재미있지 않을까?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한다. 즉 방문하는 곳의 문화를 존중하고 지켜야 한다. 과거에 도쿄를 방문한 적이 있긴 했지만 그렇게 우리나라와의 차이를 느끼지는 못했다. 하지만 마쓰야마는 달랐다. 도로에 버려진 담배꽁초 하나 보이지 않았고 아무리 짧은 횡단보도여도 신호등이 있었고 모두가 지켰다. 당연히 무단횡단을 하는 사람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답답함을 느끼는 우리가 잘못된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짧은 거리의 횡단보도에도 신호등이 있었다. 우리나라라면 애초 횡단보도조차 없을 도로를 사이에 두고 당연하다는 듯이 신호가 바뀔 때까지 기다리는 일본인들을 보면 참으로 대단했다.
일본의 횡단보도를 보면서 문득 사회가 돌아가는 원리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신호등이 나라에서 정한 법이라면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를 건너는 것은 '암묵적인 사회적 약속'에 의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법이 촘촘해도 모든 상황을 고려할 수는 없다. 신호등도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모든 길에 신호등을 설치하면 당연히 안전하고 처벌을 하기도 쉽다. 하지만 모든 곳에 신호등을 설치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는 운전자와 보행자 간의 배려와 상호 교감을 통해 충분히 건널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 간의 배려와 암묵적으로 형성된 사회적인 약속이 법이 포괄할 수 없는 사소한 부분을 채워줘 사회가 유지되는 것 같다.
여유를 잃어버린 삶은 참으로 삭막하다. 여유가 있어야 주변에 관심이 생기기 때문이다. 즉 여유가 없는 삶은 자기 자신만 남은 삶이다. 더 심각할 경우는 자기 자신조차 없는 삶일 수 도 있다. 따라서 여유는 삶을 보다 부드럽게 흘러가게 하는 윤활제이다.
여유를 느끼지 못한다면 강제로라도 여유를 만들 필요가 있다. 핸드폰이 렉이 걸려 움직이지 않는다면 강제로 배터리를 제거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말하는 강제로 배터리를 제거하는 게 억지로라도 모든 일을 내려놓고 휴식을 취해 여유를 만드는 것이다. 주변을 둘러보아야 내가 걷는 길이 보일 것이다. 땅만 보고 걷다가 낭떠리지 앞에서 멈출 수는 없지 않은가.
마쓰야마 여행을 하면서 여유를 다시금 느꼈다. 학기 중에 여행을 오는 것 자체로 여유를 느낄 수 있었지만 지방 도시 특유의 분위기와 겹쳐지면서 충분한 여유를 느낄 수 있었다. 빠름에 중독되었던 몸이 해독되는 듯한 기분을 오랜만에 느꼈다. 다음에도 여행을 떠난다면 휘황찬란한 대도시보다는 조용한 지방도시를 선택할 것 같다. 이번에 일본의 여유를 느꼈다면 다음에는 한국의 여유도 느껴서 비교해보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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