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현대 미술의 이단자들' 서평

현대 미술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당장 펼쳐보기를 권하는 책

by 하잎
' 현대 미술의 이단자들'


[현대 미술의 이단자들]

마틴 게이퍼드 저/주은정 역
을유문화사 | 2019년 09월



1. 프랜시스 베이컨


작품에 대한 평론은 예술가의 생애를 완전히 이해해야 가능하다. 작품을 그린 본인조차 의식하지 못한 채 자신들의 삶이 스며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최대한으로 집중해서 수집한 수만 가지 감각들이 캔버스 위에 흩뿌려지면서 모습을 드러내고, 인류 역사 한 칸에 남아 무한한 충격과 감동을 선사한다.


'프랜시스 베이컨'


이 책은 베이컨, 프로이트, 호크니 등의 소위 말하는 ‘현대 미술의 이단자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세계 미술사를 뒤흔들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들이 왜 거장으로 칭송받는지, 그들이 개척한 길이 어디로 향해 뻗어있는지를 엮어 놓은 책으로 현대 영국 미술가들의 삶과 작품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는 지표이다.


현대 회화의 가장 큰 적은 ‘사진’이다. 사진의 출현은 곧 회화의 종말을 의미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인상적이었던 점은 바로 이들이 ‘사진’을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각자의 개성이 드러난다는 점이었다.

베이컨은 ‘사진의 실패’에 가장 관심이 컸다. 그는 초점이 맞지 않은, ‘흔들려서 실패한 사진’을 곧 기억의 흔적으로 보았다. ‘실패한 사진’에 관심을 가졌던 베이컨은 이러한 흔적을 가져오기 위해 약간 초점이 나가도록 인체를 그렸다.


‘기억의 흔적’은 베이컨의 가치관을 담고 있는 단어이다. 인간 현존의 자취를 담은 그의 작품은 ‘어느 사람이 그림 사이를 지나간 듯 보이기를 바랍니다.’라는 그의 말처럼 삶이라는 캔버스 위를 가로지른 붓의 긴 꼬리가 남긴 잔상은 바로 기억의 흔적인 것이다.


베이컨이 이단자로 불릴 수 있는 이유는 바로 관습적인 방식을 따라 그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의 작업의 특징 중 인상적이었던 점은 바로 ‘발견한 이미지’를 잘라내고 오려내며 그림으로 변환시킨다는 점이다. 여기서 눈길을 사로잡은 단어는 바로 ‘발견한 이미지’였다. 베이컨은 다른 미술가들처럼 직접 촬영한 사진을 바탕으로 작업하지 않았다. 그의 자료 아카이브는 무질서한 ‘발견한’ 이미지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이렇게 무질서하게 수집된 이미지들은 바닥에 나뒹굴며 의도하지 않은 방식대로 구겨지고 더러워지며 ‘숙성’의 단계를 거쳤다. 이와 같은 방식은 위대한 미술 작품의 사진을 자연스럽게 베이컨만의 개성이 묻어나는 회화로 ‘변형’시키데 일조했다.


'머리 VI'


무질서한 이미지들을 결합해 다양한 작품을 만들어낸 베이컨을 처음 알게 된 작품은 [머리 VI]이었다. 처음 작품을 접했을 때의 느낌은 강렬하면서도 신선했다. 그을린 나무판자 위에 박혀있는 포효하는 입은 ‘소리 없는 아우성’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라 생각한다.


그로테스크하게 담긴 인간의 폭력성과 존재적 불안감이 느껴지는 [머리 VI]는 전혀 다른 두 이미지를 결합해서 만든 작품이다. 역설적이게 베이컨의 눈에 극적으로 어울리지 않은 이미지들이었기 때문에 결합을 시도했을 것이다. 그리고 결합된 이미지는 우리를 ‘혼란에 빠지게’ 만들었다.


베이컨은 의식적인 통제를 포기한 우연의 효과를 결합해야만 사진을 뛰어넘는 현실의 이미지, 곧 진정한 새로운 구상회화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베이컨은 진정한 미술가는 무의식적인 동기에 의해 작동된다고 주장할 정도로 이성적이고 통제된 방식을 격렬히 거부했고 그의 작업 방식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베이컨의 초상은 자아의 한계 지점에 대한 물음이다. 어느 지점의 왜곡까지 인물이 ‘자신’이라는 개체로 남아있을 수 있는가? 어느 경계선에 이르러야 자아는 본인 스스로이길 중단하는가? 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것으로 보인다.



2. 루시안 프로이트


베이컨과 다르게 프로이트의 작품에는 ‘초현실적인 분위기’가 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초현실은 현실을 초월한다는 의미가 아닌 현실 그 이상으로 봐야 한다. 프로이트의 그림에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현실이 담겨 있다.


프로이트는 당시 화가들이 기존의 색을 뛰어넘는 색을 보기 위해 아편을 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프로이트는 대상과 같은 색을 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그들이 세계를 벗어나고 싶어 할 때 프로이트는 철저하게 세계에 머물고 싶어 했다.


'루시안 프로이트'


사진이 현실에 대한 정확한 그림을 만든다는 불안한 의식을 갖고 있던 당시 인식과는 다르게 프로이트는 회화를 위한 기초 자료나 회화의 경쟁 상대로서의 사진에는 관심이 없었다. 프로이트가 보기에 사진은 빛이 어떻게 떨어지는지에 대해서는 많은 정보를 담고 있지만 그 밖의 것에 대해서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었다.


프로이트의 작품이 사진보다 더 사실적인 이유는 바로 프로이트가 모델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진이 묘사하지 못하는 그녀에 대한 느낌, 내면, 그녀의 존재가 그가 그녀의 주변 환경을 지각하는 데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사진이 담지 못하는 측면들을 보고 그렸다.



이외에도 다양한 런던의 화가들의 가치관과 작업방식을 작가와의 생생한 인터뷰를 토대로 현실감 있게 전달해 주고 있다. 서평에서 굵직하게 베이컨과 프로이트에 대한 점만을 다루었지만 이들 이외의 화가들을 통해서 현대 미술과 영국 화가들에 더욱 관심이 많아졌다.


회화는 알 수 없고 대단히 어려우며, 그 불가사의함과 어려움이 회화를 가치 있게 만드는 것과 연결되어 있다. 현대 미술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당장 펼쳐보기를 권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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