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빨간 역삼각형 '천천히'가 달 밑에 떠있고

우리는 조금 더 천천히 살아갈 필요가 있다.

by 하잎


숨 가쁘게 달려온 오늘을 끝내기 위해 집으로 향하는 길, 무심결에 바라본 핸드폰에 아무런 표정이 없는 내가 비친다. 오늘의 나도 이제 점점 끝나가고 새로운 내일의 내가 잠에서 일어나겠지만 왜인지 오늘의 나랑 같을 것 만 같다.


일단 달리고 보면 어떻게든 될 줄 알아서 앞만 보고 달렸고, 남들처럼 뛰면 될 것 같아서 억지로 속도를 맞추었다. 경쟁은 나를 한층 더 발전시켜준다고 믿고 자책의 채찍질을 수도 없이 했다. 하지만 남는 것은 지쳐서 우두커니 서있는 나 자신뿐, 다리 위에 길게 뻗어있는 빛의 잔상들은 내가 혼자 서있는지도 모른 채 쌩쌩 달리고 있다.


빨간색 테두리 안에 하얗게 빛나고 있는 '천천히'란 세 글자가 공중에 떠있다. 그 옆을 지나가는 자전거의 행렬을 멍하니 바라보며 다리 힘이 풀려 지쳐가는 사람을 위로해주기 위해 기다린다. 이제 그만큼 뛰었으니 지금부터 천천히 걸어도 된다는 무언의 위로가 내일을 향해 달리던 사람의 숨을 고르게 한다.


우효 - 아마도 우린

영원히 걸을 수 있을 것만 같은 속도가 있다. 하늘과 땅이 만나 뒤섞이는 곳을 바라보며 나의 호흡을 느낄 수 있는 속도가 '천천히'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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