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조금 더 천천히 살아갈 필요가 있다.
숨 가쁘게 달려온 오늘을 끝내기 위해 집으로 향하는 길, 무심결에 바라본 핸드폰에 아무런 표정이 없는 내가 비친다. 오늘의 나도 이제 점점 끝나가고 새로운 내일의 내가 잠에서 일어나겠지만 왜인지 오늘의 나랑 같을 것 만 같다.
일단 달리고 보면 어떻게든 될 줄 알아서 앞만 보고 달렸고, 남들처럼 뛰면 될 것 같아서 억지로 속도를 맞추었다. 경쟁은 나를 한층 더 발전시켜준다고 믿고 자책의 채찍질을 수도 없이 했다. 하지만 남는 것은 지쳐서 우두커니 서있는 나 자신뿐, 다리 위에 길게 뻗어있는 빛의 잔상들은 내가 혼자 서있는지도 모른 채 쌩쌩 달리고 있다.
빨간색 테두리 안에 하얗게 빛나고 있는 '천천히'란 세 글자가 공중에 떠있다. 그 옆을 지나가는 자전거의 행렬을 멍하니 바라보며 다리 힘이 풀려 지쳐가는 사람을 위로해주기 위해 기다린다. 이제 그만큼 뛰었으니 지금부터 천천히 걸어도 된다는 무언의 위로가 내일을 향해 달리던 사람의 숨을 고르게 한다.
영원히 걸을 수 있을 것만 같은 속도가 있다. 하늘과 땅이 만나 뒤섞이는 곳을 바라보며 나의 호흡을 느낄 수 있는 속도가 '천천히'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