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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잎 Feb 19. 2020

[영화] 마담 프루스트가 일깨워준 회상의 미학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 (Attila Marcel, 2013)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



1. 장편 소설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영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은 마르셀 프루스트의 7부작 장편 소설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제1권이라 할 수 있는 <<스완네 집 쪽으로>>를 오마주한 작품이다. 1905년, 마르셀 프루스트가 세상에서 가장 의지했던 엄마가 세상을 떠나자 퇴폐적 상류 사교계의 발을 끊고, 일체의 외출을 삼간 채 방 안에서 전설적인 대작을 써 내려갔다. 외부의 소음들을 차단하기 위해 침실을 코르크로 도배하고, 천식 때문에 모든 창문들 닫고, 훈증요법을 하며, 1910년부터 1922년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약 13년에 걸쳐 대작을 완성했다. 자신의 생애를 온전히 한 작품에 바쳤던 마르셀 프루스트는 세계 문학사에 빛날 대작의 탄생을 알리는 <<스완네 집 쪽으로>>를 1913년 자비로 출간을 한다.     


 


33살의 벙어리 ‘폴 마르셀’은 고장 난 엘리베이터 때문에 매일 오르락내리락하는 나선형 계단과 같은 삶을 반복한다. 악몽으로 아침을 맞이하고, 샤워를 한 후, 이모들이 하는 댄스학원에서 피아노를 치면서 슈케트를 먹는 것이 일상인 폴의 눈은 초점을 잃은 채 희미하지만 강렬한 어느 시점의 과거에 멈춰있다. 자신을 괴롭히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포함한 악몽에 시달리는 폴은 우연히 마담 프루스트를 만나면서 잊어버린 줄 알았던 어린 시절의 기억들을 건져 올리기 시작한다.



2. 인간에게 기억이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1권 <<스완네 집 쪽으로>>의 첫 부분에는 한밤중에 갑자기 깨어났을 때를 예로 들며 깨어나는 순간 자신이 어디 있는지를 모르기 때문에 처음 순간에는 자신이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고 한다. 극단적으로 사고나 마취를 통해 잠시 의식을 잃었다가 깨어난 사람을 예로 들면 처음에는 시간, 장소, 그리고 자신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기 때문에 무지의 상태에 놓인다. 이런 무지의 상태를 벗어나는 법은 주위에 시간과 장소를 물어보는 것과 자기가 누구인지를 알기 위해 기억을 더듬는 법이다. 다행히도 기억을 찾는다면 자기가 누구인지 알게 되지만 만약 찾지 못한다면 반대의 경우가 발생할 것이다.



인간에게 기억이란 무엇일까? 단순한 과거의 집합체인 것일까? 즉 기억은 자기가 ‘누구였는지’를 알게 해 주고 비로소 자기가 ‘누구인지’를 알게 한다. 이렇듯 자기가 누구인지를 아는, 흔히 말하는 ‘정체성’의 바탕이 바로 기억인 것이다.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퀴멜은 “그 가능성에서 볼 것 같으면 인간은 기억을 소유하고 있지만, 그 본질에서 볼 것 같으면 인간은 기억이다.”라는 말을 했다. 과거, 현재와 미래를 하나로 연결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보하게 하는 능력이 바로 인간의 기억이며 곧 인간이 기억이라 할 수 있다. 



3. 폴을 묶어버린 기억


폴의 기억 깊숙이 박혀있는 뿌리는 ‘엄마에 대한 그리움’ ‘아빠에 대한 미움’이다. 부모님을 눈앞에서 잃었던 충격으로 실어증에 걸린 폴의 초록색 두 눈에 담긴 부모님에 대한 기억은 어렸을 때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폴을 옥죈다.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가 자신이 가장 의지했던 어머니를 잃고부터 일체의 외출을 삼가고 방 안에 틀어박히는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 것처럼 폴 또한 부모님을 잃은 후 스스로 영원한 침묵의 방에 들어가 버린다. 



폴은 육체적으로는 성장을 했지만 정신적으로는 성장하지 못했다. 부모님을 잃은 후부터 폴의 인생은 멈추었기 때문이다. 정체성과 자아는 폴에게 없었으며 하루하루는 단지 흘러가버리고 마는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기억이 천상의 구원처럼 내게 내려와, 혼자서는 빠져나올 수 없는 허무로부터 나를 건져준다.”라는 <<스완네 집 쪽으로>>의 첫 부분에 나오는 말처럼 영원한 침묵의 방에 갇혀있던 폴은 마담 프루스트가 건져 올려준, 심연에 잠겨있던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통해 서서히 침묵의 방문을 열고 한 발자국씩 세상으로 나오는 구원을 받는다.



4.  기억은 '나'를 지탱하는 힘


기억을 더듬으며 자신을 찾아가는 폴 마르셀은 마담 프루스트의 말처럼 ‘영원한 두 살’로 살아갈 뻔했다. 하지만 잊어버렸던, 아니 잃어버렸던 어린 시절의 기억들을 하나 둘 건져 올리며 진정한 자아를 찾았다. 영화의 후반부에서 피아노 대신 우쿨렐레를 연주하는 폴의 모습은 어색함도 슬픔도 없는 자유로움 그 자체였다. 결혼도 하고 아기도 갖게 되며 영원히 말하지 못할 뻔했던 아빠를 말하며 세상으로 나온 폴은 더 이상 슬픈 초록빛 눈이 아닌 사랑을 온전히 느끼고 표현할 수 있는 인간으로 새로 태어났다.

    


기억을 되짚다 보면 마르셀 프루스트의 말처럼 진정제가 손에 쥐어질 수도, 피하고 싶던 독약을 삼키고 괴로워할 수 있다. 하지만 머릿속을 휘젓다 잡힌 기억이 진정제이든 독약이든 모든 기억들은 ‘나‘라는 존재를 지탱하는 견고한 지반이다. 폴 또한 독약 같은 아픈 기억을 삼켰지만 도로 뱉어내지 않았기 때문에 옥죄었던 과거를 벗어나 세상으로 나올 수 있었다. 더 이상 슬픈 초록색 눈의 폴이 아닌 자신을 닮은 아이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폴의 눈을 마담 프루스트가 봤다면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https://www.youtube.com/channel/UCoksPVsmkS7LIybNqn0qq2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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