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살, 다름이라는 벽을 향한 도전

12살, 혼자 캐나다 위니펙에서의 두 달 생활

by 하잎

‘어린 나이’는 매우 추상적이다. 평균수명은 시대에 따라 다르고 그에 맞게 성인과 어린이를 나누는 기준은 다르기 때문이다. 어린이날이 올 때마다 ‘어린이의 기준은 어디까지인가요?’라는 가볍지만 생각해 볼만한 질문이 올라오는 것처럼 모두에게 ‘어린 나이’는 천차만별이다.


어렸을 때 가장 도전적인 경험에 대해 묻는다면 초등학교 5학년, 12살에 홀로 캐나다 위니펙에서 2달 동안 홈스테이를 한 경험을 대답한다. 물론 모든 12살을 어리다고만 보지는 않는다. 살아온 환경에 따라 12살이라도 생각이 깊고 주체적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12살의 나는 매우 어렸다. 외로움이라는 단어가 차가운 캐나다 공기와 뒤섞여 눈앞에 둥둥 떠다니는 것을 감당하기에 어렸다.


한국을 떠나고 캐나다에 도착하기 전까지 두려운 것도 없었고 거창한 시작이자 도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경험해보기 전까지 절대로 머릿속에서 피어오르지 않는다는 것을, 싸늘함이 피부를 타고 넘어가는 기분을 모르기 때문이다.


캐나다라는 막연한 기대감은 12시간이라는 견디기 힘든 비행시간에 무너졌고 입국심사를 통과한 직후 코를 자극한 시원하면서도 낯선 공기가 머릿속을 파고들었을 때 현실을 직시할 수 있었다.


여기는 한국이 아니고 캐나다구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면서 "와 진짜 시작이구나."라고 중얼거리는 모습은 아직도 선명하다.


캐나다 생활의 초반은 육체적, 정신적 고난의 연속이었다. 시차는 문제가 아니었다. 인종, 언어, 문화의 차이가 문제였다. 한국에서 지겹도록 들었던 차이라는 단어, 듣기만 했을 뿐 경험해보지 못한 차이를 처음으로 접했을 때의 중압감은 12살이 짊어지기 무서울 정도로 무거웠다.


다르다와 틀리다는 엄연히 다른 개념이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자주 혼동해서 사용할 정도로 다름을 틀림으로 바라보는데 익숙하다. 이처럼 캐나다인들에게 내가 ‘틀린 사람’으로 보일까 봐 두려웠다. 다른 사람이 아닌 틀린 사람으로 본다면 몸속 설명할 수 없는 어딘가가 깊숙이 찔린 것처럼 아픔이 스멀스멀 퍼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같은 걱정은 무지에서 나온 편견이었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나를 다른 사람으로 받아들였다. 그들 역시 다름을 배울 수 있는 뜻깊은 기회라고 말을 해줬다. 동양 문화와 서양 문화가 만나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과정을 경험했고 나뿐만 아니라 홈스테이 가족, 학교 친구들과 선생님까지 모두가 성숙해질 수 있는 계기였다. 문화는 나눌수록 커졌고 각각의 문화를 존중하고 자부심을 느끼면서 그 안에 담긴 멋이 피어올랐다.


여러 문화 차이 중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바로 문신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었다. 캐나다는 문신에 관한 TV 프로그램이 있을 정도로 문신에 대한 인식은 한국과 다르게 매우 좋았다.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는 하나의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홈스테이 했던 가족의 아버지는 할리데이비슨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소위 상남자였다. 그리고 상남자답게 등에는 형형색색의 문신이 있었다. 당시 문신은 곧 범죄자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2달 동안 생활해야 할 집주인의 등에 가득 찬 문신을 봤을 때는 경악 그 자체였다. 하지만 잠을 이루지 못해 고생하는 나를 온화한 미소로 다독여주면서 하루빨리 적응하는데 도움을 주시는 모습을 보면서 문신에 대해 가지고 있던 부정적인 편견들을 완전히 깨버릴 수 있었다.


지금도 그때 듣던 노래를 들으면 눈 덮인 하얀 도로가 자동으로 떠오른다. 눈으로 덮인, 끝을 모르는 경계가 없어진 도로는 다시 못 볼 장관이자 소중한 추억으로 노래에 저장되어있다.


경계가 없어진 도로는 어린 나이에 마주친 다름이라는 벽을 향한 도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억지로 허무는 것이 아닌 자연스럽게 머리와 마음속에서 지워버린 것처럼 말이다.


어린 나이에 다름이라는 벽을 향해 도전을 했기 때문일까? 자연스럽게 남의 입장에서 먼저 생각하는 자세를 얻게 되었고 삶면서 마주친 다양한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할 원동력을 얻을 수 있었다.


12살, 캐나다 위니펙에서 홀로 다름이라는 벽을 향한 용감한 도전은 나를 지탱하는 굳건한 뿌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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