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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조울 May 02. 2023

재투약

여전히 쉽지 않은

  1주 전부터 다시 기분안정제를 시작했다. 사실 주치의는 한 달 전부터 약을 시작하자고 몇 번이나 권했다. 내가 아직 2주 이상 증상이 지속되지는 않는다는 핑계로 피해왔다.


  일단 경조증은 아니다. 그러나 우울하지도 않다. 만사 재미없지도 않다. 그렇다면 왜? 이번엔 ‘재앙화 사고‘가 문제였다.

  나는 참 대인관계, 인간의 말과 표정에 예민한 사람이다. ‘꼽주기’, ‘비꼬기’, ‘비아냥대기’를 귀신같이 캐치해내고 무던한 사람들은 그저 흘려버릴 상대의 언행에 일일이, 굉장히 심하게 상처받는다. 세상 사람은 누구나 착하고 동시에 못 되고, 우아하면서 동시에 치사하고 비열하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려는 의도도, 의식적이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무의식적이다. 나도 그렇다. 사람의 언행은 가려듣고 보지 않으면, 살 수가 없다. 그러지 못하고 악착같이 상처받는 인간, 그것이 바로 나다.

  재앙화 사고는, 사건의 심각성을 혼자서 너무 과장하고 부풀리는 사고 방식을 말한다. 예를 들어 엘레베이터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면 자기도 모르게 엘레베이터가 추락하여 죽고 말 것이라는 상상에 빠져든다. 그리고 이런 상상을 기정사실화 하면서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는다.

  나의 경우, 재앙화 사고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 한 번이라도 나에게 상처를 줬던, 혹은 기분을 상하게 만들었던 사람이 나에게 와서 싸움을 거는 상상을 한다. 내 상상 속에서 싸움은 절정을 향하고 상대는 나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파국을 맞이한다. 마치 시나리오를 쓰듯이, 눈 앞에 장면을 구체적으로 그리듯이 상상한다. 상대가 나에게 어떤 표정으로 무슨 말을 하는지, 주변 환경과 인물은 어떤지. 이런 상상으로부터 실제로 얻어맞은 듯 여실한 고통과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리고 이런 상상을, 조금의 틈만 나면 매일, 몇 시간씩 하고 있다.


  처음엔 내가 왜 이런 상상을 하고 있는지 잘 몰랐고 그저 멈추려고 했다. 하지만 멈추려고 할 수록 생각은 쉴 새 없이 이어졌다. 스스로의 상상에 들볶이게 되자 주치의는 일종의 응급조치로 약을 권한 것이다. 아빌리파이. 3년 만에 너무 익숙한 약을 또 받아들었다. 지긋지긋했다. 얼마 전에 ‘관해’라는 글을 썼다. 기대했던 만큼 실망을 감출 수가 없었다. 재발한 건가요? 애써 묻지 않았다. ‘네’라는 대답이 돌아올까봐 두려웠다.


  다음날 저녁까지 약을 먹지 않았다. 재앙화 사고가 다시 시작될 때까지 먹지 않으려 했다. 빌어먹을 상상은 화장실을 갈 때나 혼자 엘레베이터를 기다릴 때 다시 시작되었다. 결국 넌덜머리를 내면서 약을 털어넣었다.


  약을 먹으면서 도대체 왜 내가 저런 상상을 하는지 곱씹어 봤다. 갈등을 지나칠 정도로 싫어하기에, 차마 현실에서 내가 미워하는 사람에게 싫은 소리는 하지 못하겠고, 그 와중에 차라리 분이 쌓인 만큼 해코지하는 상상이라도 하면 속이라도 후련할텐데, 혼자 너무 고상하고 우아한 나는 차마 상상 속에서도 상대에게 위해는 가하지 못하고 합법적인 범위 안에서 상대가 알아서 자멸하길 바라는 중이었다. (폭행죄로 처벌 받는 등) 결국 상상의 원천은 상대를 향한 나의 미움, 아니, 시간이 지나면서 곪고 곪아 증오로 삭아버린 마음이었다. 나는 너무 고상하고 우아하여 스스로 누군가를 그 정도까지 미워한다고 인정하지도 못했기에. 그런 인간한테 에너지를 낭비하는 건 사치라며 친구들이나 가족들 앞에서 신경쓰지 않는 척 했지만 사실은 죽여버리고 싶을 만큼 혐오했다. 그 마음을 인정해주고 나서야, 재앙화 사고가 살짝 줄었다.


  정신과 약은 원래 최소 2주는 먹어야 효과를 본다.

살짝 줄었다는 평가는 아직 너무 이르고, 거짓말에 가까운 자기위로다. 나도 안다. 알지만 이렇게라도 해야… 나 스스로에게 실망하는 걸 가까스로 막을 수 있다. 내 잘못이 아니야.

  간만에 자존감이 바닥을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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