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베르테르가 되지 않기 위하여
그럴 때가 있다. 너무 지치고 피곤해서 우울에 자발적으로 잠식되어 버리고 싶은 날들. 사실 모든 우울이 병적인 것은 아니다. 2형 양극성 장애 환자의 일상에도 정신 질환을 앓지 않는 '일반인'들이 느끼는 '정상적인 수준'의 우울이 찾아온다. 엄마와 가벼운 말다툼 뒤에, 직장 상사의 꾸지람 뒤에, 혹은 술 한 잔 마시고 떠오른 옛 사랑 생각 뒤에. 모든 우울이 일상에 지장을 일으키는 수준으로 2주 이상 지속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우울은 그저 기쁨, 슬픔, 분노처럼 수 많은 감정 중 하나일 뿐이며 아주 잠깐 내 마음에 머물렀다가 자연스럽게 사그라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가끔 삶에 지쳤을 때, 특히 2형 양극성 장애에 대한 병식이 생긴 뒤에는 오히려 병을 이용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우울하다. 아마도 양극성 장애가 재발했나보다.
요즘 영 기분이 안 좋다. 양극성 장애 때문일까?
일이 원하는 대로 풀리지 않는다. 병 때문이라면, 내가 더 이상 어쩔 수 있는 건 없다. 시간이 지나면 좋아지겠지.
그렇게 모든 부정적인 감정을 양극성 장애의 증상으로, 모든 불만을 정신 질환을 앓고 있다는 자기연민으로 합리화하고 싶을 때가 있다.
나 요즘 우울해. 또 재발했나봐.
오랜 친구J를 만나 푸념을 늘어놓았을 때, 내 표정을 면밀히 살피던 그가 말했다.
"조울, 있잖아, 괴로움에 빠져드는 걸 즐기지마. 그거 이십대 초반에나 하는 짓이야."
자칫 거칠게 들릴 수 있는 말이었지만, 화가 나기는 커녕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가 나를 너무 잘 알고, 우리 사이의 끈끈한 유대관계 덕에 할 수 있는 조언이기 때문이었다.
"너도 나도, 캠퍼스 잔디 밭에 누워서 병나발도 불어봤고, 하루 종일 수업 땡땡이 치고 혼자 삶의 무게를 다 짊어진 것처럼 철학책이나 읽던 때 있었지. 그건 스무살이라서 할 수 있었던 특권이고, 이제 우리 나이엔 그러면 안 돼. 나이듦에 따라오는 책임 같은 거랄까."
J는 나의 상태를 '젋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라고 불렀다. 처음 그 단어를 들었을 때, 깔깔대며 웃었다. 너무나도 적절한 비유였다. 나방이 불구덩이로 뛰어드는 것인 줄 뻔히 알면서 스스로를 굳이 멈추지 않는 상태, '괴로운 낭만'을 즐기고 있는, 다분히 마조히스틱한 쾌락에 머물러 있는 상태.
"내가 지난 2주 동안 너를 봤잖아. 너 지금 그렇게까지 우울하진 않아. 가슴에 손을 얹고 잘 생각해봐. 정말 그렇게 우울해?"
아니.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사실 그렇게 우울하진 않아. 나의 대답에 J가 빙긋 웃었다.
"경조울, 정신줄 바짝 잡아. 우울하기 쉬운 정신 질환을 앓고 있다고 해서 스스로를 우울하게 만들거나 그 상태를 언제까지나 유지해도 된다는 뜻은 아냐."
"아, 알았어, 알았어. 잔소리 좀 그만해."
핀잔 같은 그의 조언에 잠시 투덜거리긴 했지만, 나도 잘 알았다. 지금 나의 심리는 양극성 장애를 핑계로 우울에 잠식되어 게으름을 피우고 싶은 나태함이라는 걸. 양극성 장애로 진단도 받았겠다, 병식도 생겼겠다, 얼마나 그럴 싸한 변명인가.
양극성 장애의 한 삽화 내에도 단계가 있다. 갓 재발하여 증상이 가장 심할 때, 인생의 가장 쓴 맛을
보고 있을 때이며 적극적으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시기가 시발점이자 초기라면 약을 꾸준히 먹고 상담을 받르며 증상이 조절되고 삶의 통제력을 회복하는 중기, 그리고 증상이 사라지면서 약을 줄이거나 먹지 않고도 일상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말기. 의학적 분류는 아니다, 단지 내 편의대로 갖다붙였을 뿐. 나의 경우 초기엔 부지런하고 말을 잘 듣는 ‘착한 환자’이고, 중기에서 말기로 넘어올 때, 혹은 약을 중단하고 다시 재발하기 전 일상이 평화로울 때 젊은 베르테르에 빙의하곤 했다. 사소한 우울감도 질환으로 인한 것이라 확대 해석하고 과도하게 걱정에 사로잡히곤 했다. 어쩌면 ‘무료한’ 일상에서 굳이 괴로움을, 드라마를 찾아나서는 몹쓸 습관이었지도 모른다.
정신 질환을 앓고 있다는 걸 인정할 때는, 즉, 정신 질환에 대한 병식이 생겼을 때는, 어떤 증상이 정신 질환으로 인한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외에 어떤 증상은, 특히 어떤 부정적인 증상은 정신 질환과 관계 없이 일상에서도 충분히 느낄 만한 것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굉장히 기민하게 정신 질환으로 인한 증상과 아닌 증상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어떨 때는 스스로의 힘으로 극복하고, 어떨 때는 정신건강의학과에 가서 도움을 받을지 결정할 수 있으니까. 가끔 우울감이 너무 오래되거나, 무기력이 정점에 달할 때는 모든 것을 포기해 버리고 싶을 때도 있지만, 그런 순간을 제외하고는 내 감정과 사고를 스스로 컨트롤하겠다는 일념으로 정신줄을 붙잡아야 한다. 양극성 장애가 모든 감정을 설명해 주진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