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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조울 Aug 11. 2023

운동

정신 건강을 위한 필요악

  개인적으로 운동을 좋아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땀 흘리는 게 상쾌하다고, 또 누군가는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도록 달리고 나면 '러너스 하이'를 느낄 수 있다고 말하지만 나에게 운동이 그런 물리적 쾌감을 느끼게 해 준 적은 딱히 없다. 솔직히 운동을 하면 몸이 고되고 지칠 뿐이다. 그래서 운동 하러 가는 발걸음은 늘 무겁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운동을 한 지 벌써 십 년이 넘었다. 양극성 장애 진단을 받기 전부터, 받고 인정하지 못했던 동안에도, 받아들인 후에도 어떤 종류든 일주일에 두세 번씩 운동을 해왔다. 심지어 살인적으로 바쁜 전공의 과정 중에도 운동을 멈추지 않았다. 요가, 필라테스, 발레, 헬스, 크로스핏 등. 개인적으로 헬스가 가장 잘 맞아서 지금까지 꾸준히 하고 있다.


  운동을 시작한 이유는 강박 때문이었다. 항상 남보기에 예쁜, 적절한 체중의 몸매를 유지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선 운동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의과대학에 입학하기 전, 학창 시절엔 정말 책상에 앉아서 공부만 했기에 체력이 유난히 약했고, 근육이 부족하고 말랑한 몸매는 늘 콤플렉스였다. 아이돌 가수처럼 야리야리한 몸매보다는 외국의 액션 배우들처럼 근육질의 탄탄한 몸매를 갖고 싶었다. 근육이 잘 붙지 않는 몸이라, 아무리 운동을 해도 그렇게 되기는 힘들었지만. 

  양극성 장애를 받아들이기 전, 경조증과 우울 삽화에 시달리는 동안에는 '자존감'을 높이고 싶어서 운동을 했다. 운동을 통해 예쁜 몸매를 만드는 것도 자존감을 높이는 방법이라고 믿었지만, 한편으로는 그 바쁜 와중에도 꾸준히 운동하는, 자기 관리를 잘하는 기특한 나라는 느낌이 좋았다. 진짜 운동하러 가기 싫지만 어떻게든 헬스장에 가서 1시간 꽉 채워 운동하는 스스로가 대견했고, 그 뿌듯함이 자존감을 높이는데 도움이 된다고 믿었다. 뭐, 실제로 도움이 안 된 것은 아니다. 모르긴 몰라도 경조증이나 우울 삽화를 겪지 않을 때, 중간의 평정 기간(euthymia)에는 기분을 안정되게 만들고 재발을 미루는 효과가 있었을 것이다. 운동을 통해 자존감을 높인다고 해서 양극성 장애가 조절되는 것이 아닌 게 문제지. 

 

  지금은 생각을 떨쳐버리고 싶어서, 그리고 잠들기 위해서 운동을 한다. 나는 예민하고 생각이 많으며, 한 번 부정적인 생각에 꽂히면 쉬이 떨쳐내지 못한다. 그럴 때 무게를 많이 쳐서 격렬한 근력 운동을 하면 '생각하는 것' 자체를 잊어버리는데 도움이 되었다. 부상 위험이 있기에 매 동작을 할 때마다 집중해야 하고, 몸 쓰는 것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잡념이 잊힌다. 그리고 몰입에 이만큼 효과적인 방법은 아직까지 찾지 못했다.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기, 친구를 만나서 수다 떨기, 술 마시기 등 다양한 방법을 시도해 봤지만 역시 운동이 가장 효율적이다.   

  운동은 잠을 자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하루 만 보 이상 걷거나 한 시간 이상 운동을 한 날은 확실히 입면이 쉬워진다. 몸을 피곤하게 만들어서 잠들게 하는 게 살짝 무식해 보일 수도 있지만, 수면제 외 민간요법 중에서는 (그리고 나는 수면 위생 관련해서 현존하는 거의 모든 민간요법은 다 써 본 사람이다) 이보다 확실한 방법이 없다.


  하지만 운동이 약물 치료를 대신할 순 없다. 이건 단언할 수 있다. 가끔 인터넷에서 그런 글을 본다. 우울한 감정을 느끼면 일단 몸을 움직여라, 하다못해 설거지라도 해야 우울한 기분을 떨쳐낼 수 있다. 그러나 진짜 병적으로 우울하면 설거지는 커녕 손가락 하나 까딱이는 것도 힘들다. 우울의 심연에 빠졌을 때, 정신건강의학과를 찾는 대신 천근만근 무거운 몸을 이끌어 억지로 운동을 한 적도 있다. 수치심에 어딘가로 숨고 싶고, 혼자 늘어져 버리고 싶고, 당장 죽어버리고 싶은데 스스로에게 목줄을 채워 잡아 당기는 느낌으로 러닝 머신을 뛰었다. 평소보다 갑절은 힘들었다. 뛰는 내내 헛구역질을 하면서, 발을 질질 끌면서 뛰었다. 운동하는 동안만큼은 부정적인 생각을 잊어버릴 수 있었지만, 러닝 머신에서 내려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우울, 자책감, 무기력함, 자살사고가 발목을 붙들었다. 그 시절 나에게 필요한 것은 지친 심신을 들여다보고 보듬어 주고, 적절한 상담과 약물 치료를 받는 것이었지만 스스로에게 그런 관용을 베풀지 않았다. 양극성 장애 차도에 효과가 없었던 것은 지당한 일이다. 오히려 뭐라도 하고 있다는 자기기만 때문에 치료를 받는 게 더 미뤄지기만 했다. 

 

  양극성 장애 발병 초기, 한창 경조증이나 우울 삽화에 시달릴 때는 운동보다 반드시 약물 치료를 받아야 한다. 여력이 되면 운동을 하면 좋지만, 운동하고 있으니 낫고 있거나 약물 치료를 안 받아도 되는 것은 결단코 아니다. 다만 상태가 어느 정도 안정되면, 그리고 증상이 호전되면 현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 그리고 재발을 막기 위해서 운동을 병행하는 편이 좋다. 특히 나처럼 쓸데없는 생각이 많은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다. 최소한 나는 늘 운동을 해야 한다. 잡념을 떨치고 잠들기 위해서. 언젠가 양극성 장애 환자는 부지런해져야 한다고 적었는데, 운동도 그렇다. 싫지만 꼭 해야 하는 것, 양극성 장애를 받아들인 뒤 운동은 어쩔 수 없는 나의 반려, 필요악이 되었다. 여러모로 번거로운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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