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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조울 Aug 16. 2023

관용

야 너두? 야 나두!

  겉보기에 나는 너무나도 멀쩡한 사람이다. 대한민국에서 손 꼽히는 명문대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의사로서 소위 ’잘 나가는‘ 삶을 살고 있으며, 나를 사랑하고 아껴주는 사람과 가정을 꾸려 오손도손 살고 있다. 이런 내가 10년 째 양극성 장애를 앓고 있다는 사실을, 지금도 기분안정제와 수면제를 먹고 있다는 것은 남편과 아주 가까운 친구 몇 명 뿐이다. 앞으로도 동네방네 떠벌릴 생각은 없다. 양극성 장애를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혹은 부끄러워서는 아니다. 그냥 누군가에게 약점 잡힐 수도 있는 요인을 굳이 먼저 공개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서다.


  스스로 정신 질환을 앓고 있다고 해서, 타인의 정신 질환을 더 예민하게 감지하는 것은 아니었다. 나를 포함해서, 사람은 사실 사람에게 크게 관심이 없다. 간혹 정신건강의학과를 다니고 있다며 지인들이 고백할 때가 있다. 내가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은 아니지만, 어쨌거나 의사니까 조언을 구하고 싶어서 그런 것 같다. 인격장애처럼 평소 언행이 이상한 사람이야 어쩌면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게 아닐까 의심한 적은 있었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너무 뜻밖이라 놀라움을 애써 숨겨야 했다. 내 생각보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이미 정신건강의학과를 찾고 있었다. 우울해서 가기도 하고, 불안해서 가기도 하고, 잠이 오지 않아서 가기도 하고. 이유는 사람마다 각양각색이었고, 그 혹은 그녀가 누리고 있는 부, 사회적 지위나 성격, 가정 환경 등과 큰 관련이 없었다.

  양극성 장애를 인정한 뒤, 생긴 가장 큰 변화라면 타인을 대할 때의 관용이다. 멀쩡해 보이는 저 얼굴 뒤에 어쩌면 어떤 아픔을 숨기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것이 신체적 질환이든, 정신적 질환이든. 그리고 어느 쪽이든 내가 그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변함이 없다. 내가 그렇듯, 상대도 정신 질환을 앓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저 사람이 이상하거나 가까이 하면 도움이 안 되는 사람은 아니다. 누군가는 키가 크고, 누군가는 키가 작듯이 이제 나에게 정신 질환의 유무는 그저 한 개인의 특성일 뿐이다. 어차피 인간은 나약하고, 나이가 들수록 심신이 조금씩 고장나기 마련이다. 좀 더 취약한 점일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로 인해 불이익을 겪을 필요는 없다.

  정신건강의학과를 다니고 있다는 고백을 듣고 나면 나도 모르게 내적 친밀감을 느꼈다. 나도 그렇다고 ‘커밍 아웃’을 하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꾹 참았다. 내가 상대방의 정신 질환으로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해서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용기내어 본인의 경험을 털어놓았는데 내 이야기를 해서 부담을 주고 싶지도 않았다. 나도 그렇다고, 어떤 기분인지 너무 잘 안다고 주절거리고 싶은 욕구를 누르며 애써 담담하게 말해주곤 했다. 맞아,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가는 것처럼 마음이 아파도 병원에 가야지. 요즘 사람들 중에 정신건강의학과 한 번 안 가 본 사람이 어딨어. 말해줘서 고마워요.


  관용은 꼭 타인을 향한 것만은 아니다. 양극성 장애를 부정하고 피해다녔던 10년 동안 나를 지배했던 것은 수치심이었다. 멀쩡한 척 살고 있지만 정신 질환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 나 자신 뿐만 아니라 타인까지도 속이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양극성 장애를 인정하면서 스스로에게 훨씬 너그러워졌다. 어쩌겠어, 내가 이런 사람인 걸. 뚱뚱한 사람이 있고, 마른 사람이 있듯이 나는 양극성 장애를 갖고 있고 앞으로도 꾸준히 관리해야 한다. 스스로를 아무리 미워하고 다그쳐봐도 현실은 변하지 않으며 오히려 나빠지기만 할 뿐이다. 그냥 받아들이자. 반가운 손님처럼 기쁘게 받아들인 건 결코 아니지만 어쨌거나 인정하고 나니 훨씬 편해졌다. 과도한 자기연민도 사그라들었다.

  무엇보다 양극성 장애를 적극적으로 관리하겠다고 마음 먹은 뒤부터 운동, 절주, 상담 및 투약이 좀 더 쉬워졌다. 모든 것이 마음가짐에 달려있다고 하던가. 고혈압, 고지혈증 약을 챙겨먹는 환자들 마음이 이렇지 않을까 싶은데 어느 순간부터 '왜 나만'이라는 마음이 사그라들고, 귀찮지만 나라는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 자연스럽게 해야하는 습관이자 일상이 되었다. 사람이 삼시 세 끼 밥을 챙겨 먹으며 매번 짜증을 느끼지는 않듯이, '관리'가 생활에 녹아들고 나니 더 이상 고통스럽거나 유난스럽게 여겨지지 않았다. 2주에 한 번 정신건강의학과를 찾는 것도 이제 그저 평범한 루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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