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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조울 Sep 14. 2023

배우자의 존재가 불면에 미치는 영향

  어제는 또 잠이 오지 않았다. 새벽 3시까지 내내 뒤척였다.

  ‘어제 잘 못 잤으면 인간적으로 오늘은 잠이 와야 되는 거 아니냐.‘

  연달아 이틀째 잠이 오지 않으니 짜증이 났다. 불면은 이게 문제다. 잠이 오지 않을 때, 유난히 또렷한 머릿속을 침투하는 생각은 결코 아름답거나 우아하지 않다. 유명한 사상가처럼 세상을 계몽할 만한 깨달음을 얻는 건 아니더라도, 최소한 스스로를 토닥일 수 있는 차분한 생각을 하고 싶은데 불면에 괴로울 때 나를 찾는 건 언제나 신경질, 짜증, 이유없는 불안과 염세적인 생각들이다. 오늘 못 자면 또 내일 얼마나 피곤할까. 난 왜 이렇게 생겨먹었지. 이번 생은 망한 게 틀림없어.

  사부작거리는 내 소리에 잠에선 깬 남편이 조용히 내 이름을 부른다. 또 잠이 안 와? 그가 눈을 감은 채 두 팔을 벌려 자신의 품에 안기라는 제스처를 한다. 못 이기는 척 품에 파고들면 남편은 아무 말 없이 나를 껴안고 다시 잠을 청한다.


  남편은 신기한 사람이다. 어디서든 머리만 대면 10초 안에 잠이 든다. 처음 그를 만났을 때,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 어느새 단잠에 빠져든 모습이 너무 신기해서 새벽 늦게까지 빤히 쳐다본 적도 있다. 마음만 먹으면 어디서든 잠들 수 있는 능력이 너무 부러워서 나는 그걸 초능력이라고 부른다. 침실엔 언제나 두꺼운 암막 커튼을 치고, 어떤 소리나 소음이 있어서도 안되며, 매트리스가 너무 딱딱해도 부드러워도 안되고, 베개가 너무 높아도 낮아도 안되는, 잠자리에 몹시도 까탈스러운 내가 몹시 동경하는 능력이다.

  몸에 무언가 닿으면 잠들지 못하기 때문에, 남편 품에 안겨도 이 상태로 잠드는 경우는 없다. 그는 이미 잠들었기에 다정한 대화를 갈구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조용히 잠든 남편의 가슴팍에 고개를 댄 채로 그의 숨소리를 듣고 있으면 머릿속 잡념이 조금씩 사그라든다. 불안에 잠식되었던 마음이 잠잠해진다. 신기하다. 남편은 자다 깨더라도 한 번도 짜증을 낸 적이 없다. 매일 밤 바로 옆에 잠들지 못하는 나를 안쓰러워하고, 이렇게 끌어당겨 안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강력한 진정제 역할을 한다. 쉽게 변하지 않을 익숙함, 편안함, 안정감. 결혼에 따라오는 수많은 장단점이 있지만 불면증 환자에게 이보다 강력한 장점은 없다. 이것만으로도 결혼은 굉장히 할만한 것이다.

  한참동안 쌔근거리는 숨소리를 듣다가 조심스럽게 그의 품을 빠져나와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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