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밤엔 긴 연휴에 지친 남편이 먼저 잠들고 혼자 가을밤에 어울리는 청승맞은 음악을 들으며 곧 떠날 여행 계획을 짰다. 여행지에 대해서 검색하면서 괜시리 지난 여행이 떠올라서 과거의 사진을 뒤적이다 감상에 젖었다. 긴 연휴가 끝난 뒤 느껴지는 공허함, 곧 맞이하게 될 새로운 환경과 경험에 대한 설레임, 지난 여행에 대한 노스탤지어까지 뒤섞여 살짝 울적한 듯 차분해졌다. 고독하고 자유로웠다. 잔잔한 행복감도 느꼈다. 아마 깊은 밤 적막과 아주 낮게 깔아놓은 음악도 한 몫 했겠지.
‘꼭 행복해 질거야.’
지난 날 사진을 뒤적이다가 갑자기 머릿속에서 메아리처럼, 마치 주문처럼 하나의 문장이 반복적으로 떠올랐다. 속삭이듯이 다정하고 따뜻하게. 처음엔 누군가에게 해주고 싶은 말인 줄 알았다. 친한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말을 해볼까 잠시 고민했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 뜬금없지 않은가. 하지만 떨쳐버리려 해도 머릿속에서 계속 울렸다. 꼭 행복해 질거야.
지금 행복하지 않아서 다짐처럼 든 생각인가? 그렇지는 않은데. 가만히 마음을 들여다보니 지난 날, 어린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었다. 사진 속에서 웃고 있는, 분명 그 순간만큼은 즐거웠지만 항상 우울감을 안고 살았던, 끊임없이 불안과 자살사고에 시달렸던, 지난 날의 나에게.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것이 인간이기에 몇 년 뒤 내가 적극적으로 도움을 구하고 우울, 자살 사고를 극복하고 평범한 일상을 누리고 있다는 걸 알수 없었던 그 시절의 나에게 꼭 해주고픈 말이었다. 닿진 않겠지만 닿을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난 꼭 행복해 질거야. 그러니까 좀만 버텨달라고.
조용히 되뇌이다보니 사진 속 그 시간, 그 장소에서 느꼈던 감정과 생각이 생생하게 되살아나면서 마치 시공을 초월하여 과거와 현재의 내가 소통하는 기분이 들었다. 기묘하고 영적인 경험이었다. 가을밤은 이따금 신기한 마법을 부리는 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