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글태기를 겪는 중입니다. 위대한 작가 하루키를 본받아 단 몇십 분이라도 글을 쓰려 하는데, 모니터를 바라봐도 하얀 것은 공백이요, 검은 것은 커서라 머릿속 생각이 문장이 되어 나오지 않습니다.
써지지 않는 글을 붙잡고 구역구역 써내려가다가 도중에 뒤엎기를 반복하니 글쓰기가 뭔지 헷갈리기 시작했습니다. 이제껏 조리있게 글을 잘 쓴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나만의 착각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간단한 문장 하나를 쓰는 것도 힘이 듭니다. 오늘은 알코올의 힘이라도 빌어볼까, 혼술을 하려다 꾹 참았습니다.
나중엔 좀 나으려나, 늦은 밤 컴퓨터를 끄고 내일을 기약해 보지만 다음날 해가 밝아도 역시 글은 써지지 않습니다. 몸을 좀 움직이면 창의적인 생각이 떠오르려나 장소를 바꿔봐도, 운동을 해봐도 여전합니다. 미뤄뒀던 죄책감은 두려움이 되고 두려울 수록 더 글쓰기가 어려워집니다.
억지로 붙잡고 있어봤자 아까운 시간만 흐를 뿐, 오늘도 구역구역 글을 쓰려다 결국 포기했습니다.
글의 뒷부분으로 넘어오면서 수정 작업이 눈에 띄게 더뎌졌습니다. 양극성 장애를 인정하고 꾸준히 치료 받으면서부터 벌어진 일들이 책의 마지막 1/3을 차지하는데, 이 때 느꼈던 감정, 했던 생각을 시간의 흐름에 맞게 정리하는 게 유난히 어렵게 느껴집니다. 앞 2/3는 날 것의 감정과 생각을 마치 화풀이하듯이 펼쳐놓으면 됐지만, 뒤 1/3은 양극성 장애를 꾸준히 관리하면서 생겨난 변화를 독자들이 납득할 수 있게 풀어야해서 글의 순서와 배열이 무척 중요해졌습니다. 이 작업이 기술적으로 어렵기도 하고, 확실히 기분이 안정되면서 전반부에 비해서 드라마틱한 요소가 많이 줄어서 글이 지루하게 느껴집니다. 수정 작업이 더디니 어째 지금까지 써놓은 글들도 별로인 것 같습니다. 솔직한 마음 같아선, 잠든 사이 우렁각시가 나타나 제 마음에 쏙 들게 글을 고쳐놔줬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