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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조울 Nov 16. 2023

나이 듦과 스트레스, 양극성 장애

  스트레스는 양극성 장애의 초발과 재발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그리고 10대, 20대는 특유의 불안정성 때문에 이런저런 스트레스에 노출되기 쉬운 나이대이다. 오늘 갑자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요즘 나의 평화로운 일상은 노화의 결과물은 아닐까. 


  물론 양극성 장애 증상이 잘 조절되는 가장 큰 이유는 내가 병을 인정하고 꾸준히 관리하고 있기 때문이지만, 의학이란 학문엔 100% 정답은 없다. 나의 경우 잦은 재발과 자살 사고에 허덕였던 시절이 20대 중반부터 30대 초반까지였는데, 하필이면 그때가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들 때였다. 의과대학에서 아침 9시부터 밤 12시까지 학업에 짓눌리고 있었거나 전공의 과정을 겪으며 살인적인 노동에 노출되어 있었다. 때문에 양극성 장애를 앓지 않는 '일반인'도 맨 정신으로 이겨내기 어려운 정도의 스트레스에 시달려야 했다. 일을 떠나서도, '나쁜 남자'들과 연애를 거듭하며 사랑받고 싶다는 기본적인 욕구의 충족이 번번이 좌절되었고, 시간이 흘러 친구들이 하나둘씩 결혼하고 가정을 이루는 모습을 보며 초조함과 불안을 느꼈다. 한마디로 일도 힘든데 기댈 구석도 없었다. 그 시기의 나는 항상 힘이 들었고, 지쳐 있었으며, 불안하고 우울했다.  

 

  30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전문의로서 자리를 잡았고 삶의 동반자를 찾았다. 의사라는 직업이 다른 직업보다 강도 높은 스트레스에 노출되긴 하지만 예전에 비하면 훨씬 할 만해졌고, 결혼은 심리적으로 큰 안정감을 주었다. 일과 사랑, 두 분야에서 정착을 하면서 20대 시절 삶의 불확실성에서 비롯한 재미, 도전의식은 사그라들었고 확실히 인생이 좀 심심해지긴 했다. 그러나 내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수준으로 스트레스가 줄어들면서 양극성 장애의 예후에는 긍정적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내가 스트레스와 불면에 매우 취약한 사람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몇 년간 적극적으로 그런 상황을 피하긴 했지만, 내가 상황을 선택할 수 있었던 여유는 나이가 들었기 때문이다. 20대 후반 전공의 시절엔 내가 피하고 싶다고 해서 스트레스와 불면을 피할 순 없었다.  

  산전수전을 겪으며 내면이 단단해진 것도 노화의 긍정적인 결과다. 경험을 통해 어떤 문제는 그렇게까지 괴로워하지 않아도 되고, 또 어떤 문제는 나의 노력과 관계없이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삶에 너그러워진 것이다. 


  젊은 나이에 발병한 양극성 장애 환자일수록 예후가 좋지 않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더 오랜 시간 재발과 우울 증상에 시달리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 나이가 들면서 양극성 장애의 증상이 어떻게 바뀌는지 궁금하다. 나이가 든다고 해서 반드시 삶이 안정되는 것은 아니므로 단순히 노화가 양극성 장애를 호전시키는 것은 아니지만 확률적으로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보면 통계적으로도 그런 결과를 보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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