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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조울 Nov 17. 2023

자살을 막을 수 있었던 방법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

  어제가 수능일이었고, 어김없이 투신 사고가 발생했다.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고는 하나, 아침에 뉴스를 보고 마음이 철렁했다.


  좋아하는 웹툰 작가가 아래와 같은 내용을 인스타그램을 업로드했더라.

  살다 보니 저 말은 정말이었고, 지난한 자살 충동과 계획을 버텨낸 뒤 일상 속 행복한 순간을 맞이할 때면, ‘그래도 살아서 견디니 이런 날도 오는구나.’ 생각할 때가 분명 있었다. 삶의 모든 희로애락을 누릴 수 있는 단 하나의 조건은, 결국 내가 살아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죽으면 아무것도 경험할 수 없다.


  문득 나 스스로 자살 사고를 이겨낸 방법이 뭐가 있었나 정리해 보기로 했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이고, 의학적 근거는 전혀 찾아보지 않았기에 실제로 타인에게도 도움이 될지는 잘 모르겠다.


<죽고 싶다는 마음이 들 때 절대로 하면 안 되는 것>

1. 술

  술에 취하면 판단력과 자제력이 감소한다. 가뜩이나 죽고 싶은데 자제력마저 떨어지면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꼴이다. 한 잔도 마시면 안 된다.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나도 알고 싶지 않았다.


2. 자해

  정신적 자해, 신체적 자해 모두 포함한다. 다이어트 중에 ‘맛만 보자’며 시작하면 어김없이 폭식으로 이어지듯이 폭력과 통증은 더 강한 자극에 대한 추구로 이어진다. 신체적 자해보다 정신적 자해를 하지 않기가 더 어렵다. 죽고 싶다는 충동이 드는 순간부터 반사적으로 나 자신이 무가치하고 수치스럽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나는 차라리 잠을 자거나 끊임없이 혼잣말을 하거나 소리를 질렀다. 나는 무가치하지 않다고. 물론 잘 안 된다. 나도 안다.


<자살 사고에 도움이 되었던 것>

0. 꾸준한 상담과 약물 치료

  자살 사고를 느끼지 않기 위해서는 평소 관리라는 ‘적금’을 쌓아야 한다. 큰돈이 필요한 상황에서 급전을 빌리기는 굉장히 어렵다. 꾸준히 치료를 받아야 자살 충동 자체를 줄일 수 있고, 충동을 느끼더라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키울 수 있다. 이건 불변의 진리이다. 뒤에 나오는 방법들은 급할 때 끌어다 쓰는 대출 같은 방법이다.

사채보다는 금융권에서 끌어다 쓰는 게 좋은 것처럼 자기 파괴적인 방법보다는 건설적인 방법을 쓰고자 했다.


1. 수면제

  나의 경우, 잠이 오지 않는 깊은 밤에 자살 충동을 느낄 때가 많았기에 차라리 수면제를 먹고 잠들어 생각 자체를 ‘샷다운’ 시키는 게 도움이 되었다.


2. 사람과의 상호작용

  나는 혼자 있을 때 자살 충동을 느끼는 경우가 많았다. 그럴 때면 어떻게든 사람과 상호작용을 하려고 했다. 가족이나 친구에게 전화를 걸거나 만나거나, 시간이 너무 늦어서 이도저도 어렵다면 편의점이든 경비실이든 찾아가 반가운 척 인사라도 건넸다. 깊은 대화를 나눌 순 없더라도 상대의 반응이 내가 살아있다는 걸 깨닫게 해 주었고 분명 도움이 되었다.


3. 자극

  차라리 일을 할 때면 자살 충동을 잊을 수 있었고, 일을 하지 않는 순간에 수면제도 먹을 수 없고, 사람과의 상호작용도 어렵다면 혼자 생각을 곱씹는 대신에 생각을 돌릴 수 있을 만한 자극을 찾았다. 책이나 음악 같이 잔잔한 자극보다는 차라리 강렬한 자극이 더 도움이 되었다. 유튜브든, OTT든, TV든 평소 같으면 지나치게 자극적이라서 피할 만한 것을 찾아서 보았다. 야한 동영상이든, 범죄스릴러든, 생각을 돌릴 만하다 싶으면 보고 있었다. 자살 충동을 그런 식으로 단 몇 초, 몇 분이라도 떨쳐낼 수 있으면 신기하게 충동의 집요함과 강도가 줄어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4. 유서 쓰기

  집요하게 자살 계획을 세우던 어느 날 스스로 다짐을 하나 했다. 유서는 꼭 쓰고 죽자. 이후 자살 충동이 들 때마다 일기나 편지를 쓰듯이 유서를 썼다. 쓰면서 많이 울었다. 내가 불쌍해서, 남겨질 가족에게 미안해서. 그렇게 유서를 쓰고 나면 죽고 싶다는 마음이 조금 사그라들었다. 나의 감정을 분출하고, 글이라는 매개체로 전환해서 마주하는 것은 환기의 힘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비약물적인 방법 중에선 가장 효과적이었다.


 자살 충동을 느끼지 않은지 3년 정도 되었다. 가끔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마주할 때마다, 과거의 나 자신에게 텔레파시를 보낸다. 그 순간을 견디면, 상상할 수 없는 행복이 찾아온다고, 조금만 더 버텨달라고. 언젠가 양극성 장애가 재발하고, 또 자살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안 그러길 바라지만.) 그때 오늘의 마음가짐을 기억할 수 있으면 좋겠다.

  결국 살아있어야 모든 것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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