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속에서 수첩을 들고 회장님을 따라다니며 지시사항을 전달받고, 바쁘게 통화하면서 동선을 챙기는 직원이 있습니다. 바로 '수행비서'입니다.
수행비서는 회사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지방자치단체를 이끄는 시장, 군수, 구청장님들 곁에도 있습니다. (편하게 시장으로 칭하겠습니다.) 시장이 업무를 원활히 수행할 수 있도록 밀착해서 돕는 비서지요.
지자체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수행비서는 시장의 일정을 관리하고, 지시사항을 처리하며, 직원들과의 소통창구 역할을 합니다. 보기에는 화려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침 일찍 출근해서, 시장이 퇴근하고 나서야 일이 끝납니다. 주말이나 공휴일에도 행사가 있으면 출근해서 일해야 하는 3D 직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개인 시간이 없다는 게 큰 걸림돌이죠.
그래도 큰 보람을 느낄 수 있는 보직입니다. 시장이 시정을 펼치는 것을 가까운 거리에서 지켜볼 수 있습니다. 또 다양한 부서 직원들과 외부 단체장들을 만나면서 사람을 많이 알게 되지요. 시야가 크게 트이는 경험을 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부담감 때문에 기피하고 싶은 보직이기도 하지만, 공직생활 중에 한 번은 해보고 싶은 선망의 대상이기도 한 것이죠.
시장의 수행비서.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개인의 역량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수행비서를 아무나 못하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바로 ‘아내의 승낙’입니다.
보통 2년 정도 보고 인사를 내는데, 남편 없다시피 2년 동안 가정을 꾸려나가는 걸 좋아할 아내가 얼마나 있을까요? 수행비서를 하고 싶어도 아내의 내조 없이는 절대 할 수 없는 것이지요.
그래서 인사팀에서 수행비서를 할만한 직원을 물색할 때 이런 조건의 사람을 찾습니다. 미혼이거나, 결혼했다면 아이가 없거나, 아니면 어느 정도 컸거나.
저에겐 당시 11살, 6살 두 아이가 있었습니다. 둘째가 좀 어리긴 했지만 그래도 갓난쟁이가 아니라 어느 정도 아빠의 손길 없이도 클 수 있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비서실에서 일해볼 생각 있느냐고 제안을 받고 아내와 처음 상의를 했습니다. 아내는 좀 당황했습니다. 2년 정도 남편 없이 가정을 꾸려가야 하는데, 선뜻 동의하기가 쉽지 않지요. 그래도 제 아내는 제가 첫 직장 때부터 일에 빠져 살기도 했고, 수행비서를 한번 해보고 싶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언제는 집에 일찍 들어왔어? 하고 싶으면 해 봐!’ 하고 동의를 해 주었습니다.
사실 제 아내는 제가 군대를 간 2년도 기다려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제가 수행비서로 일할 2년을 또 기다려 주기로 한 것입니다. 두 아들 녀석을 키우면서 말이죠. 남편의 직장생활을 위해 아내가 희생해 준 것입니다. 참 고맙고 미안한 일입니다.
가화만사성. 집이 화목해야 모든 일이 잘 풀리는 법이죠. 남편 없이 2년 동안 제 몫까지 가정의 화목을 위해 헌신해준 아내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수행비서를 할 수 있는 가장 특별한 조건, ‘아내의 승낙’을 얻게 되었습니다. 2019년 7월 1일 자로 비서실로 발령이 났고, 이렇게 제 비서실 생활은 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