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 대신 내가 붙잡은 것들

by yoha

한동안은
결과를 붙잡고 살았습니다.

판결이 어떻게 나올지,
상대가 무엇을 할지,
어디까지 흘러갈지.

생각은 늘 그 방향으로만 움직였습니다.
아직 오지도 않은 장면을
미리 붙들고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 장면들이
제 삶을 대신 살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당장 내 손에 없는 것들
결과는 아직 오지 않았고,
상대의 선택은 제 것이 아니었고,
시간은 제 속도대로 흐르지 않았습니다.

그런 것들을 붙잡고 있으니
하루가 전부 ‘예상’으로 채워졌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계속 준비만 하는 상태.

그 상태가 오래되자
이상하게도 저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사람처럼 느껴졌습니다.

대신 남아 있던 것들
그날 이후로
조금씩 다른 것들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
내가 이미 가지고 있는 능력,
내가 움직일 수 있는 범위.

거창한 변화는 아니었습니다.

하루를 정리하는 글을 쓰거나,
미뤄둔 작업을 다시 꺼내 보거나,
아무도 요구하지 않은 계획을
조용히 세워보는 일.

그것들은 작았지만
적어도 제 것이었습니다.

붙잡을 수 있는 것의 감각
결과는 여전히 제 것이 아니지만,
하루는 제 것이었습니다.
상대의 선택은 통제할 수 없지만,
제 선택은 가능했습니다.

그 차이를 인식하고 나서야
불안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아도
방향은 흔들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붙잡을 수 없는 것을 쥐고 있을 때보다,
붙잡을 수 있는 것을 쥐고 있을 때
마음은 훨씬 조용했습니다.

마치며
결과는 아직 모릅니다.
판결이 어떻게 마무리될지,
현실이 어떻게 흘러갈지
여전히 예측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예전처럼
그 장면을 하루 종일 붙들고 있지는 않습니다.

대신 오늘 할 수 있는 일,
오늘 쓸 수 있는 문장,
오늘 움직일 수 있는 범위를 붙잡습니다.

아마 지금의 저는
결과를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제 시간을 살아가는 사람이 되려는 중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