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는 연습을 해본 날

그날은 일부러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by yoha

정확히 말하면, 아무것도 ‘만들지’ 않기로 했습니다.

글도 쓰지 않고 아이디어도 정리하지 않고 계획도 세우지 않기로.

대신 아침에 늦게 일어나 핸드폰을 한참 내려다보다가 괜히 창밖을 봤습니다.

불안은 생각보다 빨리 올라왔습니다.

커피를 마시고 앉아 있는데 머릿속이 조용해질 틈이 없었습니다.

‘이 시간에 뭐 하나는 쓸 수 있는데.’ ‘이렇게 보내면 또 아쉬울 텐데.’

몸은 소파에 붙어 있었지만 마음은 계속 책상 쪽으로 가 있었습니다. 괜히 노트북을 열었다가 다시 닫았습니다.

이게 쉬는 건지, 미루는 건지 구분이 잘 되지 않았습니다.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시간

점심을 먹고 산책을 나갔습니다. 특별한 목적 없이 천천히 걷는 게 어색했습니다.

이 시간을 어딘가에 기록해야 할 것 같은 기분, 나중에라도 써먹어야 할 것 같은 생각.

그 순간 깨달았습니다. 저는 쉬는 순간조차 ‘재료’로 만들고 싶어 하고 있다는 걸.

그래도 그냥 두어 본 하루

집으로 돌아와 아무것도 정리하지 않았습니다. 할 일을 적지 않았고, 다음 계획을 세우지도 않았습니다.

불안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그걸 해결하려고 움직이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두어 보았습니다.

밤이 되고, 하루가 끝났을 때 특별한 성취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완전히 망친 날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았습니다.

세상은 그대로였고, 저도 그대로였습니다. 아무것도 만들지 않았는데도 무너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조금은 낯설게 안심이 됐습니다.

마치며

아직도 쉬는 게 편하진 않습니다. 여전히 뭔가를 해야 할 것 같은 날이 더 많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한 번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하루를 끝까지 버텨봤습니다. 그 경험 하나가 생각보다 오래 남습니다.

쉬는 연습은 아마 이런 식으로 아주 어색하게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